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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를 강행한 언론법 권한쟁의 심판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열린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한나라당이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를 강행한 언론법 권한쟁의 심판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열린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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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재판은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위한 재판이다."

언론법 권한쟁의 청구사건의 첫 번째 공개변론을 마친 야당측 변호인 입에서 터진 말이다. 이번 재판은 여당을 위한 것도 야당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그는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한 재판"이라고 단정했다.

지난 7월 22일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재투표, 대리투표 의혹을 낳으며 강행 처리한 언론법에 대해 민주당이 권한쟁의 청구를 제기하면서 끝내 의원직 사퇴, 장외투쟁 등 극한 대립을 보여온 이 사건의 최대 수혜자가 헌법재판소라는 주장인 셈.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가을햇볕이 작렬하는 10일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는 국회를 옮겨다 놓은 것처럼 정치인들이 북적였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 등 야당 의원들은 이번 공개변론을 방청하기 위해 출동했고, 여당측 의원들도 질세라 이번 재판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정작 헌법학자들은 이 같은 정치권에 쓴 소리를 퍼부었다. 입법부가 사법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게 아니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 "정치의 대혼란이냐, 비판의 십자포화냐"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국회 자율권을 존중한다고 해도 헌법재판소가 유효판결을 내리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5년 사학법 개정반대 정국에서도 헌법재판소는 '중대한 하자가 아닌 경우에는 국회 자율권을 존중하되, 중대한 하자가 발생했다면 개입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를 세운 바 있다고 회상했다.

이번 언론법 권한쟁의 사건도 '중대한 하자'인가 '중대하지 않은 하자'인가 여부를 놓고 다툴 가능성이 있다는 게다. 유효판결을 하기 위한 논리를 세운다면 '권력의 3권 분립에 따라 국회의 일은 자율적 결정에 맡긴다' 정도가 되겠지만 이 역시 너무 과거논리라 헌법재판소로서는 이걸 주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다.

이 교수는 1969년 미국 대법원 판결을 예로 들면서 "만일 헌법재판소가 언론법 권한쟁의 청구사건을 유효로 본다면 40년 전 미국 판결보다 못한 결론을 내린 꼴이 되는 것"이라며 "판결논리는 궁색할 것이고 권위는 상당히 추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969년 Powell v. McCormack 사건에서 미국 대법원은 의회의 의사 결정을 사법부가 심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해왔던 종래의 입장을 번복해 헌법을 위반한 하원의 결정을 무효로 판결했다는 것.

이 교수는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의를 위한 투쟁이었다"며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형사소송과 행정소송에서의 기본권도 절차적 정의에 관한 것이고 절차적 정의가 보장되지 않은 사회는 민주적 사회라고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헌법재판소가 이번 사건에 대해 무효로 결정하면 이명박정부가 추진하는 방송장악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사회적 파란이 상당히 불 것이고, 반대로 유효로 결정하면 법리적 판단을 한 게 아니라 정치적 판단을 했다는 비판의 십자포화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대혼란이냐, 비판의 십자포화냐 양 갈래의 길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을 것이라고 보았다. 정치권에서 넘어오지 말아야 할 숙제가 헌법재판소로 넘어와 애꿎게 고된 숙제를 하고 있지만, 이 역시 헌법재판소가 헤쳐가야 할 고비 중 하나라고 조언했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 "압수수색, 현장검증 할 수 있나? 바보들의 행진"

한나라당이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를 강행한 언론법 권한쟁의 심판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열린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언론악법 원천무효 100일 행동'으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천정배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를 강행한 언론법 권한쟁의 심판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열린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언론악법 원천무효 100일 행동'으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천정배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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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는 10일 <오마이뉴스>와 전화에서 "여야 막론하고 입법부의 일을 사법적으로 재단하는 것 자체를 창피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입법부는 선출된 권력이고, 사법부는 임명된 권력인데, 임명된 권력에게 선출된 권력이 와서 시시비비를 가리려 드는 것은 그 자체로 창피한 일이라는 게다.

성 교수는 "재판관에 의한 통치는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니다"며 "노동법 날치기 때부터 지금까지 입법부에서 사건만 생기면 헌법재판소로 가져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우선 든다"고 밝혔다.

