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공영방송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땅의 민주화와 인권, 평화를 위해 한평생을 바쳐온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며 민주주의 퇴행과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자는 자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비등한 이때 반 민주적 공영방송 장악음모가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다양한 사회계층 의견을 대변하는 공공성과 보편주의, 다원주의 등 공영방송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 모두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선거철에 집중됐던 형태와는 또 다른 양상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방송 장악음모는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공영방송 위기론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아직도 방송을 '권력의 시녀',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무차별적 시도가 우습기도 하지만 만일 하나 '현실화 됐다'고 가정하면 섬뜩하기 짝이 없다. 미디어법 통과로 어느 정도 예견됐던 바다. 그러나 KBS 이사뿐 아니라 MBC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진 장악, YTN 인사개입 등 이 정부에 의한 방송장악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어떤 일, 얼마나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위함일까.

 

보도가 마음에 안 들면 좌파방송 운운하며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을 파면·해임하거나 수사기관을 동원해 제거하고 있다. 또 과거 많은 희생으로 어렵게 일군 방송의 독립성과 민주적 개혁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다. 이 때문에 각 방송사 노동조합 등 종사자들의 저항이 전례 없이 강화되고 확산되는 추세다.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사례별로 원인을 짚어보자.  

 

[#장면 하나] 독립성 확보에 실패한 방송통신위원회... 결과는 '참담'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사에 첫발을 내디뎌 <동아일보>에서 오랜 기자생활과 차장, 부국장 등을 지낸 그는 이명박 정권의 파워엘리트 중 한 사람이다. 2007년 대선기간에 이명박 후보의 핵심참모이자 멘토인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 역할을 했다. 당선 후에는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도 맡았다.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하는 등 숱한 자격 논란 속에서도 대통령은 그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초대 위원장에 임명했다. 그가 바로 최시중 방통위원장이다. '선거에서 그 정도의 공을 세웠으니 그런 자리 하나쯤이야 내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방송이 국가와 사회적 이익집단으로부터 불편 부당성을 유지해야 하는 동시에 국가와 사적 기업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사회계층의 의견을 대변하는 공공영역, 즉 '공공의 재산'으로 규정돼 온 것은 전파의 희소성 때문이다. 정치적 독립 보장이 전제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방송과 통신의 융합현상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하며, 방송과 통신이 균형 있게 발전하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 등을 설립목적으로 하는 방통위가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가 야기될까. 결과는 참담하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 끔찍한 상황을 경험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목적

방송통신위원회는 디지털기술 등의 발전으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화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나아가 국민들이 보다 풍요로운 방송통신융합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구로 출범하였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설립된 방송통신위원회는 (舊)방송위원회의 방송 정책 및 규제 기능과 (舊)정보통신부의 통신서비스 정책과 규제 기능을 총괄하고 있으며, 방송과 통신의 융합현상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하며, 방송과 통신이 균형 있게 발전하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 등을 설립목적으로 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담당하는 주요 기능은 방송통신 융합정책의 수립과 융합서비스의 활성화 및 관련 기술 개발, 전파에 관한 정책 수립 및 전파자원의 관리, 방송통신정책의 수립과 방송통신 시장의 경쟁 촉진, 방송통신망의 고도화와 방송통신의 역기능 방지, 방송통신 이용자 보호정책의 수립과 방송통신 사업자의 불공정행위 조사 및 분쟁 조정 등이 있다.

그런데 아직도 방통위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설립목적과 취지를 꼼꼼히 살펴보자. 방통위 설립목적과 주요 기능을 살펴보면 독립성 확보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찾을 수 있다.

 

얼핏 보면 여느 행정기구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정권에, 그것도 최고권력에 귀속될 수 있음을 헤아릴 수 있다. 방송의 정책과 규제기능을 총괄하는 기구가 대통령 직속 합의제 기구로 출발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독립성 담보가 최우선적으로 전제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언론·시민단체들이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직업윤리와 도덕성, 중립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자진 사퇴를 권고한 이유도 바로 이런 우려와 맥락이 작용한 때문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문화연대,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등은 최 위원장 임명을 누구보다 강력히 반대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장면 둘] "MB 지지율 하락, 정연주 때문?"... '정' 죽이기 '총동원' 

 

2008년 5월. 취임 100일을 앞두고 MB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급락했다. 30%도 안 되는 수준을 보이며 하강곡선을 그렸다. 그러자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이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은 한국방송공사(KBS)의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고 내뱉은 발언이 불쏘시개가 됐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겼다는 논란이 다시 도마에 오른 것.

