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3-2 승리 소식을 자랑하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 누리집(steelers.co.kr) 첫 화면

극적인 3-2 승리 소식을 자랑하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 누리집(steelers.co.kr) 첫 화면 ⓒ 포항 스틸러스

 

며칠 전부터 수요일 저녁 어떤 경기를 볼까 고민했다. 내가 지지하는 팀의 경기가 있다면 딱히 고민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생중계되는 두 경기 모두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힘든 빅 게임이었기 때문에 한참이나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수원 블루윙즈 vs 전북 현대모터스'의 FA(축구협회)컵 준결승전과 2009 K-리그 24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vs FC 서울'의 맞대결을 놓고 고민한 끝에 정규리그 선두권의 치열한 싸움을 선택했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몇 번이고 느꼈지만 정말 이 결정은 현명한 것이었다.

 

이 경기를 생중계한 MBC ESPN 중계팀의 이상윤 해설위원은 "정말로 말이 안 나옵니다"라는 표현으로 종료 순간의 벅찬 감정을 표현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안방 팀 포항을 지휘하는 감독을 가리켜 '파리아스 매직'이라고 하는 것 이상으로 실제로 스틸야드를 누비는 선수들이 진정한 마법사들이었다.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이 이끌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는 7일 저녁 포항 스틸야드에서 벌어진 2009 K-리그 24라운드(9. 19 일정 변경) FC 서울과의 안방 경기에서 종료 직전에 터진 수비수 황재원의 결승골에 힘입어 3-2 펠레스코어로 짜릿한 승리의 기쁨을 1만여 관중들과 나눴다.

 

22초만의 선취골, 그리고 빨간딱지 '둘'

 

이 경기는 현재 정규리그 1위의 방문 팀과 3위 자리에 올라 있는 안방 팀의 맞대결이라는 요소 말고도 지난 8월 26일 열린 피스컵 코리아 2009 준결승 두 번째 경기(포항 5-2 FC 서울)의 내용과 결과가 겹쳐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기에 경기 내내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 시작 22초만에 벼락같은 선취골이 스테보의 오른발 끝에서 나왔다. 잠깐 한눈을 팔았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 웬만해서는 믿지 않을 것만 같았다. 황진성의 왼발 찔러주기는 '부드러움'이 '투박함'을 능히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듯 빠져들어가는 스테보의 발 앞에 배달되었고 이를 받아 돌아선 스테보의 오른발도 나무랄 것 없이 침착했다. 올 시즌 최단 시간 득점 기록이었고 역대 기록을 따져봐도 3위에 해당하는 놀라운 것이었다.

 

얼떨결에 먼저 골을 내준 리그 1위팀은 골잡이 데얀이 몬테네그로 대표팀에 뽑혀서 비행기를 탔고 간판 미드필더 김한윤이 경고 누적 징계로 말미암아 나오지 못한 빈 자리가 커 보일 정도로 전반적인 경기력이 형편 없었다. 김재성-신형민-김태수 등 포항 미드필더들이 끈질기게 따라붙은 이유도 있지만 FC 서울의 패스가 세 차례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빨간딱지 두 장이 이 경기의 또다른 변수로 떠올랐다. 1-0으로 앞서고 있던 포항 골잡이 데닐손은 35분에 상대 수비수 안태은을 넘어뜨렸다가 노란딱지를 받고 이에 이영철 주심에게 항의하다가 곧바로 또 한 장의 딱지를 받으며 아예 쫓겨났다. 그리고 40분 뒤 운동장 반대편에서 방문 팀 측면 미드필더 김승용이 포항의 신형민에게 뒤에서 위험한 태클을 구사하다가 경고 과정 없이 곧바로 빨간딱지를 받았다.

 

이 순간 지난 8월 26일 같은 곳에서 열린 피스컵 코리아 2009 준결승 2차전(관련기사 ☞바로가기)이 떠올랐다. 그 때에도 두 팀에서는 세 장의 빨간딱지(포항 김형일 / FC 서울 김치우, 김치곤)가 나오면서 결과적으로 명승부가 연출되었다. 이상하게도 두 팀은 빨간딱지가 나온 뒤 보는 이들의 눈과 머리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명승부를 연출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마법사는 각본도 마음대로? 6분간의 반전 드라마

 

경기가 끝나고 찬물 대신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도 그 놀라운 장면들이 지워지지 않았다. '정말로 포항 스틸러스의 파리아스 감독은 마법사인가?'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떠올랐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후반전 끝무렵 6분간의 반전이 이 엉뚱한 생각들을 끼워맞춰주고 있었다.

 

골잡이 데닐손을 불편하게도 샤워실로 먼저 떠나보낸 포항 선수들은 후반전 초반 노병준이 바꿔들어오면서부터 모두가 마법사로 변한 것 같았다. 이를 상대하는 FC 서울 선수들은 귀신에 홀린 듯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 듯 보였다. 그를 들여보낸 파리아스 감독 아니면 노병준이 마법사임에 틀림없었다.

