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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수업 시작종이 울리려면 한 시간 남짓 남았다. 짙은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았다. 몇몇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바삐 교문에 들어선다. 얼굴에는 싱그러움이 묻어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한 학생이 인사를 건넨다.

"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 학교에 일찍 등교하네!"
"부모님 출근시간에 맞춰 좀 서둘렀어요!"
"그래? 그럼 도서관 문 열었으니 거기서 책 좀 읽으면 좋겠네!"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산하게 현관으로 들어간다.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는 일은 즐겁다. 인사는 사람을 더욱 가깝게 하는 것 같다. 녀석의 명찰을 보며 이름을 기억해둔다.

훈련에 훈련을 더하는 검암중학교 레슬링부 선수들

아침운동으로 체력을 기르는 검암중학교 레슬링부 선수들이다.
 아침운동으로 체력을 기르는 검암중학교 레슬링부 선수들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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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운동장에서 늘 보는 얼굴들이 훈련에 열중이다. 우리 학교 레슬링부 선수들이다. 선수래야 달랑 4명이지만 훈련 열기만큼은 운동장을 뜨겁게 달구고도 남는다. 운동장 가장자리를 돌면서 체력훈련을 하느라 비지땀을 쏟고 있다. 얼굴은 이미 붉게 상기되었다. 숨이 턱에 차오르는 듯 표정이 많이 일그러졌다. 선수들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김병민 코치선생님은 초시계로 기록을 체크한다. 발걸음을 다그치는 호각소리가 요란하다. 호랑이처럼 무서운 선생님이지만, 목소리만은 부드럽다.

"야! 파이팅! 조금만 더 힘을 내! 이번엔 47초다. 조금 나아지고 있어!"

검암중학교 레슬링부 선수는 1학년 학생들로 구성되었다. 신세현, 임광택, 강창규, 한현희가 그들이다. 체력운동으로 아침을 연다.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한 바퀴를 뛰고, 다음 조가 이어서 뛴다. 숨을 고르는 시간은 1분도 채 안 된다. 있는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린다.

막바지에 이르자 체력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지켜보기가 안쓰럽다. 나는 코치선생님께 "오늘은 여기까지만 시키세요!"라는 말을 할 뻔했다. 그런데 선생님 표정은 단호하다. 훈련에 있어 적당이란 없다. 정신적으로 해이해지면 훈련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다. 학생들과 약속한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강도를 높여 훈련에 돌입한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이제 마지막 바퀴다. 젖 먹던 힘까지!"

선수들은 힘든 발걸음으로 출발점에 다시 도달한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매일 반복되는 훈련에도 늠름함을 잃지 않은 선수들이 대견하다.

체력운동을 마치고 레슬링 훈련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훈련장에서는 기본 기술과 근성을 기르는 훈련을 하면서도 정규수업은 빠뜨리지 않고 방과후에 강도 높은 훈련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힘든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레슬링

무슨 운동 종목이든 힘들지 않은 종목은 없을 것이다. 특히, 레슬링 선수들의 훈련은 혹독하다. 자기 자신과 부단한 싸움으로 기술을 연마한다. 체중조절의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는 체중 감량을 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체중조절에 실패하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본에 충실한 훈련으로 기술을 연마하는 레슬링부. 김병민 코치선생님은 학생들의 자상한 형님이기도 하다.
 기본에 충실한 훈련으로 기술을 연마하는 레슬링부. 김병민 코치선생님은 학생들의 자상한 형님이기도 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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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훈련을 견뎌야 하는 종목인지라 레슬링은 선수층이 얇다. 선수를 길러내는 사회체육기관도 없다.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선수를 길러내지 않으면 선수 양성이 어렵다.

우리 학교 레슬링부도 선수를 뽑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대개 레슬링선수는 중학교 때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레슬링부가 있으면 그 선수들을 받아서 훈련을 시키면 되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신입생 중 소질이 있어 보이는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선수를 뽑는다.

어렵사리 선수를 확보하고도 중도에 하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처음에는 잘 따라오다 훈련의 강도를 높여 가면 그만두는 선수가 생긴다. 재목감이다 싶은 선수가 포기할 때는 감독이나 코치는 김이 빠진다고 한다.

우리 학교 레슬링부도 한때 위기를 맞았다. 선수들이 훈련을 게을리하고, 희망하는 학생도 줄어들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더구나 입상 실적도 저조하고….

