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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 '통영'에는 지역은 물론 대한민국을 빛낸 예술인들이 다수 존재해 왔다.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아는가. 또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예술인을 찾아 떠나 그들의 예술혼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 <기자주>
 

 

 

'김약국의 딸들' '토지'의 추억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면 '김약국의 딸들'이나 '토지' 등은 누구나 몇 번쯤 접해봤을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전문을 읽지 않아도 일부 내용이 교과서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토지'는 25년간의 집필기간, 5부 16권의 방대한 분량, 50여 년의 시간적 배경, 700여 명의 등장인물이 말해주듯 엄청난 대작이면서도 한국전통문학의 맥과 다의적인 서사구조를 놓치지 않아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로 '겨레의 재산', '노벨문학상을 받을 유일한 작품' 등 찬사를 한 몸에 받은 박경리 작가가 유명 예술인을 여럿 배출한 경남 통영 출신이라는 사실은 지난해 5월 선생이 서거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고인의 묘소가 고향의 바다를 앞에 둔 미륵산 자락에 마련됐기 때문이다.

 

문학과 함께 한 일생

 

박 작가는 1926년 10월 28일(음력) 통영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집을 나가 홀어머니 아래서 고독한 성장기를 보냈다. 광복이 되던 1945년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이듬해 결혼했으나 6.25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전쟁 직후 아들마저 잃었다. 이처럼 잔인한 운명에 처해진 박 작가에게는 부양해야 할 어머니와 어린 딸이 있었다. 때문에 선생은 1955년 단편 '계산'으로 등단한 후 "내가 행복했더라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불행에서 탈출하려는 소망 때문에 글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박 작가의 굴곡진 삶은 그로 하여금 더욱 문학에 매달리도록 하는 촉매 역할을 했으며, 작품 곳곳에서도 자전적 경험이 드러나고 있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불신시대'에서는 가난과 고독으로 얼룩진 전쟁의 상처를 극복할려는 여주인공의 의식전환을, 1960년대의 대표작인 '시장과 전장'에서는 여주인공이 6.25를 겪으면서 억척아내로, 또 어머니로 변하는 모습을 생명사상을 담아 그려냈다.

 

1962년에 발표한 '김약국의 딸들'은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 냈으며, 현재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설화적 구성을 바탕으로 한 가족이 비극적인 운명에 얽혀 몰락해 가는 과정을 박진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1969년 집필을 시작한 '토지'는 1994년에야 탈고한 일생의 역작으로 조선말에서 일제시대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한국인의 삶을 깊이있게 다뤄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이밖에 '흑흑백백''전도''벽지''파시''나비와 엉겅퀴''영원의 반려''단층''노을진 들녘''신교수의 부인', 시집 '못 떠나는 배' 등을 남기고 2008년 5월 5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작가 '박경리'를 기리다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양지농원 내에 마련된 선생의 묘소와 주변에는 그 일대를 추모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묘소로 올라가는 꽃길은 전국에서 찾아오는 참배객을 반가이 맞이하고 있으며, 내년에 박경리 기념관이 완공되면 기념관을 오가는 동선과 함께 아름다운 공원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또한 이곳에서 매년 공식추모제가 거행되며, 지난 7월에는 박경리, 김상옥, 김용익, 김춘수, 유치환 선생을 기리는 통영문학제가 처음으로 개최되기도 했다.

 

박 작가가 적을 뒀던 원주, 하동, 진주여고, 연세대 등에서도 추모사업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 선생의 유일한 혈육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은 "감사할 일이지만 지나치게 일을 확장하는 것은 자제했으면 한다"고 생전 화려한 것을 멀리 했던 고인의 뜻을 되새겼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려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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