 

<한겨레>는 5월 17일 '최시중,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정연주 때문"'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김금수 KBS 이사장을 만나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은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언론계 안팎에 파문이 일고 있다. 복수의 언론단체 간부들은 16일 "최 위원장이 지난 12일 점심 때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김 이사장과 만나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이 방송 때문이며, 그 원인 중 하나가 조기 사퇴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논평을 내어 "최시중씨는 아직도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라고 생각하는 왜곡된 방송관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며 최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KBS기자·경영·피디협회도 이날 공동 성명을 내어 "정권의 실세가 나서 한국방송 보도에 불만을 표시하고 사장의 진퇴를 문제 삼았다는 점은 한국방송을 언제라도 장악이 가능한 권력의 도구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합민주당과 창조한국당 등 야당도 논평을 내어 "정치 중립 의지를 저버린 최 위원장에 대해 국회가 탄핵 절차를 밟는 것이 법질서 확립을 위한 매우 시급한 조처"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당과 보수언론은 정 사장 사퇴 여론에 불을 지폈고, 보수단체는 사정기관이 나서도록 길을 닦았다. 한나라당과 보수신문들이 정 사장을 '퇴진 0순위 인물'로 거론하며 사퇴를 종용하던 2008년 5월 15일,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부실경영과 편파방송 등을 이유로 KBS를 상대로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엿새만에 특별감사에 착수했고, 석 달만에 정 사장 해임을 정부에 권고했다. '법인세 환급소송 졸속·부당처리에 따른 배임 혐의'는 KBS 이사회가 정 사장 해임 제청의 주요 근거로 삼은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누적적자·방만 경영 등과 함께 주요 해임 논거로 활용됐다.

 

6월엔 국세청이 나섰다. KBS사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던 외주제작사 7곳을 세무조사하며 정 사장을 압박했다. 검찰도 8월 정 사장을 출국금지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해임안 서명 이튿날인 8월 12일엔 그를 체포했고, 8일 뒤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당장 법원 중재안 수용이 죄가 되는 '상식에 어긋나는 해임용 죄명'이란 비판이 분출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정 전 사장이 연임을 위해 세금환급소송을 서둘러 포기하고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임으로써 KBS에 1800억원대의 손실을 입혔다"며 끝내 기소했다. 이명박 정권이 방송장악을 위한 첫 제거 목표를 '정연주'로 정하고 이를 위해 검찰, 감사원,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국가정보원까지 총동원했다는 따가운 비판이 제기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정연주 죽이기'는 끈질기게 진행됐다.

 

[#장면 셋] 정연주 무죄 선고... '방송장악=정치적 행위' 들통

 

2009년 8월 18일. 한국 정치사의 거목,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던 날 온 국민이 깊은 슬픔과 애통함에 빠져 있는 사이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 전 사장이) 경영적자로 말미암은 퇴진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1심에서 승소한 조세소송이 상급심에서도 승소할 가능성이 큼에도 KBS의 이익에 반하는 조정을 강행했다"는 검찰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법원이 유불리에 대한 관여를 해 합의한 조정 결과를 일방적 양보로 보기 어렵고, 항소심에서의 승소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우며, 국세청의 세금 재부과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 조정을 시도·수용한 것을 배임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등 조정 수용 과정에 비춰 볼 때 독단적 행위라거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 재판부는 첨언이란 형식을 통해 이 사건을 참여정부와 현 정부가 관련된 정치적 사건으로 보는 견해가 있음을 알고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판결을 내림에 있어 정치적 판단 없이 법리적으로만 판단했음을 강조했다. 검찰의 기소가 법리적 근거를 결여한 정치적 행위였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법원은 이에 앞서 신태섭 전 KBS 이사 해임의 부당성을 확인하는 판결도 했다. 신 전 이사의 판결과 정 전 사장에 대한 해임에서 기소에 이르는 전 과정이 KBS를 장악하려는 정권의 의지에 따라 무리하게 이뤄진 것임을 법원이 확인해 준 셈이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정작 전파의 주인인 국민들은 그저 바라만 보아야 했다.

 

[#장면 넷] 방통위, KBS 새 이사진 구성... 이사장 또 '친MB'?