금년 들어 재창단하는 기분으로 레슬링부 분위기를 일신하였다. 코치선생님도 새로 영입하였다. 훈련에 자주 빠지는 학생들과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을 분리하였다. 다행히 새로 뽑은 선수 4명이 코치선생님과 호흡을 맞춰 열심히 훈련에 임해 기대를 부풀게 하고 있다.

튼튼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기술이 통하는 레슬링 종목이다.
 튼튼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기술이 통하는 레슬링 종목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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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검암중 레슬링부.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검암중 레슬링부.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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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레슬링부 감독과 코치선생님은 선수들을 친 동생처럼 다독이며 훈련에 임한다. 지도자는 필요한 기술과 훈련만으로는 훌륭한 선수를 키워낼 수가 없다. 입상 실적에 매달리다 보면 학습지도와 인성지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면서 훌륭한 인격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때 선수들은 훈련에 전념할 수 있다.

레슬링계 거물 선배님들이 후배를 격려하다

며칠 전, 반가운 얼굴들이 교장실을 찾았다.

"저, 장창선입니다. 검암중 레슬링부가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해 격려차 왔습니다."
"장창선 선생님? 얼굴이 많이 익은데요."
"교장선생님 나이 정도면 제 이름을 기억할 것 같네요."
"장 선생님 혹시 올림픽 메달리스트? 그 올림픽이 언제죠?"
"절 기억해주셔 고맙습니다. 동경올림픽 때 은메달을 땄습죠."
"이렇게 직접 찾아주셔 정말 영광입니다."

작은 키에 검은 얼굴의 장창선 선생님이 반갑게 내 손을 잡았다. 자기를 알아보는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되풀이하였다.

우리 학교 레슬링부와 함께 레슬링협회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쪽 왼쪽은 김병민 코치선생님이고 이어서 검암중학교 레슬링부이다. 뒷쪽은 왼쪽부터 류충선 감독선생님, 필자, 장창선 고문님, 김문기 협회장님, 김화경 전무이사님이다.
 우리 학교 레슬링부와 함께 레슬링협회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쪽 왼쪽은 김병민 코치선생님이고 이어서 검암중학교 레슬링부이다. 뒷쪽은 왼쪽부터 류충선 감독선생님, 필자, 장창선 고문님, 김문기 협회장님, 김화경 전무이사님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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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레슬링협회 김문기 회장님과 김화경 전무이사님이 우리 학교를 방문하였다. 뭉그러진 귀에 다부진 몸매에서 레슬링 선수 출신임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장창선 고문은 동경올림픽 은메달 입상과 함께 196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선 한국 레슬링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여 국위를 선양하기도 했다. 태릉선수촌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레슬링협회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레슬링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시립 전문대 교수인 김 협회장님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고, 국제심판으로 활약한 레슬링계의 거물이다.

나는 레슬링 관계자들에게 우리 학교 운동선수들의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레슬링 훈련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장 고문은 선수들을 보자 등을 두들기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제18회 동경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장창선 고문님께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제18회 동경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장창선 고문님께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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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희들 참 잘 생겼다. 머리 스타일도 단정하고! 너희들을 보니 내가 다 힘이 솟는 것 같구나. 나도 너희들만 한 나이에 운동을 시작했지! 그 땐 물불을 안 가리고 선생님의 호령에 땀을 흘리고 앞만 보고 달렸어. 가슴 속에 목표를 세우고, 정말 열심히 훈련을 했어.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붙고 누구와 싸워도 이길 자신이 생긴 거야! 너희들의 빛나는 눈을 보니 희망이 보여!"

비지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선수들을 격려하는 레슬링계 선배님은 감회가 남다른 것 같았다. 예전 운동할 때가 생각나서 그런지 기본자세를 취해보는 모습이 진지했다.

시립 인천전문대 김문기 교수님(인천레슬링협회장)께서 레슬링 선수단을 격려하고 있다.
 시립 인천전문대 김문기 교수님(인천레슬링협회장)께서 레슬링 선수단을 격려하고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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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협회장님은 감독선생님과 코치선생님께 선수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하라는 말을 남겼다. 검암 건아들 중에서 장 고문님과 같은 훌륭한 선수가 나올 거라는 희망을 가져보자고 했다.

오늘도 검암중학교 선수들은 피나는 훈련으로 꼭 학교와 우리나라를 빛낼 선수가 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한다. "필승!"을 외치는 목소리가 훈련장이 떠나갈 것 같다.


태그:#검암중학교, #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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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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