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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촛불시민을 수사하고 기소하는데 피의자 가족의 33년 전 기록까지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공안사범리스트'. 12일, 경찰청 국감장에서 최규식 민주당 의원에 의해 제기된 이 내용을 보고 있자니 과거의 암울했던 역사들이 토막토막 떠오른다.

일제 강점기,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 정권은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조선 백성에게 '요시찰인물'이라는 굴레를 씌워 감시하고 통제했다. 여기에는 본격적인 독립 운동가는 물론 만세 시위에 가담했던 일반 백성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공안사범리스트는 1981년 2월 21일에 발표된 대통령 훈령 '공안사범관리규정'이라는 것에 법률적 근거를 두고 있다. 놀랍게도 이 규정은 공안사범에게 노골적으로 '현시찰인물'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있다. 닮은꼴이다.

이 법령이 발표된 1981년 2월 21일이면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이 1980년 광주를 피로써 제압하고 체육관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아직 취임도 하기 이전의 시점이다. 따라서 이 법령은 반란 군인들이 차후 군부독재의 기반을 구축하고자 남발한 악법 중 하나에 불과했다.

최규식 민주당 의원이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 국정감사에서 '공안사범 조회 리스트'와 관련해서 발언하고 있다.
 최규식 민주당 의원이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 국정감사에서 '공안사범 조회 리스트'와 관련해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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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사범리스트는 '긴급조치 9호' 연장이자 12·12 쿠데타 후속

우리가 알고 있듯이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지탱한 것은 긴급조치라는 악법이었다. 박정희는 1974년부터 무려 아홉 차례에 걸쳐 긴급조치를 발령했는데 그 중에서도 긴급조치 9호는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문장 하나 말 한 마디로 멀쩡한 시민을 구속하여 15년 이상의 형을 살게 할 수 있었다. 전두환이 발령한 공안사범관리규정이라는 것은 바로 이 긴급조치 9호의 취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이 법령에 규정되어 있는 공안사범의 범위에는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자, 각종 포고령 위반자,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자, 밀항법, 수산업법 위반자, 형법 115조(소요죄) 위반자 등은 물론 공안사범에서 제외된 정보사범과 기타 협의회에서 지정하는 법령 위반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만하면 이것은 전 국민을 공안사범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의 긴급조치 9호가 발령되었을 때 한국 사회에 유행한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전 국민의 죄수화'였다.(서중석 저 '한국현대사') 이로 볼 때 전두환의 공안사범관리규정이라는 것은 박정희가 못다 이루고 죽은 '전 국민의 죄수화'를 기도한 전두환 판 긴급조치 9호였던 것이다.

이런 악법이 무려 28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은 이 나라의 역사가 여전히 왜곡되어 있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저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가 아닐까.

일제순사의 아들은 되고, 민주화인사 딸은 안 되고?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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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경찰 하신 것을 저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님이 경찰 하신 것은 직업이었다. 일제시대 때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다. 제 선친은 절대로 친일을 위해 민족을 속이거나 압박을 가한 일이 없었다는 것을 단언한다."

작년 9월 2일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부친의 일제 순사 전력과 관련하여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한 말이다. 당시 우리는 다소 착잡하기는 했지만 아비의 허물을 자식에게 물을 수는 없는 것이라 하여 그의 장관 부임을 적극적으로 반대할 수가 없었다. 바로 이런 문제를 법으로 규제한 것이 연좌제 배척법인데, 이성적인 사회라면 이 법에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있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13조 3항)

경찰은 작년 6월, 촛불시위에 참가한 죄목으로 이아무개(41·여)씨를 기소하면서 공안사범리스트를 조회하고 그 내용을 참고자료로 첨부했다. 여기에는 이씨의 부친이 1976년 민주구국선언의 유인물을 배포하여 긴급조치 9호를 위반했다는 것과 이씨의 남편 이인영 전 의원이 대학생 시절 시위를 주도한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잠깐 여기서 우리는 1976년으로 되돌아가 본다. 1976년이면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발악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이미 1975년에 서울대 학생 수천 명이 민주구국투쟁선언을 해 놓은 상태로서 정국은 날로 긴장국면으로 치닫고 있던 때였다.  

