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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로서의 제주도

결혼 이후 처음 맞는 여름휴가.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우리 부부가 떠올린 곳은 다름 아닌 제주도였다. 주말까지 포함해서 4박 5일의 결코 길지 않은 휴가 기간, 임신을 한 터라 장기간 비행이 불가능한 아내, 결혼 첫 해라 넉넉지 못한 은행 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론가 멀리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욕구. 제주도는 이 모든 한계와 조건을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몫
▲ 임신한 아내와 함께 하는 여행 남편의 몫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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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내나 나나 제주도가 처음은 아니었다. 아내는 결혼하기 전 친구와 제주도를 일주한 적도 있었고, 혼자서 한라산 등산을 포함해서 제주에서만 10일 정도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고 했다. 나의 경우는 고등학생 때 식구들과 함께 제주도를 다녀온 경우가 다인데, 가이드를 끼고 여행을 다닌 터라 책에서만 보던 제주도 관광명소를 돌아다닌 기억만이 전부였다. 남들 다 가보는 정방폭포에, 성산 일출봉, 민속 박물관, 식물원, 그리고 제주도 조랑말 승마까지.

국내소득 신장과 해외여행 자율화 이후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 큰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조금 먼 국내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제주도. 과거 신혼여행지의 일 순위 제주도를 기억한다면 현재 이와 같은 위상은 참으로 큰 변화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제주도민들은 이와 같은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항상 뭍을 동경했기에, 그리고 섬사람에 대한 차별이 서러웠기에, 뭍과 섬이 가까워졌다는 점에서 반기고 있을까? 아님 오히려 그와 같은 교섭이 자신들의 전통을 해친다고 경계하고 있을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은 괜한 걱정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제주도 사람들은 제주도 대체라 할 수 있는 동남아 여행 등이 싸지면서 경제적 수입이 줄어든다고 울상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최근에는 경기 악화로 인해 국내 관광객들이 제주도로 몰리면서 관광수입이 꽤 늘었을 테지만 이와 같은 호황이 계속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세태 아니던가.

야자수 가로수에 쪽빛 바다
▲ 제주도에 대한 환상 야자수 가로수에 쪽빛 바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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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여행지로 제주도를 결정한 뒤 비행기 등을 예약하고 휴가날짜만을 바라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설렘. 개인적으로 제주도는 항상 가고 싶었던 곳으로 기억된다. 그곳은 친한 친구와 배를 타고 가서 자전거 일주를 하며 우애를 돈독히 쌓고 싶었던 공간이며, 혼자 돌아다니며 4·3 항쟁 등과 같은 현대사의 아픔을 되새겨보고 싶던 공간이기도 했다. 물론 이번 여행에서는 임신한 아내와 그와 같은 꿈을 실현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제주도를 간다지 않는가.

가자 제주도! 그곳에 가면 내가 잊고 있던 꿈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요, 일상에 찌는 나를 치유할 그 무엇이 있을 지도 모른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 보다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깡깡 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봐요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하늘 아래로

제주도행 비행기

낯선 색깔
▲ 우리가 탑승할 저가 항공 낯선 색깔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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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가기에 앞서 장모님 생신이라 찾아간 지리산 및 산청의 처가. 그곳에서 이틀을 보낸 우리는 일요일 오후 김해공항으로 출발했다. 다행히 일주일 내내 내리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쳐 있었고, 쨍쨍한 여름 햇살이 우리의 여행을 축복해주고 있었다. 제발 일기예보가 틀려 여행 내내 날씨가 이와 같기를.

창밖으로 화물차가 많아진다 싶더니 곧 김해공항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해'라는 두 글자를 보고 있으려니 또 갑자기 울컥한다. 여기서 얼마 가지 않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무덤이 있을 텐데, 과연 어떻게 보전되고 있는지. 아마도 김해는 이후로도 계속 나 같은 사람들의 정치적 노스탤지어로 남아있을 것이다.

