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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피는 당사자는 힘들지 않다. 오히려 힘든 것은 주위 사람, 가까울수록 '마음의 짐'은 그만큼 크다. 흡연하는 아이를 둔 부모의 짐은 아마 더욱 무거울 것이다. 허나 흡연에 대한 문제의식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청소년들이니 부모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게다가 담배를 일찍 피우기 시작하면 그만큼 좋지 않다는데, 갈수록 최초 흡연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세상은 갈수록 '조로'하고 있는데, 마땅한 방법을 찾기 어렵다. 야단을 치거나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 많은 부모가 택하는 '대안'이다.

 

"담배 하나 끊게 하겠다는 방식은 당연히 실패"

 

이에 대해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51·대한금연학회 부회장)는 "꾸짖고 비난만 열심히 해서는 절대 금연에 성공하지 못한다. 오히려 아이와의 거리가 멀어지는 부작용만 확실해진다"면서 "담배만 끊게 하는 데 집중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이제까지 금연클리닉을 통해 흡연 청소년들 상담 경험을 많이 갖고 있는 서 박사는 오히려 "흡연을 계기로 아이의 삶을 이해하고 접촉면을 더 늘려야 한다. 아이의 꿈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공감하고 위로해야 한다"며 "담배 하나 끊게 해보겠다는 방식은 당연히 실패"라고 강조했다.

 

1985년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서 박사는 청소년 흡연을 "정신적인 가출"에도 비유했다. 그는 "담배는 일종의 가출이다. 담배를 필 때마다 사실상 가출하고 있는 것"이라며 가출했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와 똑같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또한 서 박사는 "청소년 흡연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각도 보다 성숙해져야 한다"며 "다른 탈출구나 놀이공간을 마련해주려고 노력해야지, 무슨 나쁜 놈들 어떻게 한 번 두드려 패 볼까하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

 

청소년 금연은 더욱 어렵다 "친구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절"

 

- 먼저 흡연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담배를 피면 혈액 속 일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진다. 일산화탄소의 헤모글로빈 결합률이 산소보다 210배나 높기 때문에, 결국 흡연자들은 만성적인 저산소증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공부는 뇌를 쓰는 것 아니냐. 뇌가 일산화탄소에 '쩔어 있는' 셈이다. 뇌세포가 자기 기능을 정확히 못한다.

 

그리고 흔히 금단 증상을 담배를 끊으면 생기는 현상으로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다. 니코틴이 떨어질 때마다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흡연자들은 매일매일 금단 증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때마다 담배를 펴서 니코틴을 보충하고 또 보충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다. 집중력 장애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 수능시험을 앞두고 흡연 때문에 고민하는 수험생도 있더라.

"특별한 방법은 사실 없다. 청소년 금연이 그만큼 어렵다."

 

-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 금연클리닉에 오는 청소년들을 보면, 대부분 흡연하는 친구를 갖고 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잠시 끊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친구관계 때문에 다시 피는 경우가 많다. 견딜 수 없는 것이 왕따 아닌가. 친구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청소년 시절에는 특히 금연이 어렵다.

 

또 금연 의지도 성인보다 떨어진다. 흡연으로 어떤 병에 걸린다는 식의 충격이 어른들의 그것보다 크지 않다. 잠깐 충격이야 받지만, 한참 후 미래 일로 받아들이니까. 오히려 담배 피면 구질구질하지 않느냐, 입에서 냄새나는 여자 또는 남자를 좋아하겠느냐, 이런 식의 접근이 훨씬 효과적이다."

 

"금연클리닉에 오는 아이들에게 '담배 이야기' 별로 안 해"

 

- 금연클리닉에 방문하는 청소년들의 금연 의지는 어떠한가.

"적어도 내가 만난 아이들은 금연 의지가 없었다. 부모님들이 너무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눈물까지 흘리고 하니까,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갖는 정도다."

 

- 어떻게 상담하는가.

"일단 담배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평소 무슨 재미로 지내고,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언제 기분이 나쁜지, 언제 짜증이 나는지를 털어놓게 한다.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꿈을 이야기한다. 랩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실용음악과를 가고 싶다면, 흡연이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스스로 생각하도록 인도한다. 자신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 가정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인가.

"그렇다. 현대 사회에서 가정만큼 끈끈하게 책임지는 곳이 어디 있는가. 학교가 그렇게 해주겠나. 담배를 핀다고 선생님이 눈물까지 흘리기는 어렵다. 부모님들은 눈물 흘린다. 사실 가족이 중요하다."

