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벼룩 가슴보다 좁은 속을 지니고,

이익을 위한 것에는 초스피드 잔머리를 지닌 그들이

해외의 눈을 고려하여 어쩔 수 없이 떠밀려 할 수밖에 없었던

그야말로 '말로만' 국장이 치러지긴 했다.

전통을 무시한 6일장에, 노제도 못 치르게 하고,

'극진한 예우'라는 허사 속에 숨겨진

불안하고 한심한 각종 행태들에 새삼 속이 터졌지만,

그나마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마지막을 보내드린 것 같아

마음의 위안이 되기는 한다.

 

마지막을 함께 해드리고 싶었지만,

국회 영결식에는 일반 시민들은 참여를 못한다고 하여

서울광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요 며칠 계속 시간이 안되어 분향을 못갔기에

늦었지만 직접 가서 추모를 드려야 할 것 같았고,

마음을 함께 하는 국민들과 그 자리를 나누고 싶었다.

그들이 노제를 막아도 우리의 마음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가신 두 분의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 옷을 차려 입고

우리 세 가족이라도 나가기로 했다.

 

사직동에서부터 주욱 걸어서 시청까지 갔다.

광화문광장을 지나 서울광장까지 가는 길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김 전 대통령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부의 치졸함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차단선'인지

보도보다도 훨씬 안 쪽으로 그 긴 동선을 모두 테이핑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고인을 보고 싶어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고 적힌 어설픈 테이프로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보다.

 

곳곳의 경찰들도 어떻게 많이들 겹겹히 진을 치고 있는지

그냥 길 가던 사람도 웬만하면 고개를 내밀어 보고 싶을텐데,

그 내민 고개를 한 대 얻어맞을 것만 같아

움추러들게 하려는 내심이 그대로 들여다 보인다.

그동안의 정권이 어떻게든 국민이 그 분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갖은 방법을 다 써서 막으려 했던 것과 같이

마지막까지 그 분과 국민을 '격리'시키지 못해

안달이 난 것과도 같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길바닥에 테이핑된 선 밑으로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Goodbye Mr. Sunshine' '대한민국 초대 민주대통령'

이라고 써진 종이를 손에 손에 들었지만,

길바닥에 그렇게 앉아 있는 모양새가 서글프기도 하다.

이것이 가는 분에 대한 '예우'란 말인가.

 

 

서울광장은 이미 사람들로 발 딛을 틈이 없이 붐볐다.

그러나 이곳 역시 경찰들도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차도와 광장은 분리된 '벽'과도 같았다.

지나가는 운구차량을 보는 것도 경찰의 벽에 가려져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무엇이 그리 겁나는지,

어떻게든 국민들을 막기 위한 모습에

분노를 넘어서 처량함까지 느껴진다.

 

그러한 광장을 김대중 대통령이 조용히 내려보고 계셨다.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 걸린 추모 현수막을 보고 있노라니

(세계적으로도 그리 당연한 일은 아니라는) 이것을 재임시에 설립하여,

그동안 무시되었고 외면당한 우리나라의 인권 회복을 위해

애썼던 그 공적이 새삼 떠오른다.

오는 길에 보았던 태평로 거리의 조선-동아일보 건물의

대형 전광판에서는 '국장'이건 뭐건 광고물만 버젓이 상영되고 있었고,

그 흔한 추모 현수막 하나 걸려져 있지 않았다.

그나마 서울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이 곳에서 보이는 저 현수막이

우리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는 듯하다.

 

 

기존의 무대에는 공식 분향소가 자리잡고 있었고,

소공로쪽으로는 민주당에서 급하게 만든

'시민추모제'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신형원씨가 공식 추모곡을, 가수 김종환씨가 '바위섬'을 불렀으며,

김대통령과의 각별한 인연을 보여준 오정해씨가 만가를 불렀다.

서편제를 보신 후의 말씀을 농담이라 생각하고 흘려들었는데

진짜로 주례를 서주셨다는 말을 하며,

이 자리에서 자신이 노래를 부르게 될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가시는 길에 한 곡 드리게 되어 영광이라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사람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공식분향소에서는 분향이 계속되고 있었고,

시민추모제 무대 앞에도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전광판에서는 또 티비의 운구상황 생중계 영상이 흘러 나오느라,

온갖 소리들이 섞여서 혼잡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서울광장의 원래 분수대가 있던 쪽에도,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 가니 임시 연단이 단출하게 (냉정한 의미로 초라하게) 놓여져 있었고,

주변에 낯익은 얼굴들 - 문희상, 이미경, 김민석, 추미애 등 - 이 보인다.

이희호 여사가 잠시 들러서 국민들에게 감사 메시지를 전하신다더니,

아마 이 곳에서 하려고 준비하는 것 같았다.

