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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달이 뜨는구나. 그래, 이것이 달빛 정책이구나. 금강산 가는 길이 끊기고, 그 길

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철마는 다시 꿈을 꾸고, 북으로 가는 철로는 녹이 슬겠지. 개성 공단도 문을 닫고 있구나. 그러는 사이 이산의 한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 세상을 뜬다. (책 속에서)

 

냉전을 추억으로 떠올릴 만큼 세상은 변했다. 입에 올리기 조차 두려웠던 간첩을 소재로 해서 코믹 영화도 만들어지고, 김광석의 죽음을 슬퍼하는 북한 병사도 영화 속에 등장한다. 이젠 초등학교 아이들도 북한 사람들을 뿔 달린 괴물로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금강산 관광도 개성공단도 헛돌고 있다. 화해와 협력고 공존을 위한 노력들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린다. 그 틈새를 비집고 냉전의 풍경들이 되살아난다.

 

돌아보면 오랜 기간 동안 냉전 분위기에 젖어 살았다. 해마다 6월이 오면 글짓기, 표어, 포스터가 기다렸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다 숨진 이승복을 추모하는 웅변대회로 학교가 들썩였다. 중학교 때는 "무찌르자 공산당!", "이룩하자 유신과업!"을 외치며 행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교련복을 입고 총검술 훈련을 받았다. 대학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여전히 교련은 있었고, 문무대와 전방에 일주일씩 들어가 병영 체험을 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걸까. 문득문득 옛 기억들이 되살아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도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고 <냉전의 추억>의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기억은 때로는 고통이 될 수도 있고,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리고,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감정이 상할 수도 있지만, 기억을 통해 과거 오류를 바로잡고 가야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

 

선을 넘어 길을 만들다

 

<냉전의 추억>은 '선을 넘어 길을 만들다'란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산비탈 작은 샛길도 사람들이 다니면 넓은 길로 변하지만, 잠시라도 다니지 않으면 잡초 우거져 길을 막는다. 분단의 장벽이 가로막고 냉전의 공포에 숨죽여 살던 처음에는 길은 없었다.

 

"길은 만남에서 시작된다." 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더불어 그 길은 공존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체험에 의한 남북 접촉 5단계 설'도 제시했다.

 

첫 번째 만남은 호기심이다. 분단의 반쪽에 대한 설렘이 왜 없겠는가? 두 번째는 실망이다. 차이에 대한 분노의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세 번째는 설득과 충돌이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변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다가 충돌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네 번째는 체념이다. 너는 너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뭐 그런 감정이다. 이 단계를 지나야 다섯 번째의 경지에 오른다. 그것은 공존이다. 차이를 인정해야 공존의 길이 보인다. 더불어 엉키다 보면, 자연스러운 상호 변화가 이루어진다. (책 속에서)

 

<냉전의 추억>은 길을 찾고 있다. "설마 냉전 시대로 되돌아가기야 하겠냐?"던 사람들에게 분단이 현실인 만큼 냉전 또한 언제고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길을 찾는다. 증오가 사라지면 전쟁이 끝이 나듯이, 오해를 넘어서면 공존이 가능하듯이, 냉전의 추억을 딛고 평화의 미래로 이르는 길을 찾는다. 모두 다섯 갈래 길이다.

 

만남의 기억 - 마음속 38선은 무너졌나요? / 당신의 이름, 북괴에서 북측으로 / 돌아 

                   오지 않는 다리를 건넌 사람들 / 산을 넘어 길을 만들다 / 아, 금단아! 이

                   산 가족 상봉사

 

대결의 풍경 - 영화보다 극적인 한국판 마타하리 / 산 사람 죽이고, 죽은 사람 망명시

                   키고 /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 사재기 열풍과 만들어진 공

                    포 / 사과받으려면 대화해라 

 

교류의 추억 - 코리아 팀의 '아리랑'이 그리워라 / 평양은 트로트를 좋아해 / 워커힐

                    쇼와 집단체조 공연 / 주는 마음 받는 입장

 

협상의 교훈 - 무수단의 로켓과 파도 / 최악의 부실 협상 / 엇박자의 추억 / 오해와

                    이해에서 헤맨 20년 / 대화해야 풀려난다.

 

협력의 미래 - 희망의 길, 공동 번영의 땅 / 모진 풍파 헤쳐온 금강산아 잘 있느냐 /

                    냉전의 바다에서 평화 번영의 바다로 / 철마는 달리고 싶다 / 퍼주기 이

                    데올로기와 인도적 지원

 

지은이는 재계에서 이루어진 대북 사업을 경험했고, 학계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 정책을 연구했으며, 통일부장관 정책 보좌관으로 북핵 문제와 남북회담을 다루었으며, 지금은 한겨레 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냉전의 추억>을 집필하면서 지은이는 젊은 세대들과의 공감을 염두에 두었다고 밝힌다. 그들이 바로 평화의 기억으로 공존의 시대를 열어갈 젊은 청춘들이기 때문에.

덧붙이는 글 | 김연철/후마니타스/2009. 6/ 15,000원


냉전의 추억 - 선을 넘어 길을 만들다

김연철 지음, 후마니타스(2009)


태그:#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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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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