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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의 경기전망, 그러나 알고 있는 세 가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라고 요란했던 글로벌 금융거품 폭발의 신호탄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지 만 1년이 돌아오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수한 기관들의 경제 전망치들을 무참히 무너뜨리며 전 세계에서 급격히 진행되던 경제시스템의 붕괴 추세가 일단 멈추었다. 그러나 한 치 앞도 예측하기가 어렵기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세계경제는 여전히 안개속의 미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시점에서 적어도 공유 가능한 몇 가지 대목은 있다. 첫째는 경기가 추락을 멈추고 회복세로 가고 있지만 회복은 대단히 느린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주로 지금까지 경기회복을 주도한 정부역할을 민간이 떠안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글로벌 민간소비위축이 장기화될 것이며 동시에 세계적인 과잉생산 규모 축소 조정도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경기회복과정에서 또 다시 경기가 추락하는 '더블딥' 가능성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루비니 교수가 주장하는 '출구전략 딜레마'가 대표적인데, "재정적자 해소와 시중의 유동성 회수를 위해 증세를 하고 재정지출을 줄이자니 다시 경기회복이 느려지면서 스태그디플레이션(stag-deflation)이 올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지금처럼) 재정확대를 계속하자니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국채수익률과 대출 금리가 상승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셋째는 각 국가마다 양상은 다르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요소들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채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연체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5300억 달러에 이르는 상업용 부동산 부실이 잠재된 뇌관이고, 유럽은 2009년 2월에 폭발 직전까지 갔던 동유럽 국가에 물려있는 서유럽 은행부실 위험이 아직 살아있다. 아시아에서는 미국을 대신해 세계경기 회복 주도국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중국에서 자산시장 거품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 풀린 막대한 돈 가운데 20퍼센트는 증시에, 30퍼센트는 부동산에 몰리며 자산 거품이 형성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특이하게 상승세를 꺾지 않으며 700조까지 불어난 가계 부채 증가가 위험요소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침체는 끝났다"는 선언들이 줄을 이으면서도 ▲ "회복이 시작되었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릴 것이다", ▲ "여전히 더블딥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 "세계 경제 곳곳에 위험요소들이 살아있다"는 정도의 공통된 인식아래 세계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에 대한 각 국가와 경제 주체들, 그리고 가계는 1년여 간 지속되어 온 금융위기 이후 앞으로의 1년을 걱정스럽게 맞이하고 있다.

 

금융위기 사실을 잊어버린 '여의도 증권가'와 '강남 부동산 업계'

 

 

2008년 10월 이후 정부의 연속적인 금리 인하로 기준금리가 2퍼센트까지 내려가고 외화와 원화 유동성 공급으로 시중에 자금이 대거 풀렸지만 2009년 2월까지 주가와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2009년 2월은 미국 발 상업은행 위기, 유럽 발 동유럽 국가 부도 위기, 그리고 한국의 외화 유동성 위기 조짐이 겹치면서 제 2의 금융위기가 우려되던 시점이었다(새사연, "제2 금융위기의 허와 실, 그리고 위기의 구조적 해결을 위한 양대 과제", 2009.2.23). 시중에 풀린 유동자금은 머니마켓펀드(MMF)와 같은 형태로 단기 부동화되면서 금융권을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3월 초부터 상황은 서서히 반전되기 시작한다. 2009년 3월부터 위기의 진원지 미국에서 씨티은행 국유화가 확정되고 미국의 19개 대형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계획이 발표되었으며, 은행 부실자산 인수계획이 구체화됨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1000선으로 떨어진 한국의 주가는 서서히 오르더니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서 결국 7월에 1500선을 돌파했고 8월에는 1600선마저 넘어설 정도로 고속 상승 가도를 달리게 된 것이다.

 

금융위기 한복판에서 정부가 풀기 시작한 각종 재건축 규제완화와 투기지역 해제 등 부동산 규제완화에도 내리막길을 멈추지 않았던 부동산 가격도 주가 상승시점에 맞추어 다시 반등을 시작한다. 비록 국지적이지만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하여 상승하던 부동산 가격이 속속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복귀하기 시작했으며 매수심리는 2008년 초를 이미 훨씬 넘어 버렸다. 그에 따라 전국 미분양 주택도 2009년 3월 16만 5000호를 최고 정점으로 해서 3개월 뒤인 6월에는 14만 5000호로 서서히 줄어드는 데까지 이른다(국민은행, "지역별 미분양 현황', 2009.8).