"3·1절 57돌을 맞으면서… 이 나라는 1인 독재 아래 인권이 유린되고 자유는 박탈당하고 있다. 우리는 이 나라의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민주구국선언을 선포하는 바이다. 이 나라는 민주주의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 경제입국의 구상과 자세가 근본적으로 재검토 돼야 한다. 민족통일은 오늘 이 겨레가 짊어져야 할 지상의 과업이다."

1976년 3월 1일 저녁 명동성당에서 열린 '3·1절 기념 미사 및 기도회'에서 낭독된 성명서의 주요 내용이다. 이 성명서에는 함석헌 윤보선 정일형 김대중 윤반웅 안병무 이문영 서남동 문동환 이우정 등이 서명했다.

다음 날 3월 2일 박정희는 국무회의에서 서명자 명단에 김대중이 있는 것을 보고 "모두 다 잡아넣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열흘 뒤인 3월 10일 오후 서울지검은 '일부 재야인사들의 정부 전복 선동 사건'을 발표하면서 가담자 20명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서명자 10명 외에 선언문 제작에 관여한 문익환 이해동 목사, 이태영씨, 함세웅 문정현 신현봉 김승훈 장덕필 김택암 안충석 신부 등이 공모자로 추가됐다.

역사가들은 3·1민주구국선언을 한국 민주화 역사의 '꽃'이자 '명장면'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당시 독재정권은 이를 '명동사건'으로 칭하면서 '공안사건'으로 변질시켰다. 이것은 남산 부활절연합예배사건(73년)이나 민청학련사건(74년)과 마찬가지로 유인물을 증거로 반유신세력을 일망타진하는 수법의 전형이었다.

촛불시민 이씨의 부친은 바로 이 3·1민주구국선언의 유인물을 배포하다가 체포됐다. 따라서 이것은 독립운동에 버금가는 자랑스러운 개인 치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자랑스러운 치적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자식에게까지 연좌되어 형사 처벌에 악용된 것이다.

일제 순사부장의 아들은 교육의 수장을 맡고 있는 반면 민주운동가의 딸은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하는 현실은 우리를 허탈하게 만든다. 게다가 촛불집회는 국민의 기본권을 행사한 것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도 야간시위금지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리지 않았는가? 무엇보다도 촛불시민을 공안사범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긴급조치 9호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을 맞아 지난 5월 2일 저녁 서울광장에 모인 촛불시민들을 경찰이 강제 연행하려하자 시민들이 가까스로 막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을 맞아 지난 5월 2일 저녁 서울광장에 모인 촛불시민들을 경찰이 강제 연행하려하자 시민들이 가까스로 막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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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의 '저 어두운 곳을 향하여'

공안사범자료관리협의회에는 법무부와 안기부(국정원)와 검찰과 치안본부(경찰청)와 보안사(기무사) 등이 망라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이 누구인가? 이른바 '공안의 추억'을 먹고 사는 집단이다.

공안사범관리규정뿐 아니라 독재자들이 남발한 구시대의 법령과 규칙들은 모두 일소되어야 한다. 상위법인 헌법과 법률이 바뀌었는데도 하위 법인 명령 규칙 등의 악법이 온존하거나 부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명박 정부의 성격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이후 국민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부단히 강화하면서 이른바 공안세력에게 힘을 실어 주지 않았는가.

'공안'이라는 것은 분단시대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다. 최근 '남조선해방전략당'이라는 누명을 쓰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경제학자 권재혁씨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와 함께 기소된 이형락씨는 10년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 후 자살했으며, 이일재씨는 20년 동안 감옥에서 청춘을 허비했고 이강복씨는 복역 도중 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식지 않은 얼룩과 상처들이 숱하게 도사리고 있다. 끝없는 진실 추구와 화해만이 이를 아물게 할 수 있다. 하물며 우리에게 더 이상 군부독재시절의 환부를 도지도록 하지 말라.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우리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봉하는 교회의 찬송가에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라는 노랫말이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저 어두운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추리소설 'BK연쇄살인사건'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공안사범, #긴급조치, #군부독재, #공안사범관리규정, #12`12, #납치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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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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