 

일주일 후인 8월 26일. 방통위가 KBS의 새 이사진을 구성했다. 새 이사진은 오는 11월로 임기가 만료되는 이병순 현 사장의 유임 여부와 함께 KBS 수신료 인상문제, KBS2의 수익구조 개편문제를 비롯한 굵직한 현안을 처리하게 된다. 중대한 임무를 안고 출범했다. 그런데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과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남승자 전 KBS 해설위원 등 11명 가운데 7명을 정부여당 추천인사로 채운 데 대해 또 다시 비판의 소리가 거세다.

 

이에 대해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공공성쟁취를 위한 사회행동'(미디어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어 "방통위는 지난 MBC 방문진 이사에 이어 이번 KBS 이사 선임도 공개적이고 투명한, 납득할 만한 어떤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선임된 KBS 이사들이 공영방송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전문성과 대표성은 갖추었는지, 공영방송의 미래 비전을 제시했는지 등을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행동은 "방통위원들이 어떤 기준과 원칙으로 검증 과정을 거쳐 이사를 선임했는지도 알 수 없다"며 "방통위원들만이 여야 정치적 분배를 고려해 뚝딱뚝딱 해치웠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지난 1년간의 KBS에 대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질 높은 공적 서비스를 수행해야 할 한국의 공영방송은 이명박 정권의 무차별 정치공작으로 인해 풍비박산 났다"며 "불과 1년만에 신뢰도와 영향력 모두 크게 추락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행동은 또한 "새로 선임된 KBS 이사는 KBS가 다시 시민의 신뢰를 받는 공영방송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1년간 이병순 사장 체제가 저지른 과오를 평가하고,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되는 명실상부한 KBS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이 예리하게 짚었다. 27일자 2면 'KBS 새 이사진 '과반이 친여'란 제목의 기사에서 "여당 추천 이사 비율은 8명에서 7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친여 인사들이 의결권을 장악하는 구조가 됐다"며 "특히 전경련 부회장 등 재계를 오랜 기간 대변해 온 손 전 총장은 이 대통령 당선자 시절 정책자문위원을 거쳐 현정부 출범 후 총리, 인수위원장, KBS 사장 등 주요직책 인선 때마다 이름이 거론되어 온 대표적인 친MB 인사로 통한다"고 평가했다.

 

[#장면 다섯] MBC 노조, "점령군의 칼부림이 시작됐다"

 

2009년 7월 31일.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새 이사진이 구성됐다. 방문진 이사 임명권을 갖고 있는 방통위는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 ▲최홍재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차기환 변호사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남찬순 전 관훈클럽 총무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 ▲고진 전 목포MBC 사장 ▲정상모 전 MBC 해설위원 ▲한상혁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들은 8월 10일 이사회를 열어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김우룡 이사를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이사회 구성을 두고 MBC노조와 민언련 등에서는 상당수 이사들이 정권 코드에 맞춰 MBC를 좌파방송으로 매도하는 데 앞장서온 인물이며 사전에 내정해 놓고 밀실에서 낙하산식으로 결정됐다는 점 등을 들어 임명 철회와 자진 사퇴를 주장해왔다.

 

이들은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명박 정권 등장 이래 문화방송 비판을 주업으로 삼아온 공정언론시민연대(공언련)의 고문인 김우룡씨와 사무처장인 최홍재씨를 함께 이사로 선임한 것"이라며 "김 이사는 한나라당 추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미발위의 파행을 야기해 방송법 등 언론관련법의 날치기 통과에 길을 열어주었고 지난해 뉴라이트전국연합 주최 토론회에서 문화방송에 대한 구체적인 민영화 방안까지 제시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어떤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문화방송을 장악해 민영화를 밀어붙이겠다는 정권의 뜻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는 비판이 거셌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이근행)는 '뉴라이트가 방문진을 점령했다'는 성명을 통해 "정권은 한나라당의 미디어악법을 적극 옹호하며 총대를 멨던 김우룡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여당 측 위원장을 기어이 점령군의 수장삼아 MBC 장악에 나섰다"며 "최악의 예상대로 현 정권의 탄생과 정책 홍보를 위해 나팔수 역할을 자처하고, 재벌과 조중동, 극우 보수 세력의 목소리를 높여온 인물도 다수 포함됐다"고 비난했다.

