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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짐짓 놀이에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몰입에 가까웠다.

 

 초등학교 2학년인 큰 아이의 두번째 여름방학이 2주정도 남았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부터인가 느닷없이 이어지는 노랫소리  "아빠, 나도 야영하고 싶어요!"

 슬슬 귀에 딱지를 만들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리 급작스런 일도 아니긴 하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까지 그 주가의 상승곡선이 수그러들 줄 모르는 프로그램이 있다. 일명 야생버라이어티로 통하는 KBS '1박2일'을 가끔 같이 본 적이 있었다. 어른들에겐 출연자들이 진행하는, 비록 한물 갔지만 다이나믹하게 엮어가는 게임과 엉뚱하지만 나무랄데 없이 웃긴 개그적인 요소가 크게 다가왔지만 같이 보던 내 아이들에겐 그들이 밤마다 나뉘어서 잠을 자게 되는, 그것도 집이 아닌 텐트에서 한 밤을 지샌다는 것이 오히려 더 자극적으로 다가왔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야말로 '야생 잠자리'가 내 아이에겐 방학동안의 이슈 아닌 이슈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우리 부부도 내 아이에게 무언가 특별한 방학프로그램을 찾아 그리 배고프지 않은 하이에나처럼 서점, 인터넷,이웃집을 통해 넉넉히 살이 붙은 뼈다귀를 찾고 있기는 했다.

그러던 중 우리 부부의 마음을 번뜩인 한 권의 책이 바로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를 그려낸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이었다. 

 

오감으로 관찰하기, 머리 속의 감각을 형상화 하기, 패턴의 분해와 조립을 통한 패턴 훈련,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모형만들기, 놀이 등 활용할 수 있는 생각의 자원들이 그 안에 가득했다. 그리고 이들 자원의 활용은 그다지 어려운 숙제가 아니었다. 아빠는 창의적인 사고력 향상 알고리즘인 트리즈(TRIZ) 전문가였고 트리즈의 40가지 발명원리를 이용하면 새롭고 유용한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이용할 수 있었으니까. 남한강 만들기 놀이를 해보기로 하였고 그 일은 즐거운 상상이었지만 내심 아이들의 반응이 걱정되었다.

 

먼저 황토돗배를 태워주었다. 배를 타기 전에 아이에게 우리의 계획을 일러주는 것을 잊지않았다.

"우리는 텐트 앞에 남한강을 만들 거예요. 그러니 배를 타면 남한강을 잘 관찰해서 생각주머니에 담아 오면 좋겠어요."

아이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30여 분 동안 배 위에서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강과 주변을 관찰하는 모습을 엿보였다.

 

유람을 마치고 텐트로 돌아온 가족들에게 아빠는 일명 "남한강 만들기" 프로젝트 2단계 프로그램을 설명하였다. 나뭇잎과 풀잎을 찾아오는데 제일 큰 잎을 가져오는 사람과 제일 잘생긴 잎을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기로 하였다. 온가족이 유원지 이곳 저곳을 즐겁게 뛰어다니며 재료를 모아오는 모습은 강호동의 '1박2일'을 연상케 하였다.

 

나뭇잎 모으기가 끝나자 드디어 아이는 여동생과 함께 남한강을 만들기 시작했다. 푸른 잎들로 강줄기를 만들고 모래와 자갈로 강둑을 만들더니 종이접기로 배를 접어서 얹었다. 그때까지는 그냥 모래놀이 즐기듯 흥겨운 표정이었는데 어느 순간 큰 아이가 상기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며 "물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배가 떠다녀요" 하더니 물을 퍼나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여름날인데도 땀을 흘리며 물병에 물을 담아 나르는 일이 아이에겐 마냥 즐거웠나 보다. 그러더니 "물줄기가 필요해"라며 모래로 만든 강둑을 열고 물길을 만들고 그리로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며 마냥 깔깔거렸다.

 

이런, 남한강 옆에 호수를 만들었네. 아이들의 상상력은 놀랍다. 호수를 만들더니 아이스박스에서 얼음덩이를 꺼내와서는 호수중간에 얼음섬을 만들고 그 얼음섬이 녹아서 강물이 된다며 쉬지않고 물을 퍼다 붓는데 마치 인류를 창조하기라도 하듯 진지하면서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끊임없이 깔깔댔다.

 

대성공이었다. 13가지 생각도구와 TRIZ를 조합한 남한강 만들기 놀이는 내 아이에게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되었다. 창의성이라는 것이 멀리 있고 공부하기 어려운 무엇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와 그것을 자원으로 약간의 아이디어를 찾으면 얼마든지 즐거움과 함께 아이의 창의성을 발현시켜 준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태그:#아이, #창의력, #놀이, #생각, #트리즈(TR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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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을 발현하고 향상시킬 방법은 없을까? TRIZ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다. 누구나 학습과 훈련을 통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유용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서 함께 나누는 공간이 있다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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