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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했던 늦더위가 채 가시지는 않았지만 서늘한 바람으로 가을 정취가 조금씩 묻어나오기 시작하던 초가을. 9월13일 오후 4시 30분이 되자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한 무리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다름 아니라 천정배의 민심포차 발대식을 준비하고, 구경하고, 응원하며, 취재하기 위해 모인 인파였다. 현란한 빌딩과 북적대는 인파의 명동 전경을 바라보니 울분의 80년대, 이곳에서 농성하며 민주주의를 남 몰래 써내려간 열혈 청년의 결의도, 작년 촛불 때 정부를 향해 쓴소리 마다 않던 10대 소녀의 절규도, 얼마 전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장 풍경도 파노라마처럼, 그리고 서서히 눈에 밝혀졌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현대사 길거리 강연으로 이날 행사의 서막을 알렸다. 과거 멀게는 이승만과 박정희, 가깝게는 전두환과 노태우의 독재세력을 발본색원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로 인해 발생한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질타의 시위를 거침없이 겨누었다.

 

"김영삼과 노태우, 김종필의 3당 야합으로 독재시절 잔재가 청산되지 못하고 그들이 또다시 권력을 잡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사실 이곳을 찾아온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겠지만 그의 강연의 핵심 메시지는 비단 청중만을 향한 것이 아닌 듯했다. 민주화의 성지 들머리에서 민주주의의 이름 앞에 외치는 탄성이자 서울 한복판을 거니는 인파들을 향한 아우성처럼 들렸다.

 

이어 한 교수는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 민생의 위기, 남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정치인은 길거리든, 국회든 싸우십시오. 인터넷에 글을 쓰고, 댓글도 쓰고, 퍼나르기도 하고, 아니면 동내 담벼락에 욕이라도 하셔야 합니다"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지었다. 요컨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잇자는 것이다.

 

식전행사인 강연을 끝으로 '천정배의 민심포차' 발대식이 시작되었다. 첫 격려사를 맡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천정배 의원을 가리키며 "정말 강직한 분이시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시는 분은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성품을 칭찬했다. 이어 천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최초로 지지했던 국회의원이었으며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기까지 가장 많은 공을 세웠었다는 말로 천정배 의원의 정치인생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격려사의 시계바늘이 참여정부 수립 후가 되자 국회의원, 법무부장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등 천 의원의 역경의 정치세월과 그럼에도 절대 굴하지 않았던 배포와 우직함을 강조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격려사의 귀결점은 다음과 같았다. "승리를 만드는 천정배! 현재 언론악법 무효의 길은 천정배가 걷고 있으니 이 길 또한 반드시 승리의 길이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끝내 미디어법 반대 투쟁의 목소리를 드높이며 원외 선봉장 천정배를 격려했다.

 

이날 많은 민주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김진표 민주당 의원, 추미애 민주당 의원,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 최문순 전 민주당 의원 등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천정배의 민생포차가 내달릴 앞으로의 17일의 대장정을 통해 미디어법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앞장설 것을 당부하며 천 의원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이어나갔다.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은 미디어법으로 인해 발생할 지역언론의 위기의 심각성을 천 의원이 전국에 알려줄 것을 청했고, 추미애 의원은 "민생포차하니까 장기가 생각난다. 장기에서 포와 차를 떼면 이길 수 없다"며 민생을 장기의 포,차에 견주어 표현했다.

 

이른바 민주계 초호화 인사들의 격려사가 끝나고 한때 여당 원내대표를 거쳐 법무부장관의 지위를 누렸던, 그러나 지금은 자칭 백수이자 의식 있는 시민이 된 천정배 의원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우선 그는 "힘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라며 청중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다름 아닌 이번 미디어법 사태와 관련해서 80여석에 불과한 민주당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점, 이명박 정부 하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한 점을 사과한 것이다. 이어 "탐욕과 불의의 시대를 끝장내고 민심과 정의가 승리하는 새 역사를 위해 국민들 품으로 돌아왔습니다"라며 미디어법 사태에 책임을 느끼고 사퇴한 사실을 결의에 찬 어조로 설명했다. "공자님도 예수님도 석가도 천하를 돌면서 백성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저 역시 국민들의 뜻을 귀담아 듣고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발언에선 17일간의 민생포차 전국 대장정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미디어법 저지를 위해 몸을 내던지고 사퇴를 강행한 천 의원의 입에서 나오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의 칼날은 유난히도 서릿발 같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는 국민들 속에 들어가 민심을 알아보는 것이 아닌 순시에 그치고 있습니다. 순시는 국민을 괴롭게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복지예산 삭감하며 4대강을 밀어붙이면서도, 부자들 세금을 완화하고 국민들을 탄압하면서도 시장을 거닐며 소통하는 척 하며 시장 아주머니만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천정배 의원은 현 정부의 반서민 정책과 보여주기식 친서민 행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천 전의원은 연설을 정리하며 민주주의, 민심과 민생을 되찾아서 돌아올 것을 청중들과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천 의원은 17일 동안 전국을 돌며 민생포차를 함께 경영할 임원진에 대해 소개했다. 의원 보좌진과 아내로 이루어진 호화 임원이었다. 천 의원은 자신이 포차 사장이긴 하지만 요리를 못 한다는 사실을 특유의 위트로 담담히 밝혔다. 그래서 아내에게 요리를 떠맡길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자 사뭇 엄숙해지던 분위기는 한바탕 웃음과 함께 순화되었다.

 

5시 30분 경 마지막 순서이자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비빔밥 만들기 퍼포먼스가 시작되었다. 두 쪽에 준비된 양동이에 준비된 밥과 나물, 계란을 넣고 비벼서 국민들에게 나눠주는 퍼포먼스였다. 이 비빔밥은 용산참사 유가족에게도 전달할 계획이라고 한다. 주력이 된 한쪽 양동이에 천 의원, 추미애 의원, 정세균 민주당 대표,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이 힘껏 비볐고 반대쪽 양동이에 최문순 의원과 자원봉사 하시는 민주당 당원들이 힘껏 비볐다. 비빔밥을 비비는 동안 천 의원은 "정치란 민심의 밥상을 차리는 것"으로 규정하며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지는 비빔밥처럼 민주주의의 다양한 목소리를 잘 비벼내도록 하겠다. 이 천정배가 그 비빔밥의 양념 역학을 해내겠다"며 이날 준비한 비빔밥의 이유와 민생포차의 모토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발대식을 보기 위해 7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으며 100인분으로 준비했던 비빔밥은 금새 동이 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한때 법무부장관과 여당의 원내대표를 지낼 정도로 격차가 컸던 그와 국민의 심리적 거리가 이번 계기를 통해 더욱 가까워지길 바란다. 몇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먼길 떠나는 천 의원의 17일 대장정이 보여주기 식 행보가 아닌 진정 민생을 경험하고 민심을 경청하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는 것. 차기 대선과 당의 지지율과 같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내던져 버린 채 빈손으로 떠나 국민의 열망을 한 가득 품에 안고 돌아오길 바란다는 것이다.

 

천정배의 민생포차는 9월 13일 명동 발대식을 시작으로 14일 천안, 15일 대전, 16일 전주, 17일~18일 광주, 19일 하동/옥천, 20일 목포, 21일 신안, 22일 여수, 23일 사천, 24일 부산, 25일 울산, 26일 대구, 27일 속초, 28일 춘천, 29일 인천, 30일 안산, 10월 1일 명동에서 보고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태그:#민생포차, #천정배, #민주당, #미디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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