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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한국 민주화와 올곧은 종교를 표방하며 형극과 고난을 걸었던 문동환 목사가 여수 중부교회에 오셔 목회를 하셨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며 정의로운 길을 살아온 길을 반추해보며 예배 내내 옷깃이 여며진다. 설교하는 동안 똑바로 선 자세와 총명한 눈빛에 88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다. 다만 걸을 때 다리가 조금 불편할 뿐이다.

 

그는 미국 하트포드 신학대학원 박사로 한신대교수와 뉴욕 미주장로신학교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유학 중 만난 미국인 부인(한국명 문혜림)과 미국에 살다 한국에 들어오셨다. 문익환 목사가 세 살 위 형님이라고 소개한 그의 집안 내력과 종교에 대해 들었다.

 

- 가문이 전부 교인인 걸로 아는데 그렇게 된 연유가 있습니까?

증조부가 함경북도 종성 출신의 두민(頭民: 촌장이나 읍장)인데 1901년에 북간도에 가서 서당을 열고 후학을 길러내려고 했다가 기독교로 마음을 바꿨죠. 당시 기독교는 민족 교육과 신교육을 겸했기 때문입니다. 증조부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지 않는 삶은 헛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6살 때입니다. 당시 크리스마스 전날 밤 이웃 아주머니가 "너 커서 뭐가 될래?"하고 묻기에 목사가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당시 맹자를 만독하신 분이 그 지역 유지였는데 그 분이 떠올라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만주의 명동은 독립투사와 운동가들이 활동하던 곳입니다. 형님인 문익환 목사와 윤동주시인은 친구이며 명동교회와 명동학교 동창생입니다. 아버지는 명동교회 1회 졸업생이고요. 자연히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 됐죠.

 

- 교회는 많은데 교회가 구원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역할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구원이라는 의미는 서로 사랑하면서 땅 위에서 서로 기쁜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탐욕과 권력만 잡으려 들지 말고 노력해서 기쁜 잔치를 벌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신 세상은 가정과 이웃, 교회와 우리들이 사는 사회 안에서 사랑으로 섬김으로서 삭막한 사회에 환희의 잔치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탐욕과 권력욕, 종교의 오용이 문제입니다.

 

그릇된 종교는 예수님을 이용합니다. 천당 간다는 것과 부자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쓴 것입니다. 큰 교회는 목사가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있어요. 전쟁 중 가장 무서운 전쟁은 종교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면 교인들은 찍소리를 못해요.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에 가서 채찍을 들었습니다.

 

의인이 고난 받는 것은 악을 폭로해요. 광주의 아름다운 청년들이 죽어간 것은 전두환이 얼마나 악이었는지 말해주는 것입니다. 전태일이 죽으면서 박정희가 얼마나 악인가를 알게 됐어요. 무엇이 악인지 알아야, 악마들 밑에서 아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보고 대결하면서 거기에 대치되는 생명의 포도주를 만들어서 사랑으로 생명의 포도주가 되는 세상이 되게 해야 합니다.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산업문화가 그렇게 만들고 있어요. 신자유주의가 그렇게 만들어요. 큰 교회도 한 축 끼어들려고 해요. 왕과 바알신(농경신으로 섬겨야 풍년이 들고 잘 살게 된다 - 일종의 물신)이 결탁해서 권력과 탐욕을 낳죠. 오늘의 바알신과 종교가 결합한 것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유치원 때부터 경쟁과 약육강식, 빈부격차의 모순에 빠져 가난한 사람이 많아지면 기업이 망합니다. 이러한 탐욕의 문화가 악순환 돼 결국 모두가 망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도 구제 사업을 하지만 국가에서 은행을 도와주면 돈 많은 사람에게만 돌아가요. 저는 민주주의를 돈주주의로 부르고 싶어요. 사랑으로 나누는 문화여야 생태계도 살아납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21세기 초에 이러한 운동이 싹트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귀농현상도 일종의 그런 운동의 일환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의 문화가 탄생하고 삶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문 목사의 '기쁨에 넘치는 잔치집'을 이해하려면 그의 설교를 들어야 알 수 있어 설교 내용을 정리해본다. 요한복음에서 인용한 것으로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전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유대나라 사람들은 한 남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잔치야 말로 땅 위에서 가장 즐거운 날이라고 생각하며 일주일 동안 잔치를 벌인다.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가신 집은 포도주가 떨어져 파흥된 잔치집이 됐다.

 

파흥이 된 집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 하면서 삶이 비참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오신 유대 땅도 마찬가지였다. 대사제들도 로마제국과 손잡고 주민들을 수탈했다.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여섯 통의 물 항아리를 채우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 물은 포도주로 변해 그 집에 다시 기쁨이 차 넘치는 잔치 집이 됐다. 사람들이 만드는 포도주는 각 가지 수단 방법을 통하여 만든 탐욕의 포도주, 권세욕의 포도주, 자기중심적인 종교들의 포도주들이다.

 

그러나 그런 포도주는 얼마 동안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듯하나 곧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이 세상을 파흥된 잔치 집과도 같게 만든다. 이 설교의 의미는 냉수 한잔에라도 사랑을 부어 넣어주면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이다.

 

설명을 보태기 위해 자신의 예를 들었다. 1976년 3월 1일 민주 구국 선언에 서명하고, 3년 형을 언도받아 목포 교도소에 갇혔다. 자리를 옮기면 얼마 동안 적응하기 위하여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4~5일 후 갑자기 청주 교도소로 이송시켰다. 청주교도소 방은 목포방보다 훨씬 컸지만 불안해 방을 왔다 갔다 할 때다. 갑자기 감방 창문이 열리더니 한 소년범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복도에서 심부름을 하는 '소지'라고 불리는 소년범이었다. 그는 목사님을 보며 "이 방에는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내가 신부님을 많이 도와드렸습니다. 부탁할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하고 사라졌다.

 

"이 방에 신부님이?"하고 중얼거리며 방 밖에는 천사라도 보내주신 것처럼 느껴졌다. 문 목사의 맘에 기쁨의 샘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때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하는 목소리가 들려 "이쑤시개"라고 대답했다. 문 목사는 이가 고르지 못해 음식을 먹으면 이 사이에 끼이곤 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소년이 가지고 온 이쑤시개를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이쑤시개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대나무로 만들었는데 한 쪽은 뾰족하고 한 쪽은 납작한 것이 정말 예술품이었다. 그것을 받아 든 목사와 소년은 서로 웃고 있었다. 둘의 마음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권력과 탐욕. 종교의 오용에 빠진 일부의 부덕한 사람들이 깨우침을 받고 사랑으로 세상이 하나 되는 날 기도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여수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문동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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