유니폼만으로 발상의 전환이 시작될까
▲ 그들의 유니폼 유니폼만으로 발상의 전환이 시작될까
ⓒ 진에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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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도착한 김해공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가 이용한 항공사는 진에어였는데 한창 인구에 회자되던 저가항공사 중 한군데로서 대한항공의 자회사였다. 아마도 저가항공사들이 돌풍을 일으키자 대기업 대한항공이 자회사라는 편법 아닌 편법을 이용하여 저가항공이라는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리라.

대기업의 소규모 시장 진출. 자연스레 떠오르는 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SSM 즉, 대기업의 슈퍼마켓 진출이었다. 상도고 뭐고 간에 돈이 된다고 하면 무조건 뛰어들고 보는 대자본의 탐욕과 그들과 손잡고 자유경쟁, 기회평등을 운운하며 소규모 자본의 생존권을 등한시하는 정부. 그 우울한 자화상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싸다는 이유만으로 소비자의 권리를 되새기며 대기업을 이용하는 우리의 모습과 함께.

어른이 어린아이 과자 뺏어먹을 때 느끼는 낯 뜨거움 때문일까? 비행기 내부의 홍보 책자에는 진에어의 장점이 과하도록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프로펠러 소형기를 사용하는 다른 저가 항공과 달리 안전하고, 젊고 유연하며(보라 유니폼도 청바지에 T셔츠란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순간 드는 의문. 어차피 대한항공의 제주 노선과 다를 바가 없다면, 왜 대한항공의 제주노선은 진에어의 가격보다 훨씬 비싼 것인지.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기껏해야 캐주얼과 유니폼의 차이밖에 없는 것 같은데 대한항공이 진에어보다 비싼 건 결국 브랜드명의 차이던가. 도대체 대한항공은 얼마나 많은 이문을 남기고 있는지.

여기는 제주도

비가 오지 않기를
▲ 부산-제주 하늘 비가 오지 않기를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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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쯤 지났을까? 움직인 지 얼마나 됐다고 기내 안내방송은 비행기가 곧 착륙할 것임을 알렸다. 진짜 가깝긴 가깝구나. 창밖으로 보이는 제주. 비록 도시지만 제주의 푸른 초원을 기대하고 있던 난 뜨악하고 말았다. 제주 곳곳에 왜 저리도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지. 제주도 역시 땅이 부족해서 아파트를 올렸을까? 몇 백 년이 지나 우리 후손들은 한국의 주거형태를 아파트로 배울지도 모를 일이다.

순간 스쳐지나가는 불안한 생각. 이거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제주도도 한반도의 일부분인 이상, 뭍에서 횡횡하는 욕망이 모두 투영되어 있을 텐데, 나는 이곳을 너무 청정지역으로 보고만 있던 것이 아닐까.

제주도도 한국령이다
▲ 제주의 아파트 제주도도 한국령이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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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려 우리는 승용차를 렌트하기 위해 공항을 배회해야만 했다. 여행 전 들은 바로는 제주공항에 내리면 곧바로 삐끼들이 몰려든다 했건만, 웬걸 눈에 띄는 건 금호 렌터카와 제주도렌터카연합 카운터밖에 없었고 이야기인즉 성수기라 차도 거의 없다고 했다. 예약도 않고 차를 구했으면 운이 좋은 편이라나.

그래도 다행히 렌트할 차는 몇 대 남아있었고, 우리는 대기업 보다는 중소형의 로컬 업체가 모인 곳을 이용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제주도렌터카연합회에서 어렵사리 차를 렌트한 뒤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일요일 저녁이기 때문인지 제주시는 생각보다 많은 차로 시끄러웠고, 덕분에 저 멀리 바다 너머로 지는 해를 관조할 여유는 없었다.

자, 이제 본격적인 제주 여행. 우리는 첫 번째 목적지로 아내가 블로그를 통해 찾아 놓은 제주시 어느 맛집을 선택했고, 그곳에서 허기진 배를 채운 뒤, 그곳 주인아저씨가 소개해준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내일은 한라산을 오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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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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