 

- 그럼 가정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당황하기 마련이다.

"부모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놀랐겠냐고, 하지만 담배 끊게 하는 데 집중하지 말라고. 이번 기회를 대화의 기회로 만들어야 성공한다고 말한다. 흡연을 통해 아이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접촉 면적을 더 늘려야 한다. 아이의 꿈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공감하고 위로해야 한다.

 

무조건 야단을 쳐서는 안 된다. 마치 공부 못하는 아이한테 공부 잘 하라고 강압적으로 말만 하는 것과 똑같다. 어떤 감시만 강화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소지품, 책상을 뒤지거나 담배 냄새를 맡는다든지 하는 것은 아이를 더 도망가게 만든다. 그럼 집에도 안 들어온다. 그게 오히려 더 속 편하니까.

 

강한 바람보다는 따뜻한 햇볕이 외투를 벗기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이솝 우화도 있지 않나. 꾸짖고 비난만 열심히 해서는 절대 성공 못한다. 오히려 부작용만 확실해진다. 아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애초 부모 마음과 달리 반대의 일이 벌어지기 쉽다."

 

청소년 흡연 "담배를 필 때마다 가출하고 있는 것"

 

- 결국 대화가 중요하다?

"담배는 일종의 가출이다. 정신적인 가출. 담배를 필 때마다 사실상 가출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아이가 가출하고 집에 돌아왔다고 하자. 어떻게 해야 하나. 때려야 하겠는가.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겠냐고, 따뜻한 밥을 사주는 식이어야 하지 않겠나. 그것과 똑같다. 흡연 청소년 중에는 학교나 가정에서 기쁨을 못 찾는 경우가 많다. 인생 전체로 접근해야지, 담배 하나 끊게 해 보겠다? 당연히 실패다."

 

- 청소년 흡연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각도 달라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다 성숙해야 한다. 불량 청소년의 비행이란 식으로 바라보지 말고, 탈출구를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결국 찾아간 곳이 거기(흡연)라는 말이다. 다른 탈출구나 놀이공간을 마련해주려고 노력해야지, 무슨 나쁜 놈들 어떻게 한 번 두드려 패볼까 하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 그 외 도움될 만한 '팁'이 있다면?

"글쎄… 딱히 간단히 나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다. 스스로 의지가 없으면, 효과적인 방법은 별로 없다. 여기 국립암센터 금연콜센터, 또 가까이는 보건소와 같이 상담사와 대화하면서 정보도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많다. 금연 의지가 있다면 도움 받을 수 있는 곳들이다."

 

- 끝으로 흡연 청소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 담배, 암으로 죽을 때까지 진짜 끊기 힘들다."

 

의사이자 시인 '서홍관'은 누구?

"길 잃은 땅벌 한 마리 / 내 방으로 날아들었고 / 위협적으로 윙윙거리는 그 녀석을 / 신문지로 내려치려다 그만두었다 / 나도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던가 / 가슴 쥐어짜며 후회한 날들은 또 / 이제 창문을 열고 돌려보내마 / 너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지금은 깊은 밤인가'란 시집에 수록된 '운명과 땅벌'이란 제목의 시다. '의사 서홍관'이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의사인 동시에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1985년 창작과비평사를 통해 등단했고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전염병을 물리친 빠스뙤르', '장기려 전기', 시집 '어여쁜 꽃씨 하나', '지금은 깊은 밤인가', 수필집 '이 세상에 의사로 태어나' 등이 있다. 1958년 전북 완주 출생.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인제의대 가정의학과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로 일하고 있다.

 

이런 그를 집중적으로 '인터뷰'한 책이 최근 '창비'를 통해 나오기도 했다. 다름 아닌 '직업탐색보고서' 시리즈 '의사편'에서 중학생 2명이 그를 인터뷰한 것이다. 서홍관 의사는 의사에게 꼭 필요한 자질을 묻는 질문에 '지적능력과 판단력 그리고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감성'을 꼽고 있다.

 

"나와 내 가족에게 하듯이 남을 대하는 것이 의사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봐. 내가 남에게 존중받기를 원하고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도 똑같이 대접하라는 거지. 그걸 실천할 수 있다면 윤리적인 의사야."


태그:#서홍관, #흡연, #금연클리닉, #담배, #청소년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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