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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올레길이 바다를 향하고 있다면 옛 낙안군의 올레길은 평야를 향하고 있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있는 분지와 같은 형태인 이곳에서 산 아래는 마을들로 이어지며 그 중심에는 평야가 있다. 시원한 평야를 바라보면서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서는 낙안군 올레길에는 긴 삶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그 길에 담아보는 것이다. 이제 필자와 함께 낙안군 25킬로미터 올레길을 걸어보자.

옛 낙안군 전경 사진 (사진가 김남표 작)
 옛 낙안군 전경 사진 (사진가 김남표 작)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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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군 올레길은 총 25킬로미터로 코스를 상세히 나열해 보면 조선시대 전통도시인 낙안읍성앞 한창기 뿌리박물관에서 출발해 평촌마을->낙안향교->교촌마을-내운마을->이곡마을->구기마을->연산마을->사창모퉁이->홍교->고읍마을->낙성마을->옥산마을->낙안읍성 순이다. 걸어서 약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낙안군 올레길의 출발지인 순천시 낙안면 평촌마을
 낙안군 올레길의 출발지인 순천시 낙안면 평촌마을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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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낙안면 평촌마을은 사적지 제302호 낙안읍성 바로 앞에 있는 마을이다. 사적지 보호구역내에 있다 보니 개발이 제한돼 옛 70년대의 모습들을 그대로 간직한 곳인데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은 돌담이다.

올래길은 평촌마을의 중심부를 지나는 약 200여 미터로 기와와 슬레이트집이 혼합돼 있으며 길 중간에 지금은 쉬고 있는 방앗간의 모습은 이채롭다. 또한, 마을회관의 건물형태가 재미난데 아래층은 블록가옥으로 위층은 정자인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 길 끝부분에서 좌회전을 해 또다시 200여 미터를 가면 낙안향교에 다다른다. 길 중간에 평야는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서 만나는 고혹적인 풍경은 좌측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외로운 고목의 모습이다.

낙안향교와 교촌마을 풍경
 낙안향교와 교촌마을 풍경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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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촌마을에서 낙안향교로 가는 길은 낙안-벌교간 857번 2차선 국도와 마주친다. 그 길을 가로지르면 낙안향교의 홍살문을 통과하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하마비가 뚜벅이를 맞이한다. 말 타고 가는 것이 아니기에 멈출 필요는 없지만 잠시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예법(?)일 듯하다.

길은 낙안향교의 담벼락을 감싸고 돌아간다. 담 너머 향교 명륜당 뒷마당에 있는 500여년 된 은행나무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곧바로 발견하게 되는 정문, 정문 앞에서 교촌마을 중심부로 내려가는 길은 아주 작은 언덕이다. 이곳에서 골목 사이로 보이는 오봉산과 감나무의 조화는 시골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준다.

이후 잠깐의 내리막길에서 사거리가 나오면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고 20여 미터를 더 걸으면 좌측으로 이색적인 대문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줄기에 돌이 박힌 감나무가 대문 한쪽을 지탱하고 있는데 그 모습은 직접 걸으면서 직접 발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그리고 걷기를 계속하면 실개천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꺾어 내려간다. 개천길이 100여 미터 진행되고 우측으로는 마을, 좌측으로는 오봉산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에서의 오봉산은 명산 반열에 들어가는데 이곳의 오봉산은 악산으로 천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

순천시 낙안면 내운마을과 운동마을 지나가는 길
 순천시 낙안면 내운마을과 운동마을 지나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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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끝머리에 금계교라는 조그만 다리가 나오는데 좌측으로 돌아서면 곧바로 내운마을로 연결된다. 이곳에서부터 이곡마을까지 가는 길은 야트막한 언덕과 곡선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길이다. 좌측으로 오봉산과 벗하고 우측으로 들녘과 친구가 돼 걸어봄직하다.

출발점에서 이곳까지는 약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기에 굳이 주점(?)을 찾지 않아도 되지만 옛 선인들이 이 길을 다니면서 군데군데 자리한 주막집을 들렀던 점을 상기한다면 내동마을 입구에 있는 구멍가게인 이름 없는 막걸리 집에서 잠시 쉬어가도 괜찮을 성 싶다.

