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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이즘 헤이리밖의 가을이 궁금했습니다.

초여름에 모내기를 했던 그 들판의 모습도 궁금하고 길가의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의 안부도 궁금했습니다.

추석날, 처는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고, 큰딸 나리와 아들 영대가 명절을 함께 보내기위해 헤이리로 왔습니다.

저는 처의 차를 제가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나리와 영대가 모티프원의 청소를 오늘 하루 맡아 주기로 했으므로 아침 일찍 헤이리 밖으로 나갔습니다.

참나무골 니은네그래집은 아직 아침햇살이 미치지못하고 캐러맬&캔디집은 겨우 햇살이 스며들고 청향재에서는 벽에 가로등이 긴 그림자로 누운 시각이었습니다.


억새가 아침햇살에 스스로 눈부시고 부지런한 까치만이 가로등 위에서 깃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멀리 기러기가 남쪽을 향하고 헤이리는 여전히 적막입니다.

헤이리 인근 야산의 한 뫼는 벌초를 끝내고 단정하게 손질되어있습니다. 무덤가는 가을의 정취가 감싸고 있습니다.

단정하게 손질된 이 산소를 통해서도 후손의 조상에 대한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습니다.
▲ . 단정하게 손질된 이 산소를 통해서도 후손의 조상에 대한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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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밤을 보내고 갔을 산짐승의 자리이며 나름의 방식으로 겨울을 맞을 식물들의 준비가 눈에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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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헤이리의 고요와는 달리 동화경모공원은 이른 시각부터 공경의 발길로 부산했습니다.

언덕을 넘자 황금들판이 펼쳐졌습니다. 이미 베어져 올 추석의 제사상에 햇살 밥이 되었을 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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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간혹 마음을 쉬기 위해 찾곤 했던 보현산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작년에 지뢰제거 작업이 진행되어 도로변의 지뢰표시판은 사라졌고 등산로도 새롭게 조성되었습니다.

108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정상 아래의 작은 사찰 보현사까지만 가도 멀리 금촌이 환영처럼 내려다보이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조망을 즐길 수 있습니다.

보현산 보현사 앞  마당에서 보는 남쪽 풍경. 저는 눈아래 펼쳐지는 이 아련함을 좋아합니다.

보현산은 군사적으로 요충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산에 중요 군사시설이 들어섰고 그 것을 방어 하기위해 많은 지뢰가 묻혔습니다. 그 지뢰를 제거하는 작전이 작년에 전개되었고 이제는 이산에 등산로까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보현산 보현사 앞 마당에서 보는 남쪽 풍경. 저는 눈아래 펼쳐지는 이 아련함을 좋아합니다. 보현산은 군사적으로 요충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산에 중요 군사시설이 들어섰고 그 것을 방어 하기위해 많은 지뢰가 묻혔습니다. 그 지뢰를 제거하는 작전이 작년에 전개되었고 이제는 이산에 등산로까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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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북쪽의 송악산, 남쪽의 삼각산, 동쪽의 감악산, 서쪽의 한강과 임진강의 합수지점이 조망되거나 멀지않은 곳에 있어 문외한이 보아도 명당이라 할 만했습니다. 보현사는 주춧돌과 기와장이 발굴된 옛 사찰 터에 새롭게 세워졌습니다. 신라시대에 세워져 고려 때까지 번성했던 절은 조선시대의 숭유배불정책으로 폐사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한 여승이 불당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지만 한국동란시 군주둔지가 되어 다시 소실된 것을 산 아래의 마을사람들이 초가삼간을 짓고 본존불을 모셨던 곳입니다. 현재의 본전은 10여 년 전에 인수스님에 의해 지어졌으며 본존불은 신라 고승 검단선사의 조각으로 전해집니다.

경내의 맨드라미 시울이 수탉의 볏보다도 붉고 봉선화가 검은 씨를 달았습니다.

보현산 보현사 정원의 닭볏같은 맨드라미는 제 고향에서 흔히 보든 것이지만 이제는 더 다양한 수입 꽃들때문에 도시의 정원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 . 보현산 보현사 정원의 닭볏같은 맨드라미는 제 고향에서 흔히 보든 것이지만 이제는 더 다양한 수입 꽃들때문에 도시의 정원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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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의 부처님께 받쳐진 흰쌀을 보자 어머니의 치성이 생각났습니다. 어머니는 집안에 중요한 일을 앞둘 때면 늘 백미를 싸서 이고 절에 다녀오시곤 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의 입학시험을 볼 때도, 대학의 입시 때도, 그리고 제가 장기간 나라밖으로 나갈 때도 같은 방식의 그 치성은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향 하나를 피우고 고향에 가지 못한 용서를 빌고 두루 감사한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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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마당으로 내려오자 스님이 오사채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추석인데 송편은 드셨습니까?"
"이제 산을 내려가면 먹어야지요."
"한 접시만 요기를 하시지요. 안으로 드세요."

