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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아 떡볶이 가게에서 어묵을 먹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아 떡볶이 가게에서 어묵을 먹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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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한 데에는 '747 공약'이란 것이 막중한 역할을 했다. '7% 경제성장에 4만불 국민소득으로 7대강국에 진입한다'는 장밋빛 청사진은 유달리 물질적 풍요의 환상이 큰 한국인들에게 실현 가능한 공약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것이 허황된 정치적 슬로건에 불과했음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747'을 두고서 '칠 수 있는 사기는 다 친 것'이라고 가혹하게 평가하기도 했다.

취임 이후 경솔하게 시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종부세 폐지로 대표되는 부자 위주 정책으로 위기를 자초한 이명박 정부는 최근 들어 부쩍 '중도실용'과 '친서민'을 내세우며 국면 전환을 꾀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 대통령은 중도실용주의자로 자처해 온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로 내정했고 연일 재래시장과 장애인 시설을 방문하는 등 친서민 행보에 아낌없는 시간 투자를 하고 있다.

청와대는 최근 상승한 국정지지도 조사 결과를 근거로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과 '친서민' 정책이 국민의 대환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당력을 기울여 '중도실용'과 '친서민' 정책을 뒷받침하겠노라고 공언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을 긍정적으로 보는 국민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국정지지도란 정책에 대한 찬성 비율에 불과한 것이다. 극우나 극좌가 아니고서는 '중도실용'과 '친서민'이라는 개념 자체에 반대할 리가 없다. 문제는 진정성에 있는 것 아닐까?  만약 이 대통령이 표방하는 '중도실용'이나 '친서민' 정책이 '747'처럼 허황된 슬로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국정지지도는 다시 추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과 '친서민' 행보가 과연 진정한 것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두 가지 사안을 주시하고 있다. 하나는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공무원 노조의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 건이다.

한승수보다 나을 바 없는 정운찬, MB의 '중도실용' 무색해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과 친서민 정책에 대해 '위장과 사기'라는 식으로만 대처하는 것은 안이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과 '친서민' 행보가 위장이나 사기가 아닐 수도 있음을 전제로 한 것처럼 보인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장남 국적문제에 관한 질의를 받으며 입을 다물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장남 국적문제에 관한 질의를 받으며 입을 다물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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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큼 '실용주의'가 우대 받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너나없이 대부분 실용주의자로 자처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후보자는 물론 손학규와 정동영 그리고 고건 같은 정치인들도 틈만 나면 실용주의를 내세우고는 했다. 황석영, 김지하처럼 정치 성향이 강한 문인들도 왕왕 '중도실용'을 예찬한다.

'실용주의'란 진리로서 제시된 진술은 그 진술에서 파생되는 결과를 가지고 따지는 방법론을 말한다. 하지만 실용주의자라는 칭호가 정치인에게 붙는다면 약간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일단 그는 정치 노선을 확고히 지켜나갈 가능성이 없는 것을 암시한다고 보면 된다. 그는 공약의 포기와 타협을 통해 성장한 정치인일 가능성이 높다. 모두들 '실용주의'라는 그럴싸한 표현을 애용하지만 이런 유연성을 표현하기에 더 적합한 말은 어쩌면 '기회주의'일지도 모른다.

진중권 교수는 "만약 정운찬이 한예총 총장이라면 당장 구속됐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이것은 전혀 독설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한국 검찰의 실력(?)이라면 그를 얼마든지 탈세나 공무원법 위반, 또는 포괄적뇌물죄로 기소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운찬이 KBS 사장이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만약 정운찬이 노무현이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요컨대 정운찬 총리 기용은 명백히 실패한 인사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한승수보다 나은 점을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마당에 그를 '중도실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엄정히 말해서 그는 이런 이념 문제를 거론할 기본 자격도 갖추지 못한 위인이다. 따라서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총리를 밀고 나간다면 '중도실용'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결과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친서민' 내걸고 노동자부터 잡도리하나

