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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읽었다. 책 후반부에 있는 작품 해설부 내용, 그 시대 대표 작가는 누구였는지, 작가 대표작에는 또 무엇이 있는지, 다른 작가는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같은 이야기들은 한쪽으로 제쳐두고 싶다.

 

나는 책 속 주인공이자 우리들 아버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윌리 로먼과 그의 가족 간 이야기, 그것 하나에 집중하고 싶다.

 

1949년에 발표되었다는 <세일즈맨의 죽음>. 이 책은 미국의 산업화를 불러일으킨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이 책 시점은 주인공 윌리 로먼의 전성기. 즉, 대공황이 불어 닥치기 바로 전인 1928년(1929년 10월 대공황 시작)과 10년간의 대공황을 겪고 곧바로 찾아온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시점이 교차한다.

 

세일즈맨 아버지 윌리 로먼

 

젊은 시절 윌리는 큰돈을 못 버는 세일즈맨 따위는 집어치우고 친형 벤을 따라서 알래스카로 노다지 광산을 찾기 위해 동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나게 된 나이 여든넷 세일즈맨이 전화통화만으로 아주 쉽게 영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세일즈 경험을 쌓게 되면 돈을 쉽게 벌 수 있고, 삶이 끝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행복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세일즈맨을 자기 진로로 결정한다.

 

세일즈를 하는 처음 몇 년간 결혼하고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벌이였다.(이때가 전성기인 1928년) 사실 괜찮은 벌이라고 이야기하기엔 뭔가 부족해보였다. 왜냐하면 하루 11시간 동안 1000km를 넘게 운전하면서 종일 번 돈의 대부분이 주택임대나 가전제품 그리고 자동차 유지비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윌리는 이런 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 삶이 더 급했던 나머지 넓은 시각을 지키지 못했다. 90쪽부터 시작되는 하워드와 윌리의 대화 중 그는 운전 때문에 라디오를 켤 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즉, 뉴스와 같은 정보를 접하지 못한 채 세일즈만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윌리는 시대를 파악하는 눈을 잃어버린다. 사실 그 이후 판매실적이 계속 하락하는 가장 큰 이유가 대공황 때문이었지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윌리는 실적하락 원인을 자기 겉모습이라고 판단하면서, 자신감 상실로 위축되는 모습을 보인다.

 

윌리는 과거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지금까지 쌓아놓은 인지도가 있으면 회사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고 앞으로도 계속 쉽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극악의 근무조건을 참고 견디면서 34년간 일해 왔다. 하지만 결과는 노인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처음에는 기본급 없이 성과급만 받다가 결국 퇴직금도 뭐도 아무것도 없이 밑창이 다 뜯어진 헌신짝처럼 버림 받게 된다. 

 

자본주의. 그 어두운 단면

 

기업이라는 몸뚱이에서 실핏줄로 일컬어지는 직업. 그렇기 때문에 실핏줄을 흐르는 핏물처럼 고객을 대상으로 최전방에서 부대껴야 하는 세일즈맨은 회사 수익을 좌지우지 하는 존재다. 하지만 이런 존재들에게 더 이상 이익을 물어올 능력이 사라져서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버려지는 세계가 바로 자본주의 세계요.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단면인 것이다.

 

세일즈맨의 직업병 그리고 부작용

 

과거 어느 한 드라마에서 자동차 세일즈맨이 아무런 대가 없이 다른 회사 차를 정비해 준다. 알고 보니 그 차 주인이 바로 어느 자동차회사 회장이었고, 그런 우연을 가장한 그의 성실함이 빛을 보게 되면서 성공하는 이야기였는데 냉정하게 말해서 그것은 단지 드라마일 뿐이다.

