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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국회는 법안상정부터 표결에 이르기까지 국회법을 통째로 무시한 위법을 범했다. 대의민주주의를 삼켜버린 쓰나미였다. 이걸 두고 합헌이라 선언할 수 있나. 이 사건을 적법하다 판결하면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이 대리투표해도 되는 나라로 굳어진다. 아이들도 반장선거에서 따라할 것이다. 국민은 헌법재판소를 믿고 있다. 올바른 결단으로 나라의 품위를 세워주시기를 당부한다." 박재승 청구인측 변호인 최종변론

 

"국회에서 다수결로 성립된 법이 국민 뜻에 반한다면, 다수당을 교체하는 시스템으로 법을 바꾸는 게 우리 헌법이 채택한 간접민주주의다. 간접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기본은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다. 어떤 이유로도 방해될 수 없다. 불법을 저지른 자가 불법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불법을 정당화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돼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 사건, 마땅히 각하돼야 한다." 강훈 피청구인측 변호인 최종변론

 

지난 7월 22일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한 언론법 권한쟁의 청구사건의 마지막 공개변론 역시 치열한 공방 끝에 막을 내렸다. 청구인측과 피청구인측은 29일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2차 공개변론에서 헌법재판관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침해 및 포기여부를 둘러싸고 격한 논쟁을 벌였다.

 

이 사건의 본질을 보는 관점에 대해서도 한바탕 논란이 벌어졌다. 박재승 청구인측 변호인은 대리투표 의혹에 대해 한점 부끄럼이 없다는 식으로 일관하는 피청구인측 대리인들을 향해 "지금 한나라당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투표방해 의혹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다 잘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면서 이 사건의 본질은 양측의 잘잘못을 따져 누가 얼마나 더 잘못했는가를 따지는 식이 돼서는 곤란하고, 국회가 아수라장이 된 상태에서 표결만 강조된 채 의사결정이 이뤄진 행위 자체를 우리 헌법이 과연 적법하다고 판결할 것이냐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관 가운데 가장 먼저 질의에 나선 김희옥 재판관은 청구인측과 피청구인측에게 각각 질문했다. 청구인측에는 투표방해행위를 해놓고 나중에 심의표결권한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권한남용 아니냐는 피청구인측 주장을 대신 물었고, 피청구인측에는 청구인측이 스스로 심의표결권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는데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의안의 심의표결권한을 스스로 포기할 수 있는 것인지 물었다.

 

이에 대해 박재승 변호사는 "이 사건은 형사사건 과실치상 여부를 따지듯이 서로 네탓 공방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어느 쪽이 더 잘못했느냐에 집중하면 이 사건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박 변호사는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법안에 대하여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려 직권상정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김형오 국회의장은 누구든지 먼저 단상을 점거하는 쪽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포해놓고는 24시간이 지나자마자 약속을 깨버리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사건"이라고 밝혔다.

 

피청구인측인 한나라당이 시종일관 주장하는 투표방해 문제로 이 사건의 승패를 가리는 것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국회의원 심의표결권, 포기할 수 있는 권리냐 포기할 수 없는 권리냐

 

김갑배 청구인측 변호사도 "대리투표 무권투표 재투표와 관련된 위법성을 다투는데서 청구인 일부가 투표방해를 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국회의사절차상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은 포기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혼란을 이유로 위법한 정책결정이 이뤄지고 위법한 의결절차로 통과된 법이 있다면 당연히 위헌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김 변호사는 투표방해 행위가 있다고 해도 국회의장은 모든 의원이 재석한 상태에서 평온한 가운데 투표를 하도록 질서유지권을 발동하고 투표를 진행했어야 옳다고 주장했다. 투표방해가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의안을 직권상정하고 대리투표 재투표로 통과시켰다는 주장은 정당하지 않다고 피력했다.

