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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산 쪽으로 수 백 미터, 집 한 채 달랑 있는 한적한 산골 맨 땅에 착공하고 상량을 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이사와 마을 집들이까지 마쳤다.

땅을 소개한 마을 사람조차 이렇게 외진 데서 살 수 있겠냐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만류(?)하던 산골 땅이 지금은 제법 풍광 좋고 살만한 집터로 바뀌었다고 주위에서 입을 모은다.

지난 4개월 동안 집짓기에 도전한 시간들은 이제는 빼곡히 적혀 있는 건축 일기장 속에 문자로만 조용히 남아 있다. 봄과 여름을 집짓기로 보내고 잠시 고된 육체노동의 끈을 놓으니 어느새 불어오는 가을 바람은 사람과 집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에 들게 한다.

봉촌리에 통나무와 황토벽돌로 새로 지은 집
▲ 봉촌리 새둥지를 틀다 봉촌리에 통나무와 황토벽돌로 새로 지은 집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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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복판에서 한적한 산골로 들어가다

흔히들 시골주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귀농자들은 외딴 곳을 좋아하는가?"

귀농 2년 간 마을 한복판의 빈집에서 살았다. 바로 앞과 옆으로 담을 맞대고 살아가는 시골 이웃들, 좋은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상존했다. 이웃을 자주 볼 수 있어 좋고 생활의 대부분이 노출되어 주민들의 입을 타고 생중계(?) 되는 것도 시골마을의 훈훈한 정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담과 담을 사이에 두고 이웃 간에 빚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들은 오래 전 내 것 네 것 없이 나누고 살던 시골 공동체의 모습을 빛바래게 했다.

귀농자들이 외진 곳을 선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은 복잡한 관계보다는 단순한 삶을 추구하다 보니 아무래도 조금 떨어진 곳을 택하는 것 같다. 거기에 외딴 곳의 땅값이 싼 것도 한 몫 할 테고 친환경 농사짓기에도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나 역시 무엇보다 저렴한 땅값이 우선 결정 요인이었고 한 2년간 마을에서 부대끼며 살다 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것이 더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아들과 함께 살아 왔던 이웃집의 8순 할머니는 죽기 전에 사람 들어오는 모습을 보게 됐다며 너무 좋아하셨다, 한 때는 다섯 가구가 살다 한 채만 남은 산골마을에 수 십 년 만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 온 것이다.

직영으로 건축비의 30% 절감, 무엇보다 내 손길 닿은 집 보며 더욱 흡족

개집 하나도 제대로 못 짓는 내가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를 직영으로 짓겠다고 나선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돈이 없었고, 두 번째는 직접 짓지는 못하더라도 건축업자에게 도급으로 넘기는 방식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내가 살 집, 내가 조금이라도 손대보고 싶은 욕심이었다. 고작해야 집짓기 관련 책 몇 번 읽은 지식으로 일을 시작했으니 그 어렵고 힘든 공정에서 내가 겪어야 할 일은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재 조달부터 시작해 전체 공정의 점검 및 조정, 허드레 일부터 시작해 힘들고 고된 일들은 대부분 집주인의 몫이었다. 말이 좋아 건축주이지 한편으론 목수들 눈치(?) 봐야지, 자재비용 깎아야지, 건축비 맞추느라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집짓다 10년은 늙는다는 말을 실감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건축비를 절감하기 위해 일정을 단축하려는 건축주와 나름대로의 일 스타일이 있는 목수들과의 관계는 어찌 보면 긴장과 눈에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수 백 개의 낙엽송 통나무 껍질을 낫으로 벗기며 가시가 들어가 고통스러웠던 기억, 통나무를 트랙터로 상량하려다 밧줄이 풀려져 아찔했던 순간, 비만 오면 나무와 황토벽돌 젖을까봐 비설거지 하느라 동분서주했던 기억들, 안방 바닥에 금이 가 다시 깨고 새로 미장하면서 속상했던 기억, 장마철에 습기로 곰팡이 핀 통나무를 손그라인더로 갈면서 땀에 흠뻑 젖은 시간들, 막판에 싱크대와 장롱, 바닥 자재로 아내와 실랑이 하던 기억들, 아내와 둘이 인건비 절약하겠다며 서투른 솜씨로 벽돌 쌓으며 스스로 만족하던 시간들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 집안 곳곳에 숨을 쉬고 있다.

통나무 기초를 위해 열심히 낙엽송을 나르고 있다
▲ 집짓는 과정 통나무 기초를 위해 열심히 낙엽송을 나르고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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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도급으로 맡겼을 때에 비해 약 30%의 건축비를 절감했기에 후회는 없으나 쉬지도 못하면서 지속된 노동의 후유증인지 한동안 기진맥진 상태에 놓이기도 했었다. 그래도 좋은 목수 만나 좋은 집 지었고 무엇보다 큰 사고 없이 집짓기의 대역사(?)를 마무리함에 늘 감사할 따름이다.

새 집에서 처음 자던 밤, 달과 구름을 안고 잠들다

이사한 첫날 우리 식구는 어수선 한 살림살이를 밀어두고 새로운 둥지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넉 달을 짓고 보고 내 손으로 보듬은 집이지만 막상 이불을 깔고 누우니 잠이 오질 않았다. 마침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엔 달과 구름이 처연하게 우리 식구들을 내려 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자면서 달과 구름을 보다니.. 과연 산골로 들어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나뿐이 아니라 우리 식구들 모두 달빛과 구름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었다.

마침내 집짓기의 꿈 이루고 남은 일은 경제자립이라는 진검승부

귀농 3년 차, 마침내 처음 마음먹은 대로 새로운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꿈을 이룬 것이다. 귀농 전, 농사도 짓고 싶었지만 닭장 같은 아파트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내가 지은 집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던 욕심 또한 사실이었다.

평생 한 번 짓기도 힘들다는 내 집의 소원을 이루고 마냥 행복해야 할 요즘 마음 한 구석이 또 새롭게 비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에서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봤고, 귀농해서 집까지 짓고 살게 되었지만 집짓기도 그렇고, 늘 무엇인가 이루고 나면 또 새로운 것에 갈증을 느끼고, 그렇게 생존하기 위해 살다 가는 것이 삶인가 보다.

이제 그럴 듯하게 새둥지는 틀었지만 앞으로도 창고와 별채 짓기, 내년도 농사를 위한 농장 만들기 등 올해 안에 해야 할 일이 무수하다.

무엇보다 내년도는 우리 가족의 경제자립 원년을 목표로 삼고 있다. 어찌 보면 귀농의 진검승부라고 할 수도 있다.

집을 짓는 것도 사람이 살기 위한 수단일 뿐,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 다섯 가족의 경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일이다. 지금까지가 귀농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투자기간이었다면 내년부터는 최소한 마이너스 경제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차라리 빈집을 얻어 살 때는 정착의 부담도 덜 했지만 이제는 집까지 지었으니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절박감은 더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믿음 하나, 자연은 내가 가까이 갈수록 나를 더욱 품어 주리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연장을 들고 논밭으로 향한다. 땀 흘리는 수고만이 결과를 말해준다고….


태그:#집짓기, #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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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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