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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12월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대연정을 제안했으나, 한나라당과 국민 여론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12월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대연정을 제안했으나, 한나라당과 국민 여론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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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우리가 지역주의를 없애길 원한다면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제안한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대연정'을 떠올리게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전제로 "권력도 나누겠다"고 말했다.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이 대통령의 '선거구제 개편' 발언도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관측이 많아 더욱 눈길을 끈다. 특히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선거구제가 '중대선거구제'라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구상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왜 지역주의 극복 위해 반개혁적인 제도를 불러들여야 하나?"

한국 지역주의를 새롭게 분석한 <만들어진 현실>의 저자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한국 지역주의를 새롭게 분석한 <만들어진 현실>의 저자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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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역주의를 새롭게 분석한 <만들어진 현실>을 펴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이 대통령의 제안은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대연정이 그때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지금 이명박 정부를 통해 '사실상'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박 대표는 이런 평가를 내놓은 뒤 "노무현-이명박 진영 사이에 엄청난 차이와 적대적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를 이해하는 방법과 지역주의 해결책에 있어서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차이가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표는 "이 제도가 여야를 가로질러 주장되는 '제2의 대연정' 같은 사안이 되고 있는 것은 '지역주의 망국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는 담론의 권력효과 때문"이라며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반개혁적인 제도라도 불러 들여야만 할까?"라고 의문을 나타냈다.

박 대표는 지난 16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제안한 중대선구제를 "최악의 선거제도"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여야 정치권이 합의할 수 있는 선거제도는 중대선거구제이고 현행 소선거구제보다 중대선거구제가 낫다"고 '댓글 반론'을 폈다.

이에 박 대표는 "중대선거구제를 하면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거의 여야 합의처럼 되어 있고 주류 언론을 통해 우리 사회 지배담론으로 기능하고 있다"며 "하지만 문제를 그렇게 보는 것은 더 중대하고 큰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한다"고 재반박했다.

박 대표는 중대선거구제가 ▲ 제1당의 이득률을 높인다 ▲ 유권자의 표가 각 정당의 의석으로 전환되는 비례성을 악화시킨다 등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하면서 "9대 선거에서 12대 선거까지 중선구제를 했는데 집권당은 큰 이득을 얻었고 표의 불비례성도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표는 "현행 단순다수제 하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한다고 할 때 당장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처럼 보수의 기반이 강하고 권력구조의 중앙집권성이 높고, 소수 재벌이 경제를 지배하는 사회의 경우 상층의 이익과 열정을 대표하는 정당이 가장 큰 이득을 보게 된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반대로 2당 이하 정당의 수는 늘 수밖에 없다"며 "진입 문턱이 낮아진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특정지역에 기반을 둔 소수세력조차 정치세력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끝으로 박 대표는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는 보수편향적 사회구조, 중앙집권적 권력구조, 재벌중심적 경제구조가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라며 "따라서 지역주의를 개선하는 문제는 이런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개혁과제와 나란히 병행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리꾼들은 16일자 박 대표의 인터뷰 기사에 140여개의 댓글을 달고 ▲ 현실정치에서 지역주의의 힘은 강고하지 않느냐? ▲ 영남에서 한나라당을 제외한 다른 당이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느냐? ▲ 여야 정치권이 합의할 수는 중대선거구제가 현행 소선거구제보다 낫지 않느냐? ▲ 진보지식인들이 노무현의 지역주의 망국론을 비판하는 것은 '반노장사' 아니냐? ▲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이 뭐냐? 등의 질문을 던졌다.

이에 박 대표는 17일 저녁 누리꾼들이 던진 주요 질문을 대상으로 한 답변서를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다음은 그 답변서의 전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접근이 이명박 정부를 통해 제대로 수용되고 있어"

"우선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이 의미하는 바는,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대연정이 그때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지금 이명박 정부를 통해 '사실상'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노무현-이명박 진영 사이에 엄청난 차이와 적대적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를 이해하는 방법과 지역주의 해결책에 있어서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차이가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중대선거구제를 하면 한 정당이 의석을 100% 독점할 수 없게 되기에 영호남 지역에서 다른 정당도 의석을 갖게 된다며 이 때문에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서는 사표가 적어지고 작은 정당의 의석획득 가능성이 높아져서 좋다는 주장은 거의 여야 합의처럼 되어 있고, 주류 언론을 통해 유포되어 온 우리 사회 지배담론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 시각 안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를 그렇게 보는 것은, 더 중대하고 큰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한다.

