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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1일 6·15 선언 9돌 기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자.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살아나고 있고 빈부 격차가 사상 최악으로 심해졌다"며 "피맺힌 심정으로 말하는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할 때만 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렇게 빨리 가실지 몰랐다. 병중이 위급하다는 몇 차례 소식을 들었지만 일어나실 줄 알았다. 그러니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내가 그 분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내 주변을 살펴보았다. 몇몇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5대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였다. 이에 앞서 1992년 14대 대선에서 김영삼에게 패배한 날 부산 서면 한 포장마차에서 김대중을 열렬하게 지지했던 한 동무와 생애 처음으로 '술'을 엄청나게 마시면서 통곡했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 정말 하늘을 날아가는 마음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 정말 하늘을 날아가는 마음이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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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통곡하면서까지 술을 마셨던 기억을 뒤로 한지 5년 만에 '대통령 김대중'을 맞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내와 밤을 새워가면서 개표를 지켜보았고, 취임 기념 우표를 구입했었다. 이 우표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결혼기념사진첩에 넣어두었다.

또 다른 하나는 언론을 통해서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 언론은 한겨레 21이다. 한겨레 21 189호 <김대중 시대!>는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 집 서재에 꽂혀있다. 당시 기사 중에 한 부분이다.

"그가 결국 이겨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인동초'라는 자신의 별명에 걸맞게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네번째 도전 끝에 '부도옹'으로 우뚝 섰다."(한겨레21, <얼마나 긴 겨울이었던가>- 1998.01.01. 189호)

'김대중'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표현이었다. 1961년 강원도 인제 보궐 선거에서 당선하였지만 이틀 후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바람에 당선배지도 받지 못했고, 1971년 의문의 교통사고, 1973년 도쿄 납치사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겪어면서도 그는 '인동초' 삶을 살았다.

한겨레 21이 다룬 김대중 전 대통령 특집 기사들 표지사진. 김대중 대통령 당선 특집기사(189호, 1998.1.1 오른쪽 사진), 남북정상회담 기사(314호, 2000.6.29)
 한겨레 21이 다룬 김대중 전 대통령 특집 기사들 표지사진. 김대중 대통령 당선 특집기사(189호, 1998.1.1 오른쪽 사진), 남북정상회담 기사(314호, 2000.6.29)
ⓒ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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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견디는 풀이라는 '인동초' 꽃이 아니라 풀이라고 자신을 표현한 것이 더 마음을 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가녀린 인동초가 겨울을 버티는 힘을 머지 않아 봄이 온다는 믿음에 있다. 나 또한 겨울을 이기고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수없이 많은 겨울이었고 또 기난긴 겨울이었다."(<나의 길 나의 사상>)

이 겨울을 이겨내고 그는 대통령에 당선하였다. 그러나 그의 당선은 자신에게만 아니라 이 민족에게도 따뜻한 봄을 선물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이다. 남북정상회담 비화를 소개한 한겨레 21 134호 <절망을 뛰어넘은 환희!>라는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김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데리고 연단으로 나가 "우리 두 사람이 공동선언에 완전히 합의했습니다. 모두 축하해 주십시오"라며 김 국방위원장의 팔을 번쩍 들었다. 우렁찬 박수가 만찬장에 울려퍼졌다. 이때 시각이 밤 9시49분.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의 옥동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한겨레 21,<절말을 뛰어넘는 환희!>-2000.06.29. 314호)

또 다른 흔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책과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쓴 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 많은 책을 썼는데, 그 중 <김대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와 <나의 길 나의 사상>이라는 책이다.

김대중 대통령 저서<김대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와 <나의 사상 나의 길>.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김대중 죽이기>
 김대중 대통령 저서<김대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와 <나의 사상 나의 길>.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김대중 죽이기>
ⓒ 김영사, 한길사,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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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책은 1994년에 나왔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한 후 15년 만에 다시 읽었다.

<나의 길 나의 사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필생의 역사로 생각했던 통일에 관한 자기 생각을 대담과 연설을 통하여 드러낸 것을 묶었다. 우리 민족이 지닌 가장 큰 문제중 하나로 개혁에 대한 열의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미 이 때부터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고 강조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큰소리치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일제 때의 친일파들이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통탄하고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입니다. 아무리 관용을 했다 하더라도 가장 악질적인 자들만은 배제해야 민족정기가 서고 민주주의가 자리잡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발붙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개혁에 열의가 없음으로써 해서 그들이 계속 특권의 자리를 누릴 수 있도록 용납했기 때문입니다."(김대중 <나의 길 나의 사상>30쪽)

그리고 통일을 당위만 아니라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언급한다. 통일에 대한 열망뿐만 아니라 어떻게 통일을 이룰 것인지, 그리고 통일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하는 내용을 읽으면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통일은 당위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의 문제이며 절대필요의 문제입니다. 통일을 하지 앟으면 망하고, 통일을 하면 선진국가의 대열에 들면서 아-태 시대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김대중 <나의 길 나의 사상>63쪽)

<김대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죽는 순간까지 삶을 도전과 응전이라고 한다.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온 힘을 쏟아던 그의 삶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국민에 의한 정치라고 한다. 국민을 무시하는 정권은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4년이 지난 지금 정치권력이 새겨야 할 말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죽는 순간까지 도전과 응전의 숙명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도전에 끝까지 응전해 나가는 사람은 성공적으로 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김대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7쪽)

"현대 정치는 국민에 의한 정치입니다. 국민을 무시하고 앞질러 갈 수도 없고, 국민에게 뒤쳐저서 낙오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국민의 손을 잡고 같이 가야 합니다. 국민으로부터 고립된 뜀박질은 실패할 뜀박질입니다. 국민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달려간 역사상의 그 어떤 독재자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김대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172쪽)

강준만은 <김대중 죽이기>에서 "분명히 해두자. 당신은 그동안 언론이라는 창문을 통해 김대중을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 창문은 김대중의 전체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거이니와, 더러운 때와 의도적인 분탕질로 투명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이런 분탕질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어졌다. 지난 6월11일 6·15 선언 9돌 기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자.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살아나고 있고 빈부 격차가 사상 최악으로 심해졌다"며 "피맺힌 심정으로 말하는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자 보수 언론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조선일보는 6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 국가 원로다운 언행을> 사설에서 "올해 86세의 국가 원로인 김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반(反)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듣기에 민망하고 거북하다"고 했으며, 동아일보는 <'민주' 탈 쓰고 反민주 부추긴 DJ의 정권타도 선동> 사설에서 민주선거로 선출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것을 두고 "DJ는 민주의 가면을 쓴 반민주주의자임을 보여줬다"고 맹비난했었다. 불과 두 달 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본 일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그가 가고자 했던 그 길이 좋았고,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15대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와 한겨레 21 표지 사진, 책들은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태그:#김대중,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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