 

매매가격 반등과 함께, 그보다 훨씬 더 가파른 속도로 뉴타운 재개발 요인이 연동되어 전세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2009년 9월 현재 아파트 전세가격 폭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정부가 긴급히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바야흐로 금융위기의 짙은 먹구름이 한국의 자산시장에서부터 빠르게 걷히기 시작했고, '여의도 증권가'와 '강남의 부동산 업계'는 언제 금융위기가 있었냐는 듯 금융위기 사실 자체를 잊고 한창 들뜬 분위기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물론 2009년 3월부터 자산시장의 상승반전은 상당 정도로는 글로벌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승률은 세계적 추세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상당히 빠른 것이고 이례적이었다.

 

예컨대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이전과 비교했을 때(2008년 8월 말 대비 2009년 8월 말 비교), 한국의 주가 상승률은 +8퍼센트였는데 이는 OECD 국가들 가운데 터키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또한 우리나라의 주가는 2009년 초와 대비해도 8월 말 기준 37.5퍼센트가 올랐는데, 이 역시 중국의 46.5퍼센트 상승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미국의 5.1퍼센트에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상승률이다.

 

주식시장이 통상 실물경기에 선행한다고는 하지만, 2009년 5월까지도 산업생산이나 수출과 소비, 고용 등이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었음에도 주식시장은 이처럼 빠른 속도로 상승했고, 7월 이후 외형적인 실물지표가 개선되었다는 발표까지 이어지자 주가는 1500선에 이어 1600선까지도 넘어서게 된 것이다. 금융위기 1년 만에 이제는 자산시장의 거품을 다시 걱정하는 상전벽해의 처지로 급변하게 되었다.

 

수퍼추경의 1.5배, 50조 원으로 한국 자본시장을 되살린 외국인

 

그렇다면 금융위기의 폐허 속에서 2009년 한국 주식시장의 화려한 부활을 이끈 장본인은 누구인가? 2008년 주가 폭락을 주도했던 외국자본이 바로 그 당사자였다. 외국자본이 2008년에는 주가 폭락의 주범이었고 2009년 주가 폭등의 주역이기도 했던 것이다.

 

 

2007년 말까지 한국 주식시장에서 32퍼센트를 넘는 비중으로 최대의 큰손으로 군림하던 외국인은 2008년 금융위기 국면에서 자그마치 33조 6000억 원의 주식을 팔아치우며 월가 살리기에 나선 바 있다. 그 결과 한국 주식 비중은 그해 말 28.9퍼센트까지 떨어졌고 마지막 주가하락의 시점이었던 2009년 3월에는 28.3퍼센트까지 내려간다.

 

그러나 2009년 3월부터 한국 주식시장에 되돌아온 외국인은 놀라운 속도로 한국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2009년 9월 4일 기준 유가증권 상장 주식을 21조 5000억 원어치를 순 매수했고 시가총액 대비 비중을 다시 31.2퍼센트로 끌어올리게 된 것이다.

 

이는 코스닥 시장과 ETF(성장지수펀드)에서 팔아치운 금액 8조 5000억 원을 감안해도 13조 원이 넘는 금액이며, 채권시장에서 순 매수한 금액 29조 원을 합하면 무려 50조 원 가까운 자금을 외국인이 한국 자본시장에 쏟아 부은 것이다. 이 규모는 우리나라가 올해 '슈퍼 추경'이라는 용어까지 붙일 정도의 추가경정예산 규모 28조 7000억 원의 1.5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 결과 올해 외국인 한국 주식 매입실적은 주식시장 개방이후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할 정도의 놀라운 것이었다. 2009년 7월 외국인이 사들인 주식매입 규모 6조 원은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고였으며, 집중 매수 기간으로 보아도 2009년 4월~7월까지 투자한 16조 5조 원도 역시 사상 최고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지분율을 42퍼센트까지 끌어올리며 순 매수 행진 마지막 정점을 달렸던 2004년이었다(금융감독원, "2009년 7월까지의 외국인 상장주식 투자내역", 2009.8.6).

