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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운구행렬이 영결식장에 입장하고 있다.
 23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운구행렬이 영결식장에 입장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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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내 몸의 반쪽이 무너졌다"고 했던 그 나머지 반쪽도 이제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면서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이룬 위대한 업적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겠지만 또 다른 그의 위대함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정권 아래 가택연금 6년 반, 투옥 5년 반, 국외로 쫓겨난 것도 3차례에 모두 3년으로 인신 구속을 15년이나 겪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정권에 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핍박을 당한 것이다.

사람은 자기를 핍박한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는 데 권력과 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핍박하면 그 미움은 증오로 변할 수 있다. 이런 핍박과 고통을 당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자기를 핍박을 한 사람을 되갚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 가해진 남의 박해는 원한으로 오래 품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결코 나를 미화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같이 오랜 세월 동안 고통과 박해에 시달려 본 사람이라면 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김대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107쪽)

같은 책에서 그는 1992년 박정희 전 대통령 무덤에 갔을 때 든 심경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루어 둔 숙제를 푼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꼈습니다. 나를 가두고 사형선고를 한 80년대의 신군부 세력들에 대해서도 진상을 밝힐 것과 회개할 것을 촉구할 뿐, 그 밖의 어떤 보복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나쁜 정치'는 용서할 수 없으나, 그 '나쁜 정치'를 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그는 입으로만 용서한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용서를 직접 실천했다. 대통령 김대중이 이룬 업적 못지 않게 인간 김대중의 위대한 삶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 용서만이 참된 승리를 얻는 길이다. 여기서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김대중을 만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들보다 더 위대한 이유는 박정희와 전두환은 민주주의와 헌법을 유린했고, 김대중은 이에 저항했던 것만 아니라 그들을 진심으로 용서하는 마음까지 가졌다는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민주주의를 유린한 죄만 지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적을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대중은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쳤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 그들을 용서했다. 이 차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김대중에게 민주주의에서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용서에서도 패배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용서'를 자선이 아니라 의무라고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원리 하나를 얻을 수 있다. '용서'는 잘못을 저지른 자가 무조건 용서를 받았다거나,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런 주장에 대한 그 동안 그를 비판하고, 참아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독설을 내뱉은 자들이 '용서'와 '화해'를 통한 통합을 외친다. 철저한 자기 반성과 참회 없이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을 범하는 일이다.

자기가 범한 잘못에 대한 반성은 전혀 하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말했으니 우리 그냥 지난 일은 다 잊고 넘어가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용서는 가해자가 하는 일이 아니라 피해자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해자가 저지른 잘못을 용서와 화해라는 말로 넘어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를 경계한다.

"국민과 사회를 버리가 자기의 탐욕에만 몰두한 인간은 그 당대에 무엇이 되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더라도 역사의 법정에서는 반드시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역사의 정의입니다. 아니, 역사의 심판까지 기다릴 것이 없습니다. 당장 양심으로부터 심판을 받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고 가족과 친지로부터 저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김대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77쪽)

뼈저린 자기 반성과 용서를 구할 때, 피해자들이 그들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쓴 일기 중 2009년 1월 14일는 이렇게 썼다.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그 반성을 통해서 지금까지 자기 이익을 민주주의를 배반하고, 서민들을 고통으로 이끌었던 것을 되돌려 민주주의와 이웃을 위해 사는 것이 진정한 가치있는 삶이다.

그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민주주의와 가난한 자들을 잊지 않고 살았다. 2009년 1월 20일에는 이런 일기를 썼다.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고 했다.

이것이 애민하는 마음이다. 애민하는 마음 없이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용서와 화해, 통합을 부르짖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한 독설과 분노, 비난을 퍼부은 사람들은 용서를 빌기 전에 먼저 참회해야 한다. 그 참회는 용서로 이어진다. 용서받고 다시는 민주주의를 유린하거나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7일 일기)




태그:#김대중, #용서, #화해,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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