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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만에 아버지와 함께 간 동네 목욕탕.
 35년만에 아버지와 함께 간 동네 목욕탕.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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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는지, 딱히 이유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 아버지와 한 번도 목욕탕에 같이 간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아버지가 조금 불편했었습니다.

해방 후,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6·25 이후 병역기피자로 몰려 교단을 떠나 배를 타야 했었습니다. 이후 아버지께서 집에 계신 날은 한 달에 고작해야 두어 번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에 익숙해 집에 계시는 게 더 어색했었습니다.

명절이면 아버지는 오시는 길에 목욕을 하고 오셨습니다. 그래 명절 날, 아버지 손잡고 목욕탕 가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그렇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나란히 앉아 있어도 말없이 TV만 보던 부자지간. 어머니가 사이에 끼어야 대화 물꼬를 텄던 부자지간. 이제야 자식으로 사는 것보다 아버지 역할이 더 힘듦을 알았을까?

제가 가정을 꾸려보니 "부자지간에 목욕탕에 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때도 밀고, 오는 길에 자장면도 사 먹어야 더 친해진다"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더군요. 

"아버지 목욕하셨어요? 손자랑 같이 목욕 가요"

올해 아버지 연세는 82세. 검버섯 하나 없이 맑은 피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은 탓이려니 여깁니다. 그동안 아버지, 아들, 손자 3대가 목욕탕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긴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추석 하루 전날, 그러니까 지난 금요일 서둘러 부모님 댁으로 갔습니다. 큰 누이가 어머니와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아버지께 제안했습니다.

"아버지 목욕하셨어요? 손자랑 같이 목욕 가요."
"아니다. 목욕한지 얼마 안됐다. 아들이랑 둘이 다녀와라."

부자지간 대화는 썰렁한 한 마디로 끝이었습니다. 옆에서 어머니와 누나가 거들고 나섰습니다.

"그러지 말고 같이 다녀오세요. 명절 재미가 서로 어울려 목욕탕 가는 거잖아요."

아버지께서 못 이긴 척 "그럼 한 번 가볼까." 하고 운을 떼셨습니다. 옳다구나, 아들 녀석 손을 이끌고 3대가 나섰습니다. 아들을 가운데 두고 손을 잡고 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서먹서먹한 부자지간, 35년 만에 동네 목욕탕에 함께 간 것입니다.

아버지 등 미는데 실패, 화해 몸짓에 만족

목욕 후 아버지와 먹었던 자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목욕 후 아버지와 먹었던 자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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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서 '이참에 아버지 등 밀어드려야지',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아버지 피부는 하얀 우윳빛이었습니다. 야위지 않고 적당히 살이 찐 멋진 몸매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제 모습이 부끄러울 지경이었습니다.

목욕탕 안에서 아버지는 좀처럼 탕 밖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제가 사우나와 냉온탕을 오가는 사이 어느 새 등밀이 기계 앞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리고 샤워기 앞에 서 계시더니 이내 탕 밖으로 나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뿔싸! 왠지 서먹서먹한 부자지간. '등 밀어 드릴 게요' 운도 떼지 못했습니다. 등 밀면서 살가운 이야기 나누려 했는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은 것입니다.

목욕 후에는 3대가 자장면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초등 시절, 아버지와 자장면 먹던 아스라한 기억 때문입니다. 그랬는데 이도 허락지 않더군요. 대신, 마트에 들러 아버지께서 즐겨 드시던 과자를 사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올 추석은 아버지께 다가가려는 몸짓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언젠가는 아버지와 친해지겠죠. 이런 마음이 제 바람만은 아니겠죠?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와 U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목욕, #자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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