이 막걸리 집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제법 아름답다. 뒤로는 오봉산이, 앞쪽으로는 넓은 평야가, 진행할 방향으로는 낙안군 올래길 중에서도 예술적으로 구부러진 길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창 한옥마을 공사가 시작되고 있으니 향후 그 운치 또한 남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순천시 낙안면 운동마을, 이곡마을앞 길
 순천시 낙안면 운동마을, 이곡마을앞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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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군 올레길 중에서 가장 시골다우면서 오밀조밀한 마을을 꼽으라고 한다면 운동마을을 들 수 있다. 이곳은 그냥 스쳐 지나지 말고 마을 당산을 찾아 쉬는 시간을 가져볼 것을 권한다. 대부분 마을에는 당산이 있고 보호수가 자리하고 있지만 이곳의 정자인 낙회정은 뭔가 느낌이 있다.

내운마을을 거쳐 이곡마을 입구까지 가는 길은 낭만적인 곡선이 반복된다.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길이기에 좋은 추억이 될 듯하다. 또한 막바지에 있는 언덕위의 교회당은 그 건물을 지나쳤다가 다시 뒤돌아보면 괜찮은 그림이다.

이후 857번 국도를 만나기까지는 농촌의 냄새(?)를 맡을 차례다. 배나무 사이로 소를 키우는 축사를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농촌 길을 걸으면서 쇠똥냄새를 맡지 않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추억을 놓치는 일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지나치면 된다.

용릉마을에서 농촌의 냄새를 맡고 50여 미터 진행하다 보면 다시 857번 국도 2호선과 마주친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면 곧바로 낙안배로 유명한 이곡마을을 접하게 되는데 마을을 돌아보고 가느냐 그대로 직진하느냐는 뚜벅이의 마음이다.

그런데 단체로 걷는 팀이라면 이 마을엔 폐교가 하나 있기에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도 무방할 것이다. 이곡마을에서부터 연산마을까지 국도를 따라 걷는 길은 평야지대를 만끽할 수 있는 코스이면서도 직선 국도이기 때문에 지루한 구간임을 감안해야 한다. 그 구간은 약 1킬로미터 정도다.

홍교앞을 지나기 전에 있는 길거리 약수와 홍교, 벌교성당의 모습
 홍교앞을 지나기 전에 있는 길거리 약수와 홍교, 벌교성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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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도로 끝 무렵에 만나는 곳이 순천시 낙안면 구기마을과 보성군 벌교읍 연산마을로 시. 군의 경계선이다. 지금까지는 평야지대와 시골을 만났다면 이제부터는 약간 복잡한 곳과 만나게 된다.

좌측으로 농공단지며 우측으로도 집들이 연결돼 있다. 시골풍경인 낙안과 중소 상공도시인 벌교라는 곳의 차이를 미묘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이 구간은 어찌 보면 약간 답답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데 길 양쪽으로 집들이 들어선 것도 그 원인이 있지만 좀 더 높은 곳에서 본다고 가정하면 양쪽 산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홍교 다리를 앞두고 상무자동차학원을 지나면 곧바로 일명 봉림 길거리 약수를 만나게 된다. 산에서 솟아나는 물을 긴 호수로 연결해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논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인데 뚜벅이에게 이만한 식수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일단 음용을 해도 되느냐는 물음에 필자가 보장한다고 답하고 싶다. 필자가 2008년 이 지역 자전거 100회 답사 때 3개월간 날마다 지나면서 마셨는데도 전혀 탈이 없었던 물이다. 그런데 그 산을 보고 묘지들이 많아 좀 놀랄 독자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래서 약수로 생각하거나 성수로 생각하거나 그것은 뚜벅이 생각 나름이다.

길거리 약수를 지나 길 모퉁이를 지나면 홍교와 만나게 된다. 홍교는 보물 제304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아취교다. 그런데 지금껏 걸어온 길을 더듬어 보면서 이곳에 서면 벌교천을 두고 양쪽 산이 엎드리면 코 닿을만한 거리로 좁혀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홍교 있는 곳에 큰 바위 하나 떨어지면 낙안들 전체가 자연 댐이 돼 엄청난 담수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너스레를 떨기도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물속에 수장시키는 것은 꿈속이라도 끔찍한 일이다.

