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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학년 담임이다. 내 동생 아들은 1학년이다. 아주 똑똑하다. 1학기 성적표에 매우 잘함을 모두 받았다. 글씨도 야무져서 5, 6학년 글씨 같다. 보통의 교실에서 아주 잘 하는 아이다. 그런 아이 엄마가 말한다. 1학년 공부가 너무 어렵다고. 국어 문제를 보면서 학습지 선생님과 엄마가 "요즘 1학년 국어는 예전에 우리가 공부할 때 4학년 공부 같아요. 엄마도 답을 모를 때가 많아요"라고 한다. 학교 공부가 어렵다고 학습지 선생님을 붙들고 의논하고 해결 방법을 찾는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왜 아이의 교육을 학교에 기대하지 않는가? 학교 교육 현장은 어떨까?

1학년 공부의 기본은 한글 깨치기다. 그런데 국어 교과서를 보면 학습지나 학원을 갈 수 밖에 없다. 국어 교과서가 어떻게 되어있을까?

우선 우리들은 1학년(3월에 배우는 교과서)에서 단 9시간에 걸쳐 닿소리와 홀소리 읽기 공부가 있다. 그리고 4월에 국어 교과서로 국어 공부를 하게 되어 있다. 국어 교과서는 3권으로 되어있다.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로 분리되어 있다. 교과서로 보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4월 첫주 듣기· 말하기 4번째 시간에 한글을 어떻게 조합하여 글을 쓰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자기 소개서를 간단히 적어 친구들에게 발표하라고 한다. 이미 한글은 배워와야 수업시간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교사는 교육과정으로 만든 교과서를 가르쳐야 된다. 교과서를 대체해서 교사들이 가르치지만 교육과정까지 무시하면서 가르칠 수는 없다. 그러니 열심히 가르칠수록 아이들은 부진아가 될 수 밖에 없다.

읽기책은 글자를 미리 미리 사교육 시장에서 알아왔으니 확인하는 시간일 뿐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읽기책으로 2주일 공부하면 한글을 조합할 수 있어야 한다. 한글을 다 공부했으니 띄어 읽기를 공부한다. 글자 짜임 알게 되었으니 글씨를 다 알게 되었고 그러니 띄어서 책을 잘 읽는 방법을 알려주면 된다고 교과서는 말한다. 옛날 이야기와 어려운 말이 있는 것도 술술 읽어야 1학년 방학을 맞이할 수 있다. 영어가 한 문장을 외우게 할 수 있도록 게임, 챈트로 여러 차시에 걸쳐 수업을 하는것과 대조적이다.

쓰기책은 어떤가? 1학년 1학기에 낱말을 쓰다가 일기 한편이 뚝딱 나와야 된다

2단원에서 한글 익히기가 다 되었으니 맞춤법에 주의해서 글씨를 써야한다. '생연필'로 쓰면 안되고 '색연필'로 써야 한다고  4시간 지도하면 맞춤법이 완성된다고 본다. 쓰기 3단원에서는 2단원 맞춤법을 이미 학습했으니 일기를 쓰란다. 4시간 만에 일기 쓰는 형식을 알려준다. 한 문장을 쓸 때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기 형식이 중요할 뿐이다.

사실 학교 현장에서는 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 한 달이란 시간을 투자해도 어렵다. 임자말과 풀이말의 개념을 알아야 하고 한 문장으로 말하기 활동을 2-3달 훈련하여 한문장 쓰기를 지도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은 교과서에 하나도 없다. 사교육 시장과 학교 현장에 있는데 교과서에는 없다. 쓰기 5단원에서 일기 쓰기를 후딱 배웠으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내 생각도 이젠 쓸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생각에 대한 이유도 밝혀야 한다. 일기와 내 생각을 글로 쓸 수 있으니 6단원에서는 시를 한 편 뚝딱 쓰면 1학년 1학기 공부는 완성된다.

1학년 발달단계를 고려한 교과서는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

1학년 학생이 1년 동안 공부할 국어 교과서다. 1학년 1학기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1학년 2학기 듣기,말하기/ 읽기/쓰기 책으로 744쪽 분량
▲ <1학년 1년 동안 공부 해야 할 교과서> 1학년 학생이 1년 동안 공부할 국어 교과서다. 1학년 1학기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1학년 2학기 듣기,말하기/ 읽기/쓰기 책으로 744쪽 분량
ⓒ 홍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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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1년 동안 학생들은 6권의 교과서로 무려 744쪽의 분량을 배워야 한다. 150쪽 소설5권 분량이다. 그렇게 많이 가르쳤는데 반 아이들의 반수 이상이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너무 많은 내용을 책장을 넘겨 가는데 급급하다. 1학년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을 보면 초등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목표 제시 방식이 똑같다. 한글을 배우는 초기 단계가 세밀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 유치원에서 한글을 제대로 배워오지 않았는데 국어 교과서에는 불친절하게 한글을 배우는 시간을 고작 한 달만에 완성해야 한다. 1학년 국어 시간은 한글을 깨치는 시간이어야 한다. 충분한 시간을 주어 한글을 알고 말하고 쓸 수 있도록 한 문장부터 시작하여 기초를 단단하게 하면 부진아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또한, 현재 교과서에 듣기· 말하기 책으로 듣기와 말하기를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읽기책으로 읽기를 공부하고 쓰기책으로 쓰기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 맞을까? 1학년 아이들은 통합적으로 수업에 접근해야 한다.  이야기 하나를 가지고 읽고 이야기 나눈 다음 글로 쓰기도 하고 놀기도 하는 것이 1학년 국어 수업 모습이다. 기계적으로 교과서를 나눠서 만들고 활동도 분절적으로 하라는 것이 현장 교사로서 이해하기 어렵다. 교사로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교과서가 나와 주길 바란다. 


태그:#1학년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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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로 지낸지 29년이 되어갑니다.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에서 활동하면서 학교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혁신학교에서 이룬 성과를 공유하면서 많은 학교가 학교혁신으로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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