스님의 청을 받들어 요사채 툇마루에 엉덩이를 걸쳤습니다.

송편과 전, 증편과 나물 무침까지 그들먹하게 내오셨습니다.

이 기주떡은 쌀가루를 막걸리로 반죽하여 빵처럼 부풀려찌는 것이기때문에 그 절차가 많이 번거롭습니다.
▲ . 이 기주떡은 쌀가루를 막걸리로 반죽하여 빵처럼 부풀려찌는 것이기때문에 그 절차가 많이 번거롭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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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많이 가는 이 기주떡까지 준비하셨군요. 불가에서도 한가윗날에 준비되는 특별한 행사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단지 휴일에 다녀가실 불자들을 위해 좀 준비한 것입니다. 이 참나물도 이 산에서 직접 가꾼 것입니다."

스님 울력의 흔적. 참나물도 텃밭에서 이 호미로 일군 것이지요.
▲ . 스님 울력의 흔적. 참나물도 텃밭에서 이 호미로 일군 것이지요.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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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는 북쪽이라 감이 잘되지 않는데 이곳은 올해도 감이 익어가는 군요."

"작년보다 더 달린 듯합니다. 저는 감을 나무에서 따지 않습니다. 새들이 밥으로 먹을 수  있도록 그냥 두지요."

"산에 올랐다가 야생하는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톨을 풀섶까지 헤치고 모두 주워가는 사람들이 탐탁치 않습니다. 먹을 것이 남아도는 때에 잔 밤톨 정도는 산짐승들에게 양보해도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절로 자란 야생 밤나무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므로 사실 '양보'라는 말도 적절치 않습니다만……."

스님은 감나무에서 떨어져 날짐승들이 탐하지않는 감만 줍고, 감나무에 달린 감은 손을 뻗으면 닿는 감도 따지를 않습니다. 이 산에 사는 각종 새들의 겨울 양식이 됩니다.
▲ . 스님은 감나무에서 떨어져 날짐승들이 탐하지않는 감만 줍고, 감나무에 달린 감은 손을 뻗으면 닿는 감도 따지를 않습니다. 이 산에 사는 각종 새들의 겨울 양식이 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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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잊은 듯 토란국을 내오라고 시봉보살님께 일렀습니다.

"송편은 속을 채우고 토란은 골을 채운다지 않습니까. 추석에 토란국을 드셔야지요."
"요즘은 방금 전에 손에 들고 있던 물건조차 어디 두었는지가 막연한 제게 이 토락국은 약일듯 싶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살캉거리는 토란국을 맛보았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토란국입니다. 추석과 토란국은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지요.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토란국입니다. 추석과 토란국은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지요.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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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드는 마루아래에서는 강아지가 스님과 제가 벗어둔 고무신을 장난감 삼아 재롱을 부립니다.

"곰돌아, 다음번에는 몸 바꾸어 사람으로 태어나서 좋은 일 많이 하거라."

스님의 넉넉하고 인자함 탓인지 이곳에서는 3개월 된 강아지가 10살 된 고양이의 꼬리를 물고 성가시게 굴어도 고양이는 그저 꼬리를 들어다 놓을 뿐입니다.

이 햇살아래 강아지와 고양이의 원융무애(圓融無礙)의 사귐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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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본전으로 오르는 계단에 음각된 심즉시불(心卽時佛)이 떠올랐습니다.

심즉시불心卽是佛은 우리의 마음이 바로 부처 라는 가르침 입니다. 사람과 만물은 귀천에 구애됨이 없이 모두에게 나름의 불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 . 심즉시불心卽是佛은 우리의 마음이 바로 부처 라는 가르침 입니다. 사람과 만물은 귀천에 구애됨이 없이 모두에게 나름의 불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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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아침, 우연히 마주친 스님의 넉넉하고 정갈한 마음과 햇볕 따뜻한 요사의 소박하고 단순한 풍경의 이대로가 부처다 싶습니다.

참 평화롭습니다. 고무신을 짝궁으로 삼아 홀로 즐거운 강아지와 그 악의없는 모습을 입가에 번진 웃음으로 바라보는 스님이나 이 모두를 비추는 햇살 조차도...
 참 평화롭습니다. 고무신을 짝궁으로 삼아 홀로 즐거운 강아지와 그 악의없는 모습을 입가에 번진 웃음으로 바라보는 스님이나 이 모두를 비추는 햇살 조차도...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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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브로그
www.travelog.co.kr 과
홈페이지
www.motif1.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 보현산, #보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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