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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은 연일 신종플루 환자수를 중계방송한다. 아침 뉴스에서는 벌써 확진 판정을 받은 우리나라 환자 수가 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사망자는 7명, 순천과 지근 거리인 여수에서는 이미 확진 환자가 다수 발생했고 그동안 잠잠하던 광양도 지난주 확진 환자 발생으로 한 학교가 휴교조치에 들어갔다. 순천은 빙둘러 신종 플루에 포위된 형국이다.

 

10월에 예정된 가을 체험학습과 학교 축제는 이미 잠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 교실을 바꾸어 돌아다니며 수업하시는 선생님들은 개학하면서부터 매시간 손세정제를 사용하고 있다. 교실에도 손세정을 위한 물비누가 공급되었다.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예방 백신이 없고, 치료약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유행을 걱정하는 소리와 말뿐인 정부기관의 대책은 학부모와 교사들의 걱정을 키우고 있다.

 

학교에는 요즘 신종플루 관련 공문이 쏟아진다. 방학중 해외 여행 학생 관리 철저, 아침 등교시간 교문앞 전원 체온 검사, 손세정 등 개인위생 관리 지도 철저, 각종 집단 행사 자제 요청, 매일 결석 학생 보고, 신종 플루 유사 증세 학생 파악 보고 등 보건실에서는 학생 관리보다 공문서 처리에 시간을 다 보내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것도 대규모 학교라서 보건 선생님이 배치돼 있으니 다행이지만, 보건 교사가 배치되지 않은 학교의 경우 난감할 것은 뻔한 일이다.

 

 

체온을 검사하라는 공문은 득달같이 온라인을 통해 배달되지만 체온계는 없고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세정제 등을 비치해 학생들의 개인 위생을 관리하라는 성화가 끝 없지만 세정제는 학교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

 

신종 플루 유사 증세 학생을 파악하라는 지시에는 어안이 벙벙하다. 거점 병원에서조차 감염 사례가 보고되는 상황에서 의학 지식이 전무한 담임교사와 단 한 명의 보건교사가 어떻게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목포 지역에서는 열이 나는 학생이 있어 병원에 보냈고 일반 감기라는 통보를 받아 통원치료를 하며 등교시키다가 집단으로 감염된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인 의사도 검진하기 어려운 것을 공문 한 장으로 지시해서 해결될 일인가? 전국의 모든 학교가 일시에 체온계가 필요하다보니 체온계는 벌써 품절되어 돈을 들고도 구할 수가 없다. 세정제도 마찬가지다. 설사 구한다 해도 평상시 가격에는 어림도 없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온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몫 노리는 상인의 기질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을 초입이어서 일교차가 큰 날씨 때문에 집에서 나서면서 교복을 고르는데 한참이나 걸린다. 지금까지 입고 다니던 하복을 입자니 다소 쌀쌀해 감기 걸릴까 무섭고, 춘추복을 입자니 아침에는 좋은데 2교시만 끝나면 갑갑하고 더운 하루를 보내야 한다.

 

잠시 망설이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난다. 엄마와의 아침 기상시간 다툼으로 5분만을 외치다가 머리도 손질하지 못하고 나선 발걸음이지만 교문 앞 선생님의 시계는 변함이 없다. 간신히 통과해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선 교문을 지나 설치된 천막에서 체온을 측정해야 한다. 남학생이야 그렇지만 단발머리 속에 작은 귀걸이를 숨겨서 등교하는 여학생의 입장이야 바늘방석이다. 그래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신종 플루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 눈 질끈 감고 '정상입니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더 안심이다.

 

이제 바쁜 걸음으로 현관에 들어선다. 현관 벽에 붙은 손 세정제를 꾹 눌러 손을 소독한다. 두번 누르고 싶지만 확보된 세정제가 부족한 마당이니 다른 친구를 위해 한 번만 눌러 사용해야 한다.

 

"엄마가 하지 말랬어요."

 

한 녀석이 체온 측정을 거부한다. 엄마가 많은 학생들을 측정하는 체온계가 더 무서우니 체온 측정에 응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억지로 측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가정에서 이 정도 관심을 갖는 아이라면 측정하지 않아도 무방하리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은 자주 교무실을 들락거리며 이곳 저곳 아프다고 호소하기 일쑤다. 감기 증세를 말하면 보건실로 보낸다. 정상보다 높은 체온이 측정되면 즉시 가정으로 연락해 보건소 검진을 의뢰한다.

 

"엄마에게 연락했으니 빨리 보건소에 가봐라."

 

다른 때 같으면 얼쑤 할 일이지만 녀석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신종 플루보다 혹시 격리되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더 무서운 모양이다.


태그:#신종플루, #발열검사, #학교에서 신종플루 예방, #체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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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면서 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진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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