 

실제 세일즈에 들어갔을 때, 중요한 것은 실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팔아야 할 물건을 지금 파느냐 못 파느냐는 싸움이 가장 중요하다. 산다고 하더라도 자기 실적에 포함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자기 몫으로 팔기 위해서는 제품 단점이 있더라도 무조건 감춰야 했고, 장점은 훨씬 과장하는 것도 모자라 없는 장점도 만들어내서 팔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 점이 아마도 세일즈맨 윌리에게 직업병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세일즈는 비교대상을 바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세일즈 관행은 상당 부분 완화되었겠지만 윌리의 주 무대인 1920~1940년대 사이 세일즈맨에게는 판매를 위한 판매가 전부였을 것이다. 이처럼 먹고 살기 위한 세일즈는 삶의 전부를 과장되게 만들었으며, 단점은 철저히 가리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병적인 자신감의 과시는 그의 두 아들 비프와 해피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아들의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현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간혹 등장하는 친형 벤의 목소리는 세일즈맨을 계속 하게 된 후회에서 비롯되는 목소리라고 볼 수 있다. 큰형이 비록 개발 사업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지만 그래도 17살에 떠나서 21살 때 갑부가 되어 나타난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는 세일즈맨을 그 때 집어치우고 노다지를 찾아 떠났으면 지금처럼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환청으로나마 형이 가자고 유혹하는 그 목소리를 따르고 싶어 한다.

 

이처럼 34년간 몸 바친 세일즈맨 생활은 과대해석의 직업병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또 여러 가지 부작용도 만들어낸다. 그것은 바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대신에 그는 차에서 운전대와 함께 시간을 죽이고 있었고, 고객을 만나야 했으며, 이런 외로움들과 함께 세일즈 성과에 대한 압력은 불륜이라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불편한 진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우연히 이 불륜현장을 목격하게 된 장남 비프와의 관계는 이날부터 어긋나게 된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들을 기억하게 되면 다시 과거 잘못이 머릿속을 두드리는 고통이 찾아오게 된다. 아들은 그 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의 한 마디'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무너져버리고 그가 꿈꾸던 모든 것을 내팽겨 쳐버릴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내 생각에는 그들이 바로 그 때. 서로에 대한 대화를 통해 각자가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책 속에서 보는 것과 같이 그 사건이 지나고 10년이 넘게 흐른 그 시간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뿐이었고, 눈에 보이기만 하면 갈등을 일삼는 존재였다.

 

하지만 극 마지막에 이르러 갈등은 부풀어 오르고 극적으로 풀리게 된다. 자신을 미워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들은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단지 불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는 것 그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윌리는 형을 따라 나설 결심을 하고서는 마지막 남은 그의 모든 것을 남겨둔 채 떠난다. 

 

<세일즈맨의 죽음>이 내게 준 것

 

둘 사이를 안개처럼 가로막고 있던 불편한 '진실' 그것을 속 시원하게 터놓지 못한 채 한쪽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을 살고 있던 부자간의 이야기를 다룬 <세일즈맨의 죽음>. 이 비극을 바라보면서 나는 조금은 분석적으로 비극이 일어나게 된 이유들에 관해서 생각해보았다.

 

왜냐하면 <세일즈맨이 죽음>을 낳은 극작가 아서 밀러는 우리들이 이 연극을 보면서 이런 비극적인 결말을 예방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었지, "니들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발버둥 쳐봤자 윌리 로먼처럼 될 거야"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 이런 이야기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세일즈맨의 죽음>이 이야기하는 바는 아마도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시나리오일 것이다. 즉, "가족 간의 믿음이 없고, 가족 스스로의 반성이 없으며, 모든 초점을 돈에 맞춘 삶의 결과가 바로 이럴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가족애와 인간애를 마지막까지 꼭 잡고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만드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더 가까이 접근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고충을 이해하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관심을 조금만 더 기울였으면 어땠을까? 남편은 아내에게 무조건 발언 기회를 박탈할 것이 아니라 같이 대화에 참여시켰으면 어땠을까? 아내는 힘들게 일하는 남편의 사정을 이해하고 할부 소비를 자제했으면 어땠을까? 아들들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남들에게 내세우기 위해서 급조된 '왕'이 아니라 정말로 왕처럼 아버지를 존중해주었으면 어땠을까? 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민음사(2009)


태그:#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 #민음사,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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