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산책길에서 주렁주렁 열린 박을 만났다. 요즘 시장에서도 만나기 힘든 박덩이. 그닥 크지 않았지만 반가웠다. 이런 가을날 초가 지붕 위에 주렁주렁 얹힌 박덩이는 옛부터 풍와 다산의 상징이다. 내가 자랐던 고향 마을에서는 박과 조롱박을 많이 키웠다. 조롱박 덩굴이 뻗어나가는 모양은 장수를 준다고 해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많이 심었다.
박은 식용으로도 쓰이지만 바가지로 사용하기 위해 많이 심었다. 그러나 요즘은 농촌에서도 바가지 쓰지 않아, 정말 박을 보기 힘들다. 바가지는 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생활용품이었는데 말이다. 멀지 않는 옛날 일이 아득하게 먼 듯 느껴진다. 어릴적 바가지를 두들겨 참새를 쫓던 생각도 난다. 박으로 만든 물바가지를 비롯 약품을 넣는 약합, 술을 담는 술병 등 긴요하게 생활에 쓰였다.
쪼개서 바가지로 만들어 물을 뜨니 얼음물 같이 차고온전한 대로 호리병 만들어서 담으니 옥 같은 술이 맑구나막힌 마음으로 펑퍼짐하니큰 것을 근심할 것이 없네어지간히 커지기 전에는 삶아 먹어도 좋으니까-<동국이상국집 제 4권> 중 '이규보'
우리 생활과 밀접했던 박에 대한 동화, 전설, 민담과 실화가 많다. 신라의 고승 원효는 파계하여 요석궁 공주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은 후, 속복으로 바꿔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라 하였다. 우연히 광대가 무롱(舞弄)하는 큰 박을 얻었는데, 원효가 그 형상을 본떠 박으로 도구를 만들어 '무애호'라고 이름 하고, 이 무애호를 두드리며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수많은 촌락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는 가난하고 몽매한 백성들을 깨우쳐 부처의 이름을 기억하고 염불하게 한 교화의 큰 힘을 나타내는데, 이와 같이 원효의 교화를 도운 무애호(박)은, 바른 삶을 인도하는 목탁을 상징하기도 한다.
바가지 태운 가루는 어린아이의 태독과 치질에 좋아돌아가신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안 나오신 분이지만, 지혜로운 분이셨다. 웬만한 의사보다 낫다고 칭찬을 들으셨다. 특히 어릴적 나는 태독이 심해, 어머니가 종종 바가지 태운 가루로 발라주시면 깨끗하게 낫곤 했다. 그런데 이 가루는 치질에도 좋다고 한다.
정월에는 동네 아이들이 작은 호로박(호리병박)에 세 개에, 색색의 색칠을 해서 차고 다니다가, 열 나흗날 밤에 몰래 차 버리면 한 해동안 재액이 없이 무사히 지낼 수 있다고 하여, 호로박를 많이 차곤 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서는 병원에 가 본 일을 별로 없는 것이다. 요즘 같이 신종플루로 신경이 예민해 지니, 어머니가 처방해준 질병 방퇴법이 은근히 그리워진다.
환한 달덩이 같이 박이 굴러다니는 지붕 위에 박을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 많이 난다. 어머니는 어릴 적 나의 주치의기도 하지만, 내 친구들이 음식을 잘못 먹어 갑자기 배가 아플 때는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게 하고,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대고 엎드려 있으라고 처방해주시곤 했는데, 정말 그렇게 하면 나았던 것이다. 특히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것은 대나무를 땅에 꽂고 위부분을 여러 갈래로 쪼개, 그 위에 정화수를 담은 바가지를 올려 놓고 많이 비셨다.
이렇게 하면, 박은 둥글고 씨가 많아 생명력과 생산성과 장수를 뜻해서, 자손이 번창한다고 믿으셨다. 그래서일까. 어머니의 아들 딸에서 생긴, 손자 손녀, 증손녀 증손자 합하면 서른 명이 넘는 대가족이다.
어머니는 박으로 만든 바가지로 웬만한 질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해서, 마을의 질병이 돌때 마루에 엎어 놓고 두 손으로 마루를 문질러 소리를 내거나, 장대 끝에 바가지를 매어두면 병이 사라진다고 믿으셨다. 정말 괴로운 신종플루 때문에, 박 하나 얻어, 어머니처럼 신종플루 질병퇴치를 빌어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