 

과연 한국 주식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큰 손이 누구인가가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수치로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이처럼 외국인이 역대 최고 금액의 주식을 사들이는 동안 기관들과 개미들은 무엇을 했을까. 한마디로 표현하면 기관들은 대량으로 주식을 팔아 외국인이 원하는 물량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고, 개미들은 외국인들을 뒤늦게 좇는 형국이 되었다. 2006년 360만, 2007년 440만, 그리고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8년 말에도 460만까지 불어나서 경제활동 인구 5명당 1명이 주식을 할 만큼 수많은 대한민국의 개미들은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외국인의 움직임을 뒤따르기 바빴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인의 대규모 순매수는 당연히 대량의 달러를 한국 자본시장에 유입시켰고, 주식시장이 달러 공급자 역할을 하면서 환율을 떨어뜨리게 된다. 환율 하락은 불황형 흑자에 의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자본시장으로 유입된 외국자금의 영향도 막대한 것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한국의 원 달러 환율은 주가와 매우 밀접한 연동성을 가지고 움직여왔다. 주가가 오르면 환율은 내려가고 주가가 내리면 환율이 오르는 상관관계가 매우 높아졌던 것이고 이것은 올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2009년 환율은 주가가 최저점을 기록했던 3월 초에 1550까지 치솟다가 그 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2009년 7월 중순이후에는 1250선에서 유지되고 있다.

 

다만 다른 것은 올해에는 주가가 최저점 대비 약 50퍼센트나 올랐는데 반해서 환율은 -20퍼센트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주가는 이미 금융위기 이전 상태로 완전히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금융위기 이전 상태인 1000~1100선이 아니라 금융위기가 한창 폭발하던 시점인 2008년 10월 수준에서 더 이상 하락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한국의 환율은  2009년 6월 기준으로 전년에 비해 21.5퍼센트 상승한 채로 매우 높게 유지되고 있다. 특히 7월 이후에는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던 데 비해서 환율은 거의 하락 없이 횡보하고 있다. 덕분에 환율효과가 유지되어 수출에는 대단히 유리한 환경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요인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실제로 정부는 한국이 주요 국가 가운데 국제 무역에서 가장 환율 효과를 톡톡히 본 국가로 발표한 바가 있다(지식경제부, "환율변동이 국가별 무역에 비치는 영향분석", 2009.9).

 

한국 주식시장의 외국인은 역시 월가 사람들

 

다음으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지점은 바로 그 '외국인'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예상했던 대로 월가 즉, 미국 금융자본이다. 올해 한국 주식시장으로 들어온 외국자금은 공식적인 미국 국적의 자본이 36퍼센트를 넘고, 사실상 미국 자본이 주류인 조세회피지역 케이만군도 투자자를 합치면 미국계가 절반에 육박한다. 여기에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조세회피 가능성이 높은 룩셈부르크 펀드에도 미국계 자금이 상당히 있을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2009년 한국 증시는 미국 금융자본이 움직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금융 불안 진정세로 여유를 찾은 월가의 생존자들이 한국 자본시장으로만 돌아왔을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제외하고 대부분 신흥시장에 외국자금이 다시 유입되었다. 다만 한국에 유입된 자금이 172억 달러 이상으로 가장 많았다는 점이 다르다. 아시아 신흥시장 가운데에서도 한국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유독 외국자금이 연속해서 유출된바가 있었는데, 그 반대 급부로 올해에는 가장 많은 자금이 유입되었던 것이다.

 

요약하면 월가의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한 외국자금이 금융위기가 바닥을 지났던 2009년 3월부터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고, 특히 아시아 신흥시장 가운데에서도 한국시장으로 집중적으로 몰려들었다. 그 결과 한국의 주가는 매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올라갔고 그에 비례하여 외국인 지분율도 다시 30퍼센트 위로 올라갔던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미국계 자금유입이 한국 주가 변동의 가장 큰 요인이었던 만큼, 한국의 증시는 여전히 미국의 주가와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한국의 기업실적 등 실물지표가 별도의 영향을 주기도 하고, 특히 경제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큰 변수로 등장한 중국 지수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국의 주식시장은 미국 주식시장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있고 미국 금융시장과의 강한 '동조화(coupling)'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한국의 무역 구조가 금융위기 이후 다시 미국과의 연계성을 완화하는 대신에, 2009년 8월에는 대 중국 의존도가 기존의 20~22퍼센트 수준에서 무려 28퍼센트까지 급증하고 있는 추세와 확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글로벌 대자본, 증시에서도 주가를 높이다

 

