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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섞어서 더 많은 색깔을 만들어내자
▲ 벽화준비 이것저것 섞어서 더 많은 색깔을 만들어내자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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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홈스 고아원에 큰형들인, 기숙사 생활을 하던 고등학생들이 하나 둘,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들과는 미술시간 음악시간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지만, 큰 아이들과는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고민 끝에 고아원과 조이비전스쿨 중간에 세워진 교회 외벽에 그림을 함께 그리면 괜찮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하지만 준비해 간 미술도구라고는 아크릴 물감 조금과 가느다란 붓 두 개. 전날 부랴부랴 차를 타고 나이로비로 가서 겨우 구한 유성페인트 몇 가지 색깔.

아이들의 침대 매트리스를 찢어 만든 우리의 붓
▲ 미술도구 아이들의 침대 매트리스를 찢어 만든 우리의 붓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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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 없는데 어떡하지?"
"이 붓 두 개는 마무리 테두리 작업하는 데 쓰고, 나머지는 스펀지를 이용하자."

아이들이 쓰다가 버린 낡은 매트리스 하나를 꺼내 손으로 찢었다. 그랬더니 쓰고도 남을 만큼의 붓이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아주 풍성하다. 아프리카에 와서 배운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족하기. 있는 것에 감사하기. 풍성하게 가지고 있을 때는 몰랐던 감사함이 내 안에 퐁퐁 솟아난다.

질 좋은 붓이 없어도, 낡은 스펀지 하나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
▲ 튀어나가지 않게 질 좋은 붓이 없어도, 낡은 스펀지 하나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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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낡은 벽은 생각보다 벗겨진 곳이 많았지만, 함께 작업할 아이들은 이미 신난 상태였다. 미술 전공의 '조흭'과 몇 번의 벽화 그리기 경험이 있는 '니콜'은 먼저 벽에 묻은 먼지를 떨어내고 밑그림을 그렸다.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동물들과 우리의 얼굴색, 그들의 얼굴색을 가진 천사들을 그렸다. 나무에 사랑, 기쁨, 행복 등의 열매를 주렁주렁 달기도 했다.

모두 벽에 붙어서 완성을 위해 열심히!
▲ 완성을 위해 모두 벽에 붙어서 완성을 위해 열심히!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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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을 맡은 베나드. 최선을 다해
▲ 집중집중 분홍색을 맡은 베나드. 최선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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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색깔의 페인트를 서로 섞어 조금 더 많은 색깔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스펀지에 페인트를 묻혀 벽에다 톡톡톡 찍기 시작했다. 우리는 페인트칠하며 그들이 가르쳐주는 스와힐리어를 곧잘 따라하기도 하고, 서툰 영어로 대화하기도 했다. 큰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만든 이 아이디어는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종이 치기 무섭게 달려와 엎드려서 우리를 구경하는 아이들
▲ 쉬는시간 종이 치기 무섭게 달려와 엎드려서 우리를 구경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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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은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땡그랑땡그랑 수업 마치는 종만 울리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뛰어나와 벽화를 그리는 우리를 둘러싸고는 구경했다. 가끔 우리가 한 눈 파는 사이, 참지 못한 꼬마아이들이 페인트 묻는 붓을 들고 벽에다 이름을 적어놓거나 낙서를 하기도 했다. 완벽하고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벽화를 통해 우리가 좀 더 친해지길 원하는 것이 더 소중했기 때문에 낙서한 아이를 잡아다 나무라긴 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도 우리의 얼굴에도 미소는 떠나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상징인 얼룩말. 아이들과 함께 그린 최고의 작품
▲ 얼룩말 아프리카의 상징인 얼룩말. 아이들과 함께 그린 최고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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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걸쳐서 작업한 벽화가 완성을 향해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복되는 스펀지 찍기에 농땡이를 피우기도 하고, 분업을 위해 같은 색깔을 칠하게 한 것에 싫증을 내기도 하고, 색깔이 똑같이 나오지 않아 얼룩덜룩하게 된 부분도 있었지만 꽤 멋진 작품이 나왔다.

그림그리다 말고 교회 안에 숨어 우리를 구경하는 아이들
▲ 농땡이 그림그리다 말고 교회 안에 숨어 우리를 구경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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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교회 외벽 그림
▲ 완성 완성된 교회 외벽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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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이 코끼리 너무 커!"

회색빛을 내지 못해, 파스텔톤 에메랄드 색깔의 몸뚱아리를 가진 코끼리를 인내심 있게 칠하던 보구아는 결국 내게 장난 섞인 불만을 나타냈다. 만난 지 5일도 채 되지 않은 우리들은 이렇게 친해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 더 즐거워졌다.

한국에서는 풍족했던 것들이 이곳 케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물도 음식도 옷도 신발도…. 내가 한없이 누리던 것들이 이곳에는 없지만, 이상하게도 '없음'으로 인해 행복해지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인 것 같다. 참, 기적같은 일이다.

우리 함께 일한 이틀, 이만큼 친해졌어! 조흭과 아이들
▲ 완성! 우리 함께 일한 이틀, 이만큼 친해졌어! 조흭과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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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니콜키드박
사진. 니콜과 현지인 아이들

덧붙이는 글 | 2009년 7월부터 9월까지 아프리카 케냐에서 자원봉사를 빙자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간의 기록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태그:#아프리카, #케냐, #교회, #벽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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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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