 

성명은 이어 "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같은 동아일보 출신 인사도 선임됐다"며 "이로써 며칠 전 이민웅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 공동대표가 폭로한 대로 방문진 이사 공모는 사기극이었고, 정권은 공영방송 MBC를 장악하겠다는 시나리오를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해왔음을 스스로 입증했다"고 비판했다.

 

그런 후 한 달도 채 안 돼 방문진은 업무보고를 마친 뒤 엄기영 MBC 사장의 해임을 추진하면서 MBC 장악에 나선다는 얘기가 안팎에서 나돌자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26일 다시 강도 높은 비난성명을 냈다. '방문진의 오판은 파국을 부를 것이다'란 성명에서 이들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의 시작"이라며 "지난 20년 방송민주화 투쟁의 성과를 유린하려는 정권의 음모에 맞서 한치의 거리낌없이 떨쳐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또한 "청와대의 시나리오대로,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가 현 엄기영 사장을 전격해임하고, 노골적으로 MBC 장악에 나선다는 소문을 접하고 있다"며 "청와대로부터 차기 사장을 낙점받기 위한 각축전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실명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자회사 K씨, 계열사 K씨, 전직 보도간부 K씨 등이 그 주인공들"이라고 제시했다. MBC 노조는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보내고, 말로는 '화합과 통합이 시대정신'이라 떠들면서도 막후에서 정권이 진행하고 있는 이와 같은 이중적 행태는 가증스런 실례일 뿐"이라며 "음모는 다만 시간의 문제일 뿐 미구(未久)에 그 모습을 백일하에 드러낼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노조는 "땀 흘려 공영방송 MBC를 일구어 온 구성원들을 편협한 이념적 사고로 재단해 댔고, 정치적 필요에 따라 '노영'이니 '좌빨'이니 하며 근거 없는 매도를 서슴지 않았다"며 "정치적 미션에 따라 MBC를 손보고야 말겠다는 적의로만 가득 차, 노사 모두를 불문하고 마치 범죄집단 다루듯 광분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체 어디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무엇을 바래서 'MBC 죽이기'에 골몰하는가"라며 "섣부른 오판으로 각자의 삶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기지 말기를,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초래하지 말기를 진정으로 당부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앞선 지난 19일에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점령군의 칼부림이 시작됐다'는 제목의 '비상대책위 특보'를 발표해 시선을 끌었다. 이들은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8기 방문진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점령군이 아니라 국민군, 지원군이라며 말장난을 일삼더니, 역시 이들의 정체는 여과되지 않은 정권의 속내를 그대로 내보이는, 그것도 방송에 대한 이해나 철학은 저급하기 짝이 없는 질 낮은 점령군이었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특히 "노사관계를 이간질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조합에 대한 탄압 계획, 'PD 수첩' 등 MBC 대표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평소 자신들의 적대감이 유감없이 드러난다"면서 "정권에 대한 충성 경쟁에 사로잡혀 누가 MBC에 먼저 정복 깃발을 꽂는가를 시험하는 듯한 이들의 질문을 살펴보면 그 유치함과 상식 없음에 고개가 절로 흔들어진다"고 성토했다.

 

방통위, 정권 아닌 국민 위해 존재해야 

 

 

지상파뿐만 아니라 케이블TV, 위성방송과 통신까지 관장하는 방통위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정책결정의 합법성을 얻기 위해서는 의사결정권자인 방송위원들과 수장인 위원장의 방송통신에 대한 통찰력과 전문적 식견 외에 독립성이 중요한 전제조건이라는 것은 두말한 여지가 없다.

 

공공재인 주파수 스펙트럼의 실질적인 소유자인 국민들의 방송 접근권, 정보 접근권, 방송으로 인한 피해구제가 고루 작동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방통위는 방송사 내부 조직체나 기업들, 더 나아가 정치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수용자인 국민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할 때 진정한 공공성을 보장하고 확장하는 일들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수준은 20-3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폐쇄적 정책결정 과정과 전문성의 부재가 권력의 눈치에서 비롯되며, 이는 다시 거센 저항과 분노를 불러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1980년대 언론통폐합이, 혹은 1970년대 유신시절이 그리운 모양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수준은 변해도 한참 변했다. 지난한 방송장악 막장드라마가 벌써 1년 넘게 진행되고 있지만 수용자들은 큰 흔들림이 없다. 국민의 의식수준은 그들보다 20-30년을 앞서고 있다. 이제라도 '방송장악'이라는 허망한 꿈을 버려야 하는 이유다.


#공영방송#방문진#최시중#방통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