그런데 한국의 유난히 높은 주가 상승과 관련해서 한 가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세계 경제침체와 소비위축의 한파를 뚫고 세계 시장 점유율과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는 주요 초 대기업들이 한국의 주식시장에 주는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초 대기업들의 규모는 단순히 매출액이나 영업이익률뿐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시가 총액에서도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한 개 기업의 시가총액 115조 원이 전체 코스피 시가 총액의 13.7퍼센트에 달할 정도이다. 현대자동차 시가 총액 23조 원도 약 3퍼센트의 무거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주가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전체 주가가 결정된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 같은 한국의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이번 증시 상승에서 보여준 활약도 눈부신 것이었다. 2009년 종합주가가 3월의 저점 대비 8월 말 평균 50퍼센트라는 엄청난 상승률을 기록했다는 것은 앞서 언급했다. 그러나 한국 초 대기업들의 주가 상승률은 평균 상승률을 훨씬 뛰어 넘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거의 두 배(46만 원→ 79만 원), 지주회사 엘지도 거의 두 배(3만 8000원→ 7만 8000원)나 뛰었고, 현대 자동차는 아예 두 배를 훌쩍 넘는 기록적인 상승률(4만 7000원→ 11만 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 등 일부 기업들은 세계 경기침체 한복판에서 주가가 사상 최대의 기록을 세우는 신고점 갱신 행진을 이어갔다. 전체 시가총액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 기업들이 수개월 만에 두 배 이상 뛰어오른다면 전체 주가의 급등은 필연적인 것이고, 나머지 기업들의 부진을 일거에 상쇄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초 대기업들이 반도체, LCD, 자동차, 휴대폰 등의 분야에서 환율 효과를 등에 업고 세계시장 점유율을 단시간에 확대시키며 보여준 예상외의 실적이 주식시장에 그대로 반영이 된 것이고, 특히 7월 이후에는 이들 기업들의 2분기 실적들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주가 급등을 주도했다(새사연, "삼성과 현대가 잘나가면 우리 국민도 잘 살까?", 2009.9.4).

 

물론 이들 초 대기업들의 주가 상승에는 역시 외국인의 공헌이 지대했다. 예를 들어 외국인은 삼성전자 3조 5000억 원, 현대차 9800억 원, 지주회사인 LG가 7900억 원 정도를 순 매수했는데 그 사이 기관과 개인은 이들 기업에 대해 모두 순매도를 기록했다.

 

한국 초대기업들의 주가 폭등은 계열 그룹사들의 시가 총액 비중을 동반 상승시켜 삼성그룹은 전체 시가 총액의 1/5이 넘게 되었으며 현대차 그룹은 6.4퍼센트를 차지하는 등 주요 5대 그룹의 시가총액이 자그마치 41.2퍼센트나 차지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한국의 주식시장 폭등은 정부에 의한 저금리 기조와 거시경제지표 회복이 뒷받침된 가운데, 주요 초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방하며 실적을 올려가자 불황 속에서 수익처를 찾던 월가의 금융자본이 한국의 초 대기업들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투자하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3자 합작품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 공매도와 같은 금융자본의 투기적 움직임이 역으로 멀쩡한 기업들의 주가를 폭락시키고 자금난에 빠뜨렸던 상황이 연출되었다면, 대단히 국소적인 기업들에게만 해당되겠지만 다시금 기업실적이라고 하는 실물의 움직임이 주가라고 하는 금융변수를 움직이는 상황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2008년 9월 초 이른바  한국의 9월 위기설이 등장하면서 한국 주식시장이 요동쳤던 1년 전 9월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새사연, "9월 위기설은 지나갔지만, 진짜 위기는 이제 시작", 2008.9.9).

 

 

그러나 금융은 아직 살아있다

 

금융위기 이후 1년 동안의 한국 주식시장의 극적인 변화 양상을 전반적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 아시아에서 금융위기 충격을 가장 크게 받았던 한국은 2009년 3월을 반환점으로 금융위기의 짙은 먹구름이 자산시장에서부터 빠르게 걷히기 시작했고, '여의도 증권가'와 '강남의 부동산 업계'는 언제 금융위기가 있었냐는 듯 금융위기 사실 자체를 잊고 한창 들뜬 분위기로 돌아서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자산시장 상승률은 세계적 추세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더디기만 한 실물경제 회복에 비해 상당히 빠른 것이고 이례적인 것이었다.

