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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 논에 등장한 허수아비아저씨와 늦게 만개한 코스모스가 한가위 분위기를 한껏 높여주고 있었습니다.
 마을 앞 논에 등장한 허수아비아저씨와 늦게 만개한 코스모스가 한가위 분위기를 한껏 높여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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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아침에 성묘 가려고 아내와 집을 나섰다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을 지키는 허수아비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늦게 만개해서 바람의 방향에 따라 춤추는 코스모스와 어우러지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고 평화롭더군요.   
 
부모님 산소는 앞이 탁 트여서 시원하기도 하지만, 성묘를 마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대화가 시작되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지하에 계신 부모님도 만나는 것 같아 갈 때마다 마음이 편합니다. 무더운 날 걷다가 느티나무 그늘을 발견한 기분이라고 할까요.

손녀들이 절하는 모습을 만족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형님. 옛날에는 볏짚을 깔고 절을 했는데...세상이 많이 좋아졌지요.
 손녀들이 절하는 모습을 만족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형님. 옛날에는 볏짚을 깔고 절을 했는데...세상이 많이 좋아졌지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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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손녀들이 절하는 모습을 만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형님을 보니까 저도 덩달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형님은 아들 둘에 딸 하나, 동생은 군 복무 중인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데, 저는 달랑 딸 하나밖에 없거든요. 그래도 조카들이 건강하게 자라주어 기쁩니다. 

조금 있으니까 조카(셋째 누님)들이 아들딸을 앞세우고 올라와 외할아버지 산소에 절을 하더군요. 덧없는 세월의 빠름에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조카들이 코흘리개였던 70년대와 비교되면서 세대교체가 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지요.

조금 허전하고 쓸쓸했던 추석

형수님이 싸주신 파전과 여러 종류의 부침개, 박대와 찰떡은 냉동실에 보관했으니까, 일주일 정도는 끼니때마다 명절 기분으로 맛있게 먹을 것 같습니다.
 형수님이 싸주신 파전과 여러 종류의 부침개, 박대와 찰떡은 냉동실에 보관했으니까, 일주일 정도는 끼니때마다 명절 기분으로 맛있게 먹을 것 같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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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에도 형수님은 차례 음식을 싸주셨는데요. 좋아하는 파전과 명태 전을 썰어 저녁을 먹고, 밖에 나가니까 쟁반 같은 둥근 달이 구름과 숨바꼭질을 하더니, 조금 전부터는 창밖에서 빗소리가 들립니다.

가을은 풍요를 상징하지만, 고독의 계절이라고도 하는데, 깊어가는 가을밤에 혼자 집을 지키면서 빗소리를 감상하려니까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서 누군가가 그리워지네요. 다행히 지금은 비가 멈췄고 달이 더욱 높아 보입니다.

손님을 열다섯 명이나 치렀던 작년과 달리 올 추석은 편하고 조용하고, 쓸쓸하게 넘겼습니다. 열흘 전쯤에 딸에게서 내려오지 못한다는 전화가 왔고, 장모님도 몸이 불편해서 오지 못한다고 해서 더욱 허전했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서울에서 딸도 내려오고, 장모님도 오시고, 성묘를 마치고 모두 집으로 와서 밥을 곁들여 술자리를 벌였는데 올해는 형님댁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거든요. 어렸을 때는 집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무척 좋아했는데요. 지금도 그대로인 것을 보면 타고난 성격인 모양입니다.

추석은 설날과 함께 조상을 기리는 고유의 전통명절이지요. 멀리 떨어져 사는 형제들이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우애를 더욱 돈독히 하고, 성묘도 하고 차례를 지내면서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날이기도 하지요. 

군산에서 나포 가는 길(구암동 부근), 80년대까지만 해도 추석이면 성묘 행렬이 줄을 이었는데 지금은 삭막할 정도로 조용하네요. 그만큼 성묘에 관심이 멀어졌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군산에서 나포 가는 길(구암동 부근), 80년대까지만 해도 추석이면 성묘 행렬이 줄을 이었는데 지금은 삭막할 정도로 조용하네요. 그만큼 성묘에 관심이 멀어졌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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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추석에 성묘하러 가는 급우들을 무척 부러워했습니다. 산소가 없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인지 아버지 산소에 자주 다녔는데요. 효심이 발동했다기보다는 나들이 다녔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함께 다니던 누님들 몸이 예전과 달라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닙니다. 그래도 순리이니 겸허히 받아들여야겠지요. 

성묘를 마치고 그늘에 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잠시 이야기꽃을 피우다 산에서 내려와 형님댁으로 향했는데요. 군인 장교인 큰 조카는 비상이 걸리는 바람에 오지 못하고 며느리가 대신 왔더군요. 점심을 맛있게 먹고, 셋째 누님댁에 들러 '양촌리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버스를 타고 집에 왔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데,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와 허수아비 아저씨, 그리고 한적한 시골길이 얼마나 평화롭게 보이던지···.

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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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추석, #성묘, #코스모스, #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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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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