일단 입법부에서 발생한 사건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갔으니까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가 쟁점이겠으나, 굳이 따져보자면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자율권 수준에서 사법적으로 재단할 수 있는 영역이 어느 정도까지인가 검토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조망했다.

국회에서 언론법이 통과된 것이 유효인가 무효인가를 따지는 것도 어물쩍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일 아니겠냐고 진단하기도 했다. 입법부의 일을 사법부로 가져가서는 안 되는데, 그런 사건을 맡고 있으니 어물쩍 넘길 수밖에 없다는 게다.

성 교수는 "사법관이 대통령 하는 일에, 국회 하는 일에, 일일이 콩 내라, 팥 내라 하다가는 스스로 망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재판도 사법적 개입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논란의 쟁점은 사법 적극주의냐, 사법 자제설이냐 하는 점인데, 일반 재판 같으면 당연히 국회에서 벌어진 사건을 촬영한 동영상도 보고 현장조사도 하고 해야겠지만 과연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국회 본의회장에 들어가 현장조사를 할 수 있겠냐고 개탄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일종의 난센스 게임"이라고 규정했다.

정녕 헌법재판소가 바른 판단을 해보겠다고 작심했다면, 국회 본회의 현장에서 날치기가 있었는지, 대리투표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국회 관련 기록과 동영상 일체를 압수수색 하고, 현장검증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형사 재판의 경우에는 일상적인 일인데 헌법재판소 역시 못할 리 없다는 게다. 그런데 과연 헌법재판소가 이번 사건을 재판하면서 압수수색과 현장검증을 하겠냐고 의문부호를 찍었다. 그런 것도 하지 못하면서 이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성 교수는 "20세기 후반 화두가 된 헌법재판이 헌법 최후의 규범이기는 하나 국민주권은 여전히 대의민주주의 연장선인 의회에서 나온다"며 "국민대표가 만든 일반 의사표현의 법률에 대해 일일이 시비할 수 있느냐는 시대가 있었고 헌법도 헌법의 잣대로 들여다보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어진 게 헌법재판소"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성 교수는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신뢰 없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며 "국회고 정부고 막무가내로 나올 때마다 박치기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성 교수는 "민주주의는 자꾸 절차적 정의를 거쳐야 한다"며 "적법절차라는 법의 일반원리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이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를 강행한 언론법 권한쟁의 심판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열린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언론악법 원천무효와 헌법재판소의 바른 결정을 촉구하는 전 언론인 기자회견'에서 전국언론노조원들이 헌재의 올바른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를 강행한 언론법 권한쟁의 심판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열린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언론악법 원천무효와 헌법재판소의 바른 결정을 촉구하는 전 언론인 기자회견'에서 전국언론노조원들이 헌재의 올바른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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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연세대 교수] "정치의 사법화 문제다... 부적절행위 있었다면 무효"

김종철 연세대 법대 교수는 "국회에서 절차적 논란이 생겼을 때는 국회가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입법절차를 어겨 다른 기관에 의견을 구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잘못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국회에서 여야간 합의가 안돼 헌법재판소에 청구된 사건이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결정돼야 할 것"이라며 "정치문제를 국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입법과정에서 빚어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로 가져오는 '정치실종'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는 김 교수는 "정치에서 벌어진 일을 과도하게 재판과정으로 가져가는 것은 정치의 사법화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첨예하게 갈린 여야의 입장을 놓고 보자면, 투표방해에 대해서는 야당이 완전히 책을 면키 어렵지만, 여당의 경우도 투표과정에서 파행이 이뤄지도록 한 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이 점을 정확히 보고 바르게 판결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 교수는 "국회 입법과정에서 정상적인 투표행위가 이뤄질 수 없었던 점은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투표과정에서 부적절한 행위가 이뤄진 점이 발견되면 무효화 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이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를 강행한 언론법 권한쟁의 심판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열린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변호인단이 공개변론에 참석하고자 헌재로 들어서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를 강행한 언론법 권한쟁의 심판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열린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변호인단이 공개변론에 참석하고자 헌재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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