 

김연호 피청구인측 변호사는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은 법률적으로 포기가 가능하다고 본다"며 "심의표결권을 가진 타 의원들의 출입을 방해하고 단상돌진, 좌석점거, 투표방해를 통해 적극적으로 투표방해를 한 부분에 대해 어떻게 심의표결권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보지 않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치중 피청구인측 변호사도 "의사진행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거나 연호하는 방식으로 투표를 방해하거나 일부러 밖으로 나가버리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청구인측 변호인 자격으로 재판에 참석한 여상규 한나라당 의원은 "청구인들이 심의표결권을 포기했느냐, 권한쟁의청구의 권한남용이냐를 따지려면 이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며 "이미 지난해 12월 미디어법 상임위 상정 당시 전기톱을 동원할 때부터 심의표결권은 이미 포기했다"고 밝혔다.

 

전자투표로 대리투표 의혹제기... 모색한 해결책이 있나

 

이공현 재판관은 사립학교법과 언론법 등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가 청구된 사건 말고 대리투표와 재투표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 있냐고 물었다. 또 15대 국회에서는 기립표결이나 기명투표로 의결했는데, 그 이전에도 대리투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느냐고 질문했다. 뿐만 아니라 전자투표로 대리투표 문제가 제기됐는데, 피청구인측은 해결책을 모색해본 일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치중 변호사는 "구체적인 자료로 확인한 바는 없다"며 "지문인식이나 보안시스템 등이 고려되긴 했지만 국회의원들의 품위나 명예에 대한 손상이 제기될 수 있다고 해서 채택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재승 변호사는 "이럴 때 자율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국회법 운영에서 약점이 있으면 보완하는 노력이 국회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김 변호사는 "국회 자율권을 행사해야 하는 사항인데 그런 조치는 안 취하고 이제 와서 다투니까 문제라는 식인데 이 사건은 이미 국회 내부의 절차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며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도 듣지 않는 상황이라면 해도 의미가 없고 따라서 잘못한 쪽에 책임을 묻고 무효냐 유효냐로 정확히 갈라줌으로써 법의 효력을 유지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박재승의 호통 "남의 자리 앉아 투표하는 게 적법행위냐"

 

한편, 이날 한나라당 여상규 의원과 박재승 변호사는 전국언론노조가 공개한 미공개 동영상 자료의 유출여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여상규 의원은 "지난 25일 전국언론노조가 최초 미공개 동영상이라고 공개한 동영상 자료는 청구인이 제출한 갑호증"이라며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에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증거물을 노동조합에 유포한 책임이 있다고 따졌다.

 

이 같은 여 의원의 주장에 대해 박재승 변호사는 "청구인측이 언론노조에 유출한 바 없다"며 "헌재에 제출한 자료는 방송국에서 얻어온 자료라는 점을 말씀드리겠다"고 일축했다.

 

무엇보다 여 의원이 자신의 대리투표 장면이 공개된 점에 대해 유출이라고 주장하자 박 변호사는 "남의 자리에 앉아 투표하는 게 적법한 것이냐"며 "한나라당 의원이면 모두 언론법에 찬성한다고 버튼을 누르는 것은 해당 의원에 대한 모독"이라고 호통을 쳤다.

 

여상규 의원이 위법행위를 해놓고 법정에서 마치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민주당 의원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발언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미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재판을 방청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민주당 의원들은 대의민주주의체제에서 표결을 방해했다"며 "피해를 저지른 측이 헌법소송을 제기한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안 대표는 "헌법재판소는 의회민주주의를 지키고 정의를 수호하며 국회 자율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며 "이 소송은 각하되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시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처럼 이번 언론법 권한쟁의도 법치주의를 확실히 정립하는 기회가 마련되기를 바란다"며 "한나라당측 대리인들은 재판에서 자신의 불법행위를 자인하는 경우가 있었던 만큼 헌재에서는 청구인측 의견이 원용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에는 안상수 원내대표를 포함한 한나라당 의원 20여 명과 민주당 의원 30여 명이 참석했다.

 

재판에 앞서 언론단체와 시민단체 대표들은 '언론악법 원천무효와 헌법재판소의 바른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태그:#언론법 권한쟁의, #박재승 변호사, #김희옥 재판관, #김치중 변호사, #이공현 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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