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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추석이다. 올해도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특히 올해는 연휴를 찾아보기 힘든 관계로 더욱더 추석연휴가 여행을 계획하는 직장인들에게는 고귀하게 느껴질 것이다.

나의 첫 해외여행, 난생 처음 떠나는 비행기여행의 목적지는 태국 푸껫이었다. 여행경비를 아껴보자는 생각으로 29만9000원의 3박5일 코스를 신문광고를 통해서 예약했다. 밤중에 떠나서 5시간여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내렸더니 미니버스와 젊은 여성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쇼핑으로 여행가격 맞추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건 여행이 아니었다. 거의 쉴 틈을 주지 않고 버스로 이곳에서 조금 저곳에서 조금 사진 찍고 가이드의 설명에 웃고, 코끼리를 타는데 상처와 그 상처를 가격하는 운전수의 갈퀴가 거슬렸다. 어찌나 코끼리가 불쌍한지 나 내려줘요 말도 못하고 학대당하는 그들 등 위에서 연신 땀을 흘렸다. 한국식당에서 밥을 먹고 이틀째가 되자 쇼핑몰에 들르는 것이 제일 긴 일과가 되었다.

라텍스침대로 시작해서 강장제, 금붙이를 파는 귀금속방. 돌아가기 전 이틀은 어떻게 해서라도 '매출'을 올리려는 가이드도 조급함을 보였고, 그에 짜증이 났던 우리도 지쳤다. 노골적으로 팁을 바라는 가이드에게 싼 여행의 대가라며 모두가 조금씩 걷어서 던져 주고는 비행기에 올랐다. 다시는 이런 여행을 하지 않으리라 이를 갈며 맹세했다.

두 번째 해외여행이자 '자유'여행은 좀 달랐다. 경험이 미천한지라 친구와 나는 숙박과 내륙이동 버스, 항공권만을 책임지는 여행상품을 구입했다. 여행지는 베트남이었다. 남부의 호치민에서 출발해 북부 하노이에서 귀국. 중간에 호이안, 후에등의 도시를 들러 돌아보는 길. 총 15일 동안 둘러보는 배낭여행이다.

가기 두 달여 전부터 공부를 했고, 어디를 봐야 할지, 얼마만큼의 예산을 들여야 할지 고민하면서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도 접하게 되었다. 빨갱이가 아닌 옆집 아저씨의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던 호치민. 그의 팬이 되었고 만나는 이들은 친절하고 근면하며 자부심이 강했으며 절대로 못사는 나라, 우리가 도와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 사람과 만나는 여행

호치민 여행자거리의 작은 바에서 만난 바텐더 아가씨는 우리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한국인에게 시집간 불행한 자신의 친구이야기를 했다. 당신의 선입관이고 행복을 찾은 사람도 있을 거라는 항변을 하려다가 나쁜 한국인의 이야기를 여행자 한국인이 들어주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맞장구를 쳐주며 맥주를 마셨다.

맥주와 커피로 점철된 여행이었다. 너무나 싼 값에 우리는 경비가 허락하는 한 마음껏 마시기로 했다. 커피는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하루에 석잔씩은 꼬박 마셨다. 덕분에 짧지만 베트남어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호이안의 호텔에서 동네의 작은 길가에 카페 겸 가게를 운영하는 아저씨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아저씨가 영어를 잘 했던 이유로) 사진도 같이 찍었다.

사진을 보내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아쉬웠다(사진이 저장된 사진기를 하노이에서 잃어버렸다). 우리 둘은 다음에는 호텔이 아닌 민박 같은 숙소에서 지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길거리에서 우리 돈 500원 정도면 사먹을 수 있는 '포호아(돼지고기 들어간 쌀국수)'는 한 끼 식사로 훌륭했다. 친구가 비위가 약해서 며칠만에 두 손 들고는 중국집을 찾아 전전했지만 나는 틈나는 대로 그들이 먹는 것을 공유하는 데 기쁨을 누렸다.

나의 자유여행 경험은 자연스레 내가 떠나서 도착하는 곳에 사는 '사람과 나눈 경험'으로 남았고, 그들의 삶과 문화 관심사에 눈을 두게 해주었다. 다시 가고 싶었고, 기회가 되면 베트남 북부의 산지에 사는 소민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미얀마와 태국, 티벳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이제 여행도 '공정'이다
'공정여행 가이드북'은 기존 여행안내서와는 다르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가고 어떻게 나눌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공정여행 가이드북'은 기존 여행안내서와는 다르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가고 어떻게 나눌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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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여행하라>는 요즈음의 화두인 '공정'이 여행과 만난 이야기이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를 시작한 한국은 2007년에 해외여행인구 1천3백만을 돌파했다. 3개월 이상 해외 장기 체류자 중 19세 미만의 미성년자가 10만 명을 넘었고, 미국유학생 1위의 영예(?)를 가지고 있다.

