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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민화협 상임의장)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부탁으로 8월 21일 저녁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북측 조문단이 면담을 원하고 있다'고 알렸더니, 이 대통령은 '그들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통일부와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에서 잘못된 보고를 올렸거나 이미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던 것 아니겠나. 이어 임동원 전 장관이 김 특보에게 직접 북측 조문단으로부터 대통령 면담의사를 들어보라고 했고, 그래서 김 특보가 22일 조찬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북한 '특사 조의방문단'이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서울에 체류한 과정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한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기남 비서 등 북측인사들의 면담이 성공하게 된 과정을 이렇게 전했다.

 

임동원 전 장관과 김덕룡 특보는 그다지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임 전 장관이 김 특보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은, 그날 낮 국회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서 두 사람이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김 특보가 임 전 장관에게 '북쪽이 남북관계를 바꾸겠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판단에 따라 대표단을 보냈다'는 문정인 교수의 <한겨레> 칼럼을 잘 읽었다는 말을 한 것이다. 

 

결국 북한 조문단의 아침식사에 동석한 김 특보는 김기남 비서와 5분 정도 따로 대화를 하기도 했다. 김 특보의 개입을 통해 조문단과 이 대통령의 면담이 성사되자 임 전 장관은 "하나님이 도와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대북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현인택 통일부'가 북한 조문단에 대해 어느 정도로 소극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통일부에 '여러 사람 만나겠다(당국자 포함)'는 북측 팩스 전달"

 

이 인사는 또 "통일부는 북한 조문단이 서울에 오기 이전부터 이들이 대통령 면담을 원하고 있음을 충분히 짚어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조문단 파견을 앞두고 북한이 '김대중평화센터'에 보내온 팩스 중에 '가능하면 여러 사람을 만나겠다(당국자 포함)'는 문구가 있었고, 이를 바로 통일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북측 조문단이 '특사'라는 말을 앞에 붙였고 '당국자 포함'해서 만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이들이 이 대통령 면담을 원하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장례를 이끌었던 박지원 의원은 "북측조문단 파견소식을 정부에 전했는데, 그 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현인택 장관을 세브란스 병원 빈소에서 만났더니 뜨악한 반응을 보이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8월 27일 기자들과 저녁식사 자리)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북측 조문단 파견 발표를 정부가 아니라 자신이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임동원 전 장관도 "(통일부 국장급 담당자가) 직접 북측의 의사를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통일부 측은 청와대 방문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고, 다만 나중에 밤에 보니까 그냥 통일부 장관이나 만나고 가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통일뉴스>8월 30일자 인터뷰)고 말했다.

 

정작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서울에 왔을 때는 소극적이었던 현 장관은 지난 16일에는 "남북대화에서 핵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서기도 했다.

 

김정일 건강·후계문제 직접 언급

 

 

지난 2월 취임한 현 장관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부터 고비고비마다 대북강경발언을 해왔다. 지난 6월 4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과 후계 문제에 대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국가브랜드위원회 주최 포럼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쇠약해진 건강상태가 후계문제와 깊이 연관 있다"며 "김 위원장은 자신의 악화된 건강 문제 때문에 아들로의 권력 승계 절차에 박차를 가할 필요를 느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흥미롭게도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이후 북한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잇단 '도발적 행동'의 의도에 대해 "불확실한 '정권의 미래'에 대한 김정일의 걱정이 깊이 연관돼 있음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통일부 장관이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후계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직접 언급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대북협상 창구인 통일부 장관이 북한이 가장 민감해하는 사안을 '거침없이' 건드렸다는 점에서, 북한과 대화할 생각이 있는 것이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현대아산 유성진씨 석방,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묘향산 합의, 이산가족 상봉 합의 등 북한의 유화적 움직임에 대해서도 현 장관은 지난 2일 "6자회담, 핵 문제에 대한 태도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 변화가 아닌 전술적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또 '12.1조치' 해제에 대해서도 "북한이 특별하게 아주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에 대해 압박도 할 수 있고 강경발언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대체적으로 이런 '배드 캅'의 임무는 국방장관이나 여당 정치인들이 맡아왔다. 이후 협상에 대비해 '굿 캅'을 남겨놓는 역할 분담인 셈이다.

 

북한의 '황강댐 무단방류' 사건에 대해서도, 현 장관은 "북한이 의도를 갖고 (황강댐을) 방류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해 '수공 논란'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파장이 커지자 "의도적 방류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는 여전히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면서 주워 담으려는 모습을 보여, 애초 발언이 실언임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선량한 이웃이 아니다"라고 말해 '북한의 의도' 발언이 평소 그의 강경 대북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드러냈다.

 

황강댐 사건, 국방장관 후보자가 오히려 차분한 대응

 

그의 이 같은 태도는 김태영 국방장관 후보자와 대비된다. '수공'임을 주장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김 후보자는 "만수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댐에 예상하지 못할 만큼 꽤 많은 수량이 있었다"면서 "수공으로 판단할 명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현 장관은 '제2의 황강댐' 사건을 막기 위한 대북협의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 통일부는 "북측의 사과가 협의제안의 전제조건이 아니"라는 공식 방침을 밝혔지만, 거기까지였다. 남북교류의 가장 기본인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의 방북이나 지원에 대해서도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2월 9일 현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우려했다.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식으로 그대로 하면 통일부가 통일부(Unification Ministry)가 아니라 기다리는 부(Waiting Ministry)가 되겠어요, Ministry of Waiting."

 

이에 대해 현 장관은 "기다리겠다고 하는 그 말씀에 대해서는 저는 이것을 수동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겠다는 그런 표현이 아니"라면서 "지금 상황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그 상황에 대한 표현"이라고 답했다.

 

실제 현 장관은 기다리고만 있었다기보다는, 북한 자극에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


태그:#현인택,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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