일단 홍교를 걷너 보자. 1737년경, 스님들이 공덕을 쌓기 위해 다리를 놨다고 한다. 그 스님들의 마음을 생각하면서도 걸어보고 일제강점기때 없애버리려 했던 것을 주민들이 막았다는 그 사연도 되새기면서 건너보자.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부근길은 조용히 사색하기에 좋다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부근길은 조용히 사색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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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교를 건넜으면 광주방향 옛길로 걸어 올라간다. 다시 평야를 보러 올라가는 길이다. 3분 정도 복잡한 도로를 걷다가 고읍으로 들어서면 약8킬로미터의 길은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시골 아스팔트길이다. 이 구간에서 차량 열 대 이상을 만났다고 한다면 그날은 아마도 그 마을 잔칫날(?)날일 가능성이 많다.

이 구간에서는 한가한 만큼 조용히 사색에 잠기면서 걷는 시간을 가져봄직하다. 물론 고민이 없는 사람들은 좀 지루한 시간이 될 듯도 싶지만 걷는다는 것이 곧 사색이기에 없는 고민도 만들어서 풀고 가는 길이 되길 바란다.

낙성초등학교에 다다르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길이며 들판이다
 낙성초등학교에 다다르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길이며 들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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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편안하게 쉴 공간으로는 낙성초등학교 느티나무가 있다. 그리고 다시 출발점인 낙안읍성앞까지 걷게 되는 구간은 낙안군 올래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길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 구간은 완만한 평야지대로 논 밭길을 지난다고 볼 수 있는데 지금껏 걸었던 길의 장점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특히, 옥산온야길로 접어들어 옥산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산티아고의 올래길을 연상하게 한다.

옥산마을길은 가장 올레길 다운 길이다. 들판 가운데 무덤 앞에 십자가를 새겨놓은 것이 이색적이다
 옥산마을길은 가장 올레길 다운 길이다. 들판 가운데 무덤 앞에 십자가를 새겨놓은 것이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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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낙안면 옥산길 47번지는 낙안군 올레길의 하일라이트인 셈, 마을의 작은 언덕이지만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
 순천시 낙안면 옥산길 47번지는 낙안군 올레길의 하일라이트인 셈, 마을의 작은 언덕이지만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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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들어서는 입구부터 약간 오르막이 있고 그 언덕배기에 사람 크기만 한 돌에 십자가가 새겨져있다. 문득 자신이 성직자가 돼 순례길을 걷는 듯 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길가에 십자가가 있는 무덤은 분명 이색적이다.

이후 마을로 접어들고 옥산길 47번지에 다다르면 눈앞에 갑자기 낙안읍성의 평야가 펼쳐진다. 산에 오른 것도 아니고 불과 마을 언덕길에 서 있는데도 그 넓은 들이 눈에 쏘옥 들어오고 가슴까지 파고드는 길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낙안군 올래길의 하이라이트인 셈이다.

낙안군 올레길을 걷고 나서

낙안군 올레길에서 만나 볼 수 있는 풍경
 낙안군 올레길에서 만나 볼 수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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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선조들이 마을과 마을을 다닐 때 사용하던 길이다. 세상의 모든 길이 소중하지만 옛 낙안군 마을길들은 주민들이 걸었던 길이면서도 동학군이 걸었던 길이며 빨치산이 걸었던 길이다. 긴 소설과도 같은 낙안군 올래길, 평온한 듯 한 산과 평야 속에서 그 얘기들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코스로는 이 길이 안성맞춤이다.

단지, 현재 아스팔트나 시멘트 포장길이기에 다소 아쉬운 점이 있지만 전경은 훌륭하고 아이들도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길이다. 차후 구간별로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시스템과 그 스탬프를 모두 찍어 가져온 뚜벅이들에게 낙안온천비용을 반액으로 해 주는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면 그 어느 길 못지않은 멋진 길이 되리라 생각된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낙안군, #남도TV, #낙안, #벌교, #올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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