 

포항 선수들은 한 명이 모자라게 된 지 한참 지났지만 보는 이들이나 뛰는 그들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할 정도로 효율적인 몸놀림을 보였다. 그 결과 61분에 추가골까지 터뜨리며 완승의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들었다. 왼쪽 수비수 김정겸이 측면에서 가로챈 공은 바꿔 들어온 노병준에게 이어졌고 이 공은 다시 상대 골문 앞으로 달려간 김정겸에게 자로 잰 듯 배달되었다.

 

이 추가골 장면은 지난 4일 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FC가 블랙번 로버스를 6-2로 크게 물리칠 때 아스널 선수들이 간판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완벽했다. 노병준의 낮게 깔리는 찔러주기나 그 공을 잡지도 않고 오른발 안쪽으로 툭 차서 골문 오른쪽 구석에 찔러넣는 김정겸이나 보는 이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정말로 최근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벵거 감독의 아스널 FC가 하나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75분에 느닷없이 FC 서울 미드필더 김승용이 비신사적인 태클로 쫓겨났다. 0-2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때 박주영(AS 모나코)과 태극마크까지 같이 달고 함께 뛰면서 측면 미드필더로서의 정교한 킥 실력을 인정받았던 김승용이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쯤되면 2-0으로 앞서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의 손쉬운 승리를 점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극적인 드라마의 서막은 이제부터였다. 방문 팀의 바꿔 들어간 골잡이 안데르손이 86분에 김진규의 오른쪽 띄워주기를 받아 머리로 만회골을 터뜨린 것. 포항 팬 입장에서는 그저 우연히 하나 들어간 것일 뿐이라고 넘기고 싶었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 흥미진진한 드라마의 전개 양상은 안방 선수들이나 팬 입장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2분 뒤 믿기 어려운 동점골이 터졌다. 미드필더 기성용이 안데르손과 아슬아슬하게 2:1 패스를 주고받으며 정확한 오른발 킥으로 포항 그물을 흔든 것. 그 시간이 88분이었다. 기성용도 이 동점골이 믿기지 않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이렇게 이 경기는 지난 일요일 인천 유나이티드 FC를 불러들여 치렀던 경기처럼 2-2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주심의 종료 휘슬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대기심이 알려준 3분의 추가 시간도 거의 끝날 무렵, 정말로 믿기 어려운 결승골이 포항 수비수 황재원의 오른발에서 터졌다. 그 때 TV 생중계 스피커로는 팽이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날린 이상윤 해설 위원의 "말이 안 나옵니다"라는 감탄사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렇게 짜릿한 승점 3점은 안방 팀에게 쌓였고 올 시즌 스틸야드에서 열린 15경기 기록은 7승 8무라는 지워지기 어려운 발자취로 남았다. 모두 28경기를 통해 순위를 가리는 정규리그에서 선두 FC 서울은 25경기를 끝낸 현재 48점(15승 3무 7패, 43득점 24실점)으로 선두 자리를 아슬아슬하게 지켰고, 전북(24경기 47점)의 뒤를 바짝 따라붙은 포항 스틸러스는 24경기 44점(11승 11무 2패, 50득점 30실점)을 기록했다.

덧붙이는 글 | ※ 2009 K-리그 24라운드 포항 경기 결과, 7일 스틸야드

★ 포항 스틸러스 3-2 FC 서울 [득점 : 스테보(20초,도움-황진성), 김정겸(61분,도움-노병준), 황재원(90+2분) / 안데르손(86분,도움-김진규), 기성용(88분,도움-안데르손)]

◎ 포항 선수들
FW : 데닐손(35분-퇴장), 스테보(73분↔오까야마/90+3분↔황지수)
MF : 황진성(51분↔노병준), 김태수, 신형민, 김재성
DF : 김정겸, 황재원, 김형일, 박희철
GK : 신화용

◎ FC 서울 선수들
FW : 정조국(56분↔안데르손), 고명진
MF : 김치우, 고요한(46분↔이상협), 기성용, 김승용(75분-퇴장)
DF : 아디, 김치곤, 김진규, 안태은(81분↔한태유)
GK : 김호준

2009.10.08 09:29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 2009 K-리그 24라운드 포항 경기 결과, 7일 스틸야드

★ 포항 스틸러스 3-2 FC 서울 [득점 : 스테보(20초,도움-황진성), 김정겸(61분,도움-노병준), 황재원(90+2분) / 안데르손(86분,도움-김진규), 기성용(88분,도움-안데르손)]

◎ 포항 선수들
FW : 데닐손(35분-퇴장), 스테보(73분↔오까야마/90+3분↔황지수)
MF : 황진성(51분↔노병준), 김태수, 신형민, 김재성
DF : 김정겸, 황재원, 김형일, 박희철
GK : 신화용

◎ FC 서울 선수들
FW : 정조국(56분↔안데르손), 고명진
MF : 김치우, 고요한(46분↔이상협), 기성용, 김승용(75분-퇴장)
DF : 아디, 김치곤, 김진규, 안태은(81분↔한태유)
GK : 김호준
스테보 황재원 데닐손 김승용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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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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