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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후보자와 김홍범 경상대 교수가 공동으로 번역한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 역자 서문 일부. 이 책의 번역을 학기말 리포트로 제출하라고 했다는 대목이 있다.
 정운찬 후보자와 김홍범 경상대 교수가 공동으로 번역한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 역자 서문 일부. 이 책의 번역을 학기말 리포트로 제출하라고 했다는 대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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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3건 6편의 논문을 중복게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교수 시절 제자들의 초고 번역을 모아 자신의 이름으로 된 번역서를 출간했다고 고백해 윤리성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정 후보자는 김홍범 경상대 교수(경제학과)와 공동으로 번역한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율곡출판사) 역자 서문에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개설한 서울대 경제학과 '화폐금융론' 강의를 수강하는 학부생들에게 이 책의 번역을 과제물로 내주었다고 '고백'했다.

2년 뒤인 2003년, 정 후보자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책의 번역을 마친 후배 교수를 공동 번역자로 해서 책을 출간했다.

"번역물을 리포트로 제출하라고 했다... 참여 학생들에게 고마움 전한다"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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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후보자와 김 교수는 지난 2003년 6월 블라인더(A. Blinder) 미 프린스턴 교수의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를 번역해 출간했다. 블라인더 교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부의장을 지낸 경험을 살려 1990년대 말 이 책을 펴냈다.

정 후보자는 역자 서문에서 이 책을 "손튼의 <페이퍼 크레딧>, 배그홋의 <롬바드 스트릿>, 세이어즈의 <배그홋 이후의 중앙은행>, 그리고 굿하트의 <중앙은행의 진화>에 버금가는 훌륭한 책"이라고 호평했다.

블라인더 교수는 정 후보자가 1970년대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당시 스승이다. 정 후보자는 1982년 펴낸 <거시경제론> 초판 서문에서 블라인더 교수에게 '소득결정이론'을 배웠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런데 정 후보자는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 역자 서문에서 학기말 리포트로 제출된 제자들의 번역물이 번역서의 초고가 됐다고 '고백'해 눈길을 끈다. 

"선역자(정운찬)는 1999년부터 3년간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4학년 졸업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화폐금융론 연급 강좌를 개설하고 학생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으며 중앙은행에 관한 토론도 많이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이 책을 번역하자고 제안하여 그들에게 번역물을 학기말 리포트로 제출하라고 했으며 나중에 고쳐 주었습니다."

역자 서문 말미에서 정 후보자는 "몇 년 전 선역자(정운찬)가 가르친 화폐금융론 연습강좌에서 원서의 초역에 참여했던 많은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썼다. 그는 "(초역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하도 많아서 이름을 댈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동안 대학원에서 지도교수가 '원서강독' 등을 명분으로 제자들에게 원서를 번역하도록 하고, 이들이 번역한 원고를 토대로 번역서를 출간해 자신의 학문적 성과로 삼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정 후보자는 자신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부생들에게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 번역을 정식 과제물로 내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후배 교수와 번역서를 내는 '독특한 관행'을 만들어낸 셈이다.

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A씨는 "책 번역을 학기말 과제로 내주고 그 초고 번역을 바탕으로 교수가 번역서를 내는 경우는 요즘 흔하지 않다"며 "학생들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일종의 노동을 한 셈인데 이런 식의 번역서 출간은 적절한 방법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후배가 공동번역자로 이름 올린 배경은?

정운찬 후보자와 김홍범 교수가 공동으로 번역한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
 정운찬 후보자와 김홍범 교수가 공동으로 번역한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
ⓒ 율곡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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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후배였던 김홍범 교수의 이름을 공동번역자로 올렸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정 후보자의 서울대 경제학과 후배로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 번역에 앞서 <중앙은행의 진화>(1997년)를 번역해 출간한 바 있다. 그는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정 후보자는 제자들의 번역 초고를 정리할 무렵 김 교수가 똑같은 번역 원고를 그에게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이와 거의 같은 때에 후역자 김홍범도 독자적으로 이 책을 번역하여 자신의 원고를 선역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후역자는 오랫동안 중앙은행에 관심을 가져왔고 몇 년 전 이미 굿하트의 <중앙은행의 진화>를 번역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선역자는 당장 후역자에게 같이 번역서를 내자고 제안했고 후역자도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었습니다. 이 번역서는 바로 그 결과물입니다."

두 사람은 책을 출간하기 전 1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원고를 검토했고, 여러 차례에 걸쳐 편지로 책의 내용을 의논했다고 한다. 서문에는 "번역서의 출간을 위해 결코 적지 않은 시간과 세심한 노력을 투입했다"고 적혀 있다. 

한편 두 사람은 <화폐와 금융시장>(율곡출판사)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태그:#정운찬,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 #김홍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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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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