우선 중대선거구제는 두 가지 불가피한 효과를 갖는다. 하나는 제1당의 이득률을 높인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유권자의 표가 각 정당의 의석으로 전환되는 것의 비례성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1990년 중반 이전까지 일본에서 자민당지배체제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제도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9대 선거에서 12대 선거까지는 중선거구제를 했는데, 그 결과 역시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유정회와 전국구 의석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지역구 선거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집권당은 중선거구제를 통해 큰 이득을 얻었고 표의 불비례성도 높게 나타났다.

어떤 선거제도가 좋으냐를 말할 때는 크게 두 가지 기준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경쟁의 공정성이고 다른 하나는 참여의 포괄성이다. 비례대표제는 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선호가 표출, 대표되는 것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참여의 포괄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다. 단순다수제는 상위 두 정당 간의 경쟁성을 높임으로써 정치엘리트의 순환을 빠르게 한다. 두 기준 모두를 어느 한 선거제도가 다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따라서 선거제도 선택에 있어 비례대표제를 할거냐 단순다수제를 할 거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다른 요소들은 그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소선거구제냐 중선거구제냐 하는 선거구 크기 문제는 비례대표제냐 단순다수제냐에 따라 다른 효과를 낳는다. 비례대표제에서는 선거구 크기를 늘려야 표와 의석 사이의 비례성이 높아지지만, 단순다수제에서는 정반대로 선거구크기를 줄일수록 비례성이 높아진다. 이는 레이파아트, 락소-타게페라 등 선거제도 관련된 고전적 조사 결과가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현행 단순다수제 하에서 중대선구제를 실시한다고 할 때 당장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처럼 보수의 기반이 강하고, 권력구조의 중앙집권성이 높고, 소수 재벌이 경제를 지배하는 사회의 경우 상층의 이익과 열정을 대표하는 정당이 가장 큰 이득을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2당 이하의 정당의 수는 늘 수밖에 없다. 진입 문턱이 낮아졌는데 이 기회를 활용하고자 하는 세력이 없을 수는 없다. 특정 지역에 기반을 갖는 소수세력조차 정치세력화를 시도할 것이다. 집권 제1당이 유리한 가운데 여야간 경쟁성은 낮아지고 그렇다고 비례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닌 것이다.

따라서 중대선거구제를 할 경우 영남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갖게 될 것인가, 호남에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군소 진보정당들에게도 1-2석의 기회가 있을까 등등 당장의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차적이고 지엽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제도를 택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도 이 제도가 여야를 가로질러 주장되는 '제2의 대연정'과 같은 사안이 되고 있는 것은 '지역주의 망국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는 담론의 권력 효과 때문이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반개혁적인 제도라도 불러 들여야만 할까? 정치학 교과서에 반하는 선거제도를 택해야 할 만큼 한국의 지역주의는 모든 것에 우선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문제일까? 지역주의가 뭐고 왜 만들어졌으며 누가 지역주의의 지속을 바라는지 등 기본적인 문제조차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채,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있어서는 안될 지역주의 때문으로' 환원해 이데올로기적으로 부정하는 것의 폐해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크게 보면,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는 보수편향적 사회구조, 중앙집권적 권력구조, 재벌중심적 경제구조가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주의를 개선하는 문제는 이런 우리사회의 보편적 개혁과제와 나란히 병행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해도 좋다거나, 한나라당에 권력을 넘기더라도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거나 하는 노무현 정부의 접근이 오늘 이명박 정부를 통해 제대로 수용되고 있다. 이미 꼬일 대로 꼬이고 잘못될 대로 잘못되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태그:#박상훈, #노무현, #지역주의, #중대선거구제,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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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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