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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중심으로 밭과 축사가 아름답게 펼쳐진 전원풍경
 집을 중심으로 밭과 축사가 아름답게 펼쳐진 전원풍경
ⓒ 정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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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군 거류면에 거주하는 귀농 5년차 이정희씨(50), 여성이면서 홀로 26마리의 소를 키우고 5000평의 밭농사를 해내는 억척 농사꾼이다. 경운기에 트랙터까지 못 다루는 농기계가 없어 그 일대에선 대단한 아줌마로 통한다. 혼자서 농사를 시작해 단기간에 확고히 자리 잡은 비결이 궁금했다.

"고성에서 태어나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 부산으로 이사갔어요. 부산에선 아파트 생활을 했었죠. 그런데 회귀 본능이라고 할까요? 늘 고향에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5년 전, 더 늦기 전에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에 부산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성으로 와버렸어요. 그때 이 땅은 숲이었고 소는 9마리를 샀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네요."

농사일에 대한 경험이라고는 중학교 때까지 어깨너머로 보고 어른들의 일손을 거들었던 것이 전부였던 정희씨에게 5년 전의 결정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멀쩡한 남편이 있는 정희 씨가 혼자 농사를 짓게 된 이유는 농사가 수익이 크지 않고 소 사료 값도 만만치 않아 두 사람이 매달려서는 자녀교육에 충분한 생활비가 나오지 않더라는 것.

"농사는 내가 지을 테니 당신은 당신 일을 열심히 하라고 제가 먼저 권유했어요. 남편도 저를 믿고 따라 줬고요. 처음 땅을 개간할 때는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저는 자신 있었어요. 아직 젊으니까요. 힘이 있는데 뭘 못하겠냐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각자의 일에 매진한 결과 남편은 현재 건설업체를 이끌고 있고 정희도 농가를 경영하고 있으니 부부가 모두 어엿한 사장님이다. 두 자녀도 잘 자라 수도권의 명문대학으로 진학했다. 방학이면 시골에 내려와 농사일을 도우며 엄마를 걱정하는 착한 아이들이다.

"그때 제 힘으로 농사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두 아이를 서울로 보낼 수 있었을까요? 등록금도 비싸고 서울 방값도 얼마나 올랐는지 몰라요. 둘이 벌어도 나가는 곳이 참 많죠. 그래도 우리 집은 다른 농가들보다는 넉넉한 편이에요. 보통 부부가 함께 농사를 짓고 있거든요."

50대인 이정희씨는 굉장히 젊은 편에 속한다. 젊은 사람들이 농촌를 기피하는 현실, 할머니들이 일하는 주위 풍경이 익숙한 정희씨는 "농사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짓는 것"이라고 성공 비결을 알려줬다.

"제가 경운기, 동력예취기, 포클레인, 트랙터 등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데요. 다른 여자분들은 이런 기계를 다루는 것을 두려워 하십니다.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까 기계를 배워 볼 엄두를 못 내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농기계들을 직접 다뤄보면 차 운전하는 거랑 똑같다는 걸 아실 거예요. 차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농기계도 운전할 수 있어요. 힘들지 않고요. 이왕 농사를 시작할거면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트랙터 하나면 힘든 밭 일구기도 거뜬
 트랙터 하나면 힘든 밭 일구기도 거뜬
ⓒ 정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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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씨의 하루는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새벽 6시에 소 죽을 먹이고 오전 동안 밭에서 나온 야채를 부지런히 수확해 농가를 방문한 도매상에게 판매한다. 점심 12시에는 소 짚을 먹여야 하고 오후 시간에도 한 번 더 야채 도매상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오후 5시, 소 죽을 먹이고 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밭에서는 수수, 옥수수, 취나물, 머위, 시금치, 갓 등 다양한 채소를 재배하는 데 여기서 나오는 수수와 옥수수는 소에게 짚 대용으로도 먹인다. 직접 키운 농작물을 먹여 이곳의 소가 다른 집 소보다 유독 튼실하다고 자랑하는 이정희씨는 "소가 먹이를 잘 먹는 모습이 가장 예뻐요"라며 질 좋은 먹이를 듬뿍 듬뿍 구유에 담았다.

"전원생활은 하면 마음이 넓어지죠. 시골에는 도무지 걱정거리가 없어요. 또 농사는 일이라기 보다는 즐거움에 가깝고요. 심심할 시간이 없다는 것도 농사의 매력이에요. 대도시에 살 때는 일할 게 없었는데 여기서는 내 땅도 있고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게 참 행복해요. 할머니들의 경우 대도시에 산다면 하루 종일 있어도 천원 한 장 벌기가 어려울 텐데 시골에서는 많은 할머니들이 그날그날 야채를 팔아 수입을 올리고 계세요. 저도 그렇고 이웃 할머니들도 그렇고 우리들은 도시 사람들보다 마음이 훨씬 더 풍족한 부자인 것 같아요."

이정희씨의 귀농 성공기는 이렇게 삶에 대한 행복으로 정리됐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얼마나 행복을 느낄까? 경쟁과 스트레스로 점철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이정희씨의 선택은 여러모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소에게 먹이를 주는 정희 씨
 소에게 먹이를 주는 정희 씨
ⓒ 정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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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려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귀농, #농사,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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