 

▲ 시청광장에서의 이희호 여사의 감사의 말 운구차가 지나가던 시청광장 앞에 잠시 내려 조문 온 국민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이희호 여사의 짧은 동영상
ⓒ 홍희경

관련영상보기

 

 

국민들에게 감사 말씀을 직접 드리고 싶은

이희호 여사의 소망이 담긴 자리이긴 했지만,

지나가는 동선에서 멀리 떨어져 이동할 수 없어서

차도 가까운 곳에 급하게 만든 티가 역력했다.

사람 다니는 인도 위로 어설프게 자리를 잡고 놓아서

광장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은 목소리만 겨우 들을 수 있을 뿐,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는 그런 상태였다.

모두들 오로지 김 전 대통령 마지막 길을 보기 위해서

30도의 뜨거운 햇살 아래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어수선한 모습으로 그 분을 보내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짜증스럽기도 한 현실이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자리를 잘 잡았다고 해야 하나,

어렴풋하게나마 이희호 여사의 얼굴도 볼 수 있었고,

잘 들리시진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힘내세요!"라는 목소리도 전해드릴 수 있었다.

이희호 여사의 말씀은 짧았다.

하지만,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늘 김대통령이 사용하시던 표현으로 시작한 말씀들은,

힘없는 걸음걸이와 당장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얼굴에서도

또박또박 힘찬 목소리를 잃지 않아 그 분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런 길에서 '대통령께서는'이라는 표현 대신에

'제 남편은'이라고 말하는 겸손한 모습까지도.

 

무더운 날씨와 터질 듯한 사람들의 열기 속에서도

용케 낮잠을 자고 있던 아이도 이쯤 깨어나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희호 여사와 김 전 대통령이 드디어 길을 떠나셨지만

어수선하게 모여 있던 사람들도 맥이 풀리는 듯

발길을 쉽게 돌리지는 못했다.

 

평화를 사랑하신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을 보듯

여러가지 소망을 담은 비둘기 조형물 앞에서도 많이 머물렀고

이 곳 저 곳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들도 받아서 읽고 있었다.

채 분향을 못한 사람들은 마지막 분향에 나섰고,

우리도 그 행렬을 따라 오랜 시간 줄을 서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주노의 등은 땀이 흥건했고,

아직 멍한 아이도 힘겹게 아빠에게 안겨 있었다.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이여 민주주의여'라고 씌여진

노란 풍선을 많이들 손에 들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이 떠나실 때 하늘로 멀리 멀리 날려 보내기도 했는데,

어찌 천막 안에 풍선 하나가 홀로 매달려 있었다.

그 풍선의 모습이 어찌나 외로워 보이는지

마치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현실을 보는 듯만 같았다.

 

 

열한 줄로 놓여진 분향선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섰다.

한 줄에 20명 이상은 되었으니 200명은 족히 넘는 인원이

동시에 분향을 했지만 줄은 쉽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이미 여러번의 제사와 성묘로, 또 절에 가본 경험으로

넙죽 절하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도 덩달아 절하는 흉내를 내었다.

한참 기다리고 있다 보니 맥이 풀렸는지

막상 실제 절할 때는 안아달라 성화여서 힘들긴 했지만.

 

분향을 마치고 나와 방명록에 글을 적고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일기를 소중히 받아들고 나왔다.

시민단체들에서는 부스를 만들어 여러 행사들을 하고 있었다.

서울광장 조례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

대통령 다시 뽑기 모의 투표, 깃발에 소감 남기기 등과 함께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부스에 계신 분들이 아이가 예쁘다고 빵도 주시고 해서

감사히 받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시 관계자가 와서 6시까지 부스를 모두 철거해야 한다고 하여

여럿이 웅성대는 모습도 보였다. 

분향은 자정까지 할 수 있으나 부스 운영은 할 수 없다니,

여러 가지로 시민의 손발을 묶으려는 것이 아닌가.

 

 

긴 시간 폭염 아래 있었더니 아이도 우리도 좀 힘들어서

잠시 쉬면서 '노란 풍선'을 갖고 놀기도 했다.

아이에게 많은 이야기를 남겨줄 수는 없었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오늘이 어떤 날인지,

그리고 우리는 왜 이 곳에 왔는지를

지금 아이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먼 훗날 '역사'를 아이가 배울 때

오늘의 '기록'을 알려주려고 한다.

우리는 그 날, 그 곳에 있었노라고.

그리고 엄마 아빠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깨어 있는 시민으로,

살아가고 싶어 노력하고 있었노라고.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곳이 되길,

그리고 하늘에서 지켜보는 그 분들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되길,

아무 것도 아직 모르는

이 아이의 웃음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싶다.

 

그 분들은

우리를 떠나셨지만,

우리에게는

이 아이들이 있다.


태그:#김대중, #국장, #서울광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