급속도로 발달한 해외여행의 붐 속에 우리는 과연 무얼 남기고 무얼 얻어서 들어오고 있는가. 여행을 왜 하냐는 물음에 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연속되는 업무와 경쟁,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고용의 불안정. 이러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또는 내 나라에서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대기업 직장인들이 단체로 해외에서 섹스관광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중국 등지에 한국인을 상대로 한 룸 가라오케가 성업 중이라는 이야기 등은 과거 일본이 '섹스애니멀'로 불렸듯 '어글리 코리언'이 늘어가고 있다는 증명이다.

싸게 구성된 '패키지'는 쇼핑을 강요하고, 호화 신혼여행으로 가는 동남아 현지의 리조트나 호텔은 대부분 외국자본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곳에서 쓰는 돈 또한 대부분 그들에게 돌아간다. 우리가 그곳에서 우월함을 가지고 접하는 종업원들은 그곳에서 돈을 벌지만 불안정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데다 일하는 양에 비해 그 대가는 터무니없이 적게 받고 있다.

관광지에 사는 주민의 비애

관광지의 거주자들은 관광수입으로 먹고 산다. 내가 사는 동네는 관광지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계곡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도로가 차로 들어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남기는 것은 쓰레기뿐이다. 몇 몇 민박집과 음식장사를 하는 이들은 그때 벌어서 일 년을 난다고 한다. 떼돈을 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머지는 상처만 받는다.

연일 풍겨대는 삼겹살, 치킨, 피자 냄새 속에서 널부러진 비닐봉지들과 페트병은 우리 손으로 치우긴 버겁다. 오염되어 가는 냇물과 말라가는 물과 물고기. 해마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오염되어가고 냇가에 늘어가는 천막과 평상. 음식점과 가판이다.

'83%의 주민이 관광업에 종사하는 몰디브 국민의 절반은 하루 1유로 미만으로 생활하는 처지이다. 식사 메뉴에서 사파리 버스에 이르기까지 관광객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 주는 모든 것이 수입되며, 심지어 식수 공급마저 관광 사업을 위해 제약을 받기도 한다. 주민들이 마실 식수의 양은 통제하면서도 호텔 풀장에는 깨끗한 물을 항상 가득 채워 놓는 것이다. 관광 산업에서 얻은 수익 대부분은 여행객의 본국으로 다시 흘러들어간다.'

꿈의 휴양지라고 불리는 몰디브의 화려한 리조트와 산호초로 둘러진 해변을 떠올리되 그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지 못한다면 우리도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데 한몫 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히말라야 트래킹에 필수적이라 할 '포터'들은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다. 고산증으로 아파도 조치받을 수 없으며 그들이 드는 짐의 주인과는 다른 낮은 곳에서 자고, 먹고 짐승처럼 동행한다.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들 스스로가 하긴 힘들다. 의식 있는 여행자의 연대가 그 현실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고 있다. 그들의 처우를 살피고 공정한 값을 치르고 '노동'을 할 수 있게 한다. 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그들과 나누고 소통하는 기쁨이 크기에 '공정여행'을 택하는 여행자들이 늘고 있다.

이제 한국 여행사를 압박해서 새로운 여행을 꾸며야 한다. 불공평하고 수직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방문자(여행객)와 원주민과의 관계도 바뀌어야 한다. 내 돈 내고 내 맘대로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 그들의 문화와 생활, 종교를 존중하고 지구를 생각해서 쓰레기를 덜 쓰고 화석연료를 덜 때고, 성매매를 하지 않고, 현지인들에게 제대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숙소와 음식점, 가이드, 교통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정여행의 '계명'

과도한 쇼핑을 삼가고 공정무역제품을 이용하며 현지 시장에서 지나치게 깎지 않도록 한다. 현지 인사말을 배우고 춤과 노래를 배우며 그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준비해보자. 내가 고용한 현지인이 제대로 '인간'의 대접을 받고 있는지 생각하고 배려해야 한다. 사진을 찍을 땐 허락을 구하고 돈으로 그들의 초상권을 사는 행위는 삼가자. 현지인을 위한 모금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좋은 '나눔'이 될 것이다.

공정여행은 지구촌의 한 가족이 서로 주고받는 훌륭한 소통의 방식이다. 선진국의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먹고 마시며 호텔의 안락함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가 생기는 여행이라면 아마 그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지구 위를 즐겁게 떠돌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희망을 여행하라/이매진피스 임영신,이혜영/ 소나무/ 16000원



희망을 여행하라 - 공정여행 가이드북, 개정증보판

이매진피스.임영신.이혜영 지음, 소나무(2018)


태그:#공정무역, #공정여행, #책임여행, #네팔, #동남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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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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