이 대통령은 '친서민' 행보를 중도실용정책보다 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시장에 가서 서민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눈물을 보인 적도 있다. 목도리와 봉고차 그리고 오뎅과 떡볶이가 회자되는 것도 모두 이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 때문이다. 그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를 물리칠 때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보도되었듯이 22일 공무원 노조 3개 단체(전공노·민공노·법원노조)가 통합하고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그들은 이틀간에 걸쳐 적법적인 투표 절차를 거친 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공무원 노조는 6급 이하의 공무원들로 구성된다. 직장의 안정성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영락없이 서민 계층이다. 그런데 '친서민' 정책을 내건 MB정부가 서민 노동자들을 노골적으로 탄압하고 있으니 이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2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민주공무원노동조합, 법원공무원노동조합 등 3개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한 것과 관련하여 2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브리핑실에서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향후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과 연대하여 실정법을 위반하는 불법활동을 할 경우 법에 따라 단호히 대처하기로 입장을 밝히는 법무부, 노동부 3개 부처 장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22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민주공무원노동조합, 법원공무원노동조합 등 3개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한 것과 관련하여 2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브리핑실에서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향후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과 연대하여 실정법을 위반하는 불법활동을 할 경우 법에 따라 단호히 대처하기로 입장을 밝히는 법무부, 노동부 3개 부처 장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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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을 빌미로 근무 시간에 투표와 관련된 노조활동과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공무원노조가 정치활동을 하는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한승수 총리)

"공무원이 강성 노조를 구성해 국정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엄정 대처하겠다."(이달곤 행자부 장관)

"어제 3개의 공무원노조가 민노총 가입을 결정했다. 지금까지 민노총이 정치투쟁에 주력해왔음을 생각해보면 공무원노조의 이번 결정은 우려스러운 일이다."(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공무원노조에 관해서 우려하는 바가 많다. 전공노 등 3개 공무원노조의 민노총 가입에 관한 총투표 과정에서 대리투표, 순회투표, 상품권지급 등 각종 탈법·불법이 난무했다고 한다. 근무시간 중의 투표참여 행위는 공무원 복무규정에도 반하는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탈법·불법적인 투표 전반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해서 고발할 것은 고발하도록 해야 한다."(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제가 얼마 전에 민노총에 속해있는 공무원노조 위원장 이·취임식에 참석했던 일이 있다. 첫번째로 하는 것이 '우리의 신조'인지 무언지 희한한 것을 외치더라. 놀라서 말은 못하고 가만 앉아 있다가…. 공무원노조도, 민노총도 대한민국이 건재할 때 존재하는 것이다."(송광호 한나라당 최고위원)

이처럼 정부 여당 사람들은 일제히 공무원 노조와 민주노총을 헐뜯고 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상급단체를 선택하는 것은 헌법으로 보장된 결사의 자유이며, 노동자의 기본 권리이다. 따라서 이것은 정부와 여당이 반대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 여당은 거의 전면적으로 나서서 공무원노조와 민주노총을 위협하고 있다.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 정책이 얼마나 피상적인 수준인지를 알게 해 준다.

더욱이 미리 불법행위를 가정하여 정치활동이라는 위법상황을 핑계로 공무원들의 투표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과잉 개입이다. 또한 3개 부처 장관이 합동으로 담화까지 발표하면서 압박하는 것은 명백한 노동자 탄압이다.

적법한 활동 부정하는 이명박 정부의 '과잉 개입'

3개 공무원노조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이 조합원들의 투표로 가결된 가운데 22일 밤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정헌재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 오병욱 법원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손영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손을 모으고 있다.
 3개 공무원노조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이 조합원들의 투표로 가결된 가운데 22일 밤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정헌재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 오병욱 법원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손영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손을 모으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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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는 정당한 노조활동을 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해 이를 금지하고 있다. 공무원노조가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도 잘못이다. 공무원노조는 단체행동이 금지되어 있을 뿐이지 상급 단체 가입에는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맺고 있는 한국노총에는 역시 공무원 신분인 전국체신노조 소속의 2만5천 명이 가입돼 있다. 한국노총은 5·16 쿠데타의 부산물로 결성된 단체이다. 그들은 지난 1961년 1월 28일 '5·16 군사혁명의 전폭적 지지'를 결의하기도 했다.

이승만 정권은 1952년 부산 정치파동 이후 대한노총에 불법 개입하여 정부 반대파를 제거했다. 그러고는 대의원 대회에서 '이승만 대통령 각하의 외교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는 결의안을 내도록 했다. 4사5입 개헌 이후 대한노총은 우마차를 동원하여 시가행진을 벌이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출마를 촉구하는 희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정부 여당이 말하는 노조의 정치 중립 위반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노조를 탄압하는 정권은 필경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971년 박정희 정권은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노동3권 중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면서 노동 탄압을 진행했다. 그 결과 청계피복노조, 동일방직노조 등의 반체제 노조가 자생적으로 결성되었고 끝내는 YH여공노조의 비극적 사태를 맞이해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1월 당선자 시절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간담회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적이 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노조라고 해서 외면하거나 탄압하면서 겉으로는 '친서민' 행보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위선적인 행위이자 기회주의적인 처신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이 곧 알게 될 터이다.


태그:#정운찬, #전공노,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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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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