 

▲ 3월부터 한국 주식시장에 되돌아온 외국인은 놀라운 속도로 한국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2009년 9월 4일 기준 유가증권 상장 주식을 21조 5000억 원어치를 순 매수했고 시가총액 대비 비중을 다시 31.2퍼센트로 끌어올리게 된다. 올해 한국 자본시장에 무려 50조 원 가까운 자금을 외국인이 쏟아 부었는데, 이 규모는 우리나라가 올해 '수퍼 추경'이라는 용어까지 붙일 정도의 추가경정예산 규모 28조 7000억 원의 1.5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 올해에는 주가가 최저점 대비 약 50퍼센트나 올랐는데 반해서 환율은 -20퍼센트 밖에 떨어지지 않아 일정하게 주가와 연계성이 완화되는 것처럼 나타났다. 즉, 주가는 이미 금융위기 이전 상태로 완전히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금융위기 이전 상태인 1000~1100선이 아니라 금융위기가 한창 폭발하던 시점인 2008년 10월 수준에서 더 이상 하락하지 않고 있다.

 

▲ 올해 한국 주식시장으로 들어온 외국자금은 공식적인 미국 국적의 자본이 36퍼센트를 넘었고, 사실상 미국 자본이 주류인 조세회피지역 케이만군도 투자자를 합치면 미국계가 절반에 육박한다. 여기에 당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조세회피 가능성이 높은 룩셈부르크 펀드에도 미국계 자금이 상당히 있을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2009년 한국 증시는 미국 금융자본이 움직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 한국의 증시는 여전히 미국의 주가와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일부 한국의 기업실적 등 실물지표가 별도의 영향을 주기도 하고, 특히 경제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큰 변수로 등장한 중국 지수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국의 주식시장은 미국 주식시장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있고 미국 금융시장과의 강한 '동조화(coupling)'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이는 무역구조가 점점 더 미국과의 연계성을 완화시키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 한국의 초대기업들은 세계 경기침체 한복판에서 주가가 저점 대비 두 배 이상 상승하고 사상 최대의 기록을 세우는 신고점 갱신행진을 이어갔다. 전체 시가총액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 기업들이 수개월 만에 두 배 이상 뛰어오르면서 증시 상승을 주도했고 나머지 기업들의 부진을 일거에 상쇄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삼성그룹은 전체 시가 총액의 1/5이 넘게 되었으며 현대차 그룹은 6.4퍼센트를 차지하는 등 주요 5대 그룹의 시가총액이 자그마치 41.2퍼센트나 차지한다.

 

▲ 한국의 주식시장 폭등은 정부에 의한 저금리 기조와 거시경제지표 회복이 뒷받침된 가운데, 주요 초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방하며 실적을 올려가자 불황 속에서 수익처를 찾던 월가의 금융자본이 한국의 초 대기업들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투자하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3자 합작품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한국의 주식시장과 자본시장은 향후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현재 한국경제와 자본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한국정부와 한국의 초 대기업, 그리고 월가 금융자본의 '지탱능력의 지속성' 여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직은 민간 기업과 가계가 바통을 이어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단기 신속대응'으로 성과를 올렸던 한국 정부는 그 만큼 '장기 지속 대응능력'의 여력이 점점 줄고 있는 형편이고, 한국의 초 대기업들도 앞으로 환율 효과를 제거한 후 글로벌 과잉생산 축소와 치킨게임에서 매번 승자가 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한국에 투입한 월가 자금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여전히 한국행을 지속할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체이스,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 등 금융시스템 붕괴의 폐허 속에 살아남아 지배력을 더 높인 월가의 자본이 금융팽창의 과거 영예를 재현할지는 더욱 불확실하다.

 

두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 하나는 한국의 자본시장이 금융위기 이전이나 이후나 모두 외국자본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한국증시의 향방은 한국 국민경제가 아니라 월가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금융위기의 뇌관들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가 회복세를 타자 숨죽였던 월가의 주요 플레이어들은 아직 시작도 안한 금융규제책에 대해 사실상 무력화에 나서고 있고 월가 출신들로 채워진 오바마 행정부도 여기에 동조하는 기세다.

 

언제든지 월가 금융불안의 재발로 인한 한국 자본시장도 불안 국면으로 빠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 역시 자본시장통합법으로 열려있는 공간에서 금융진정세를 타고 뒤늦게 금융팽창을 본격화할 경우 미래는 더욱 안개 속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는, 한국 정부와 한국 초 대기업이 만들어 준 토양위에서 단기 차익을 보고 물밀듯이 밀려드는 외국자금을 뒤따르느라, 고용불안과 소득감소가 전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도 잊은 채 자산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한국의 가계가 안전장치 없는 새로운 금융 불안의 뇌관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그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고 금리 인상 움직임이 가시화되면 위험성의 실체는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 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금융위기1년, #리먼브라더스파산, #부동산거품, #경기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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