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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 14일 오후 2시 30분]

 

1128억원의 세금 포탈, 227억원의 배임. 법원의 최종 형량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 당사자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67) 회장이다.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등의 혐의로 법원에 섰던 이 전 회장에게 법원은 14일 유죄를 선고했다. 10년 넘게 끌어온 삼성의 경영권 세습 논란에 대해 사법부가 불법성을 인정하고, 단죄를 내린 것으로 볼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1000억원이 넘는 세금을 포탈하고, 회사에 수백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끼친 이 전 회장에게 결국 '실형'보다는 기존 형량을 그대로 유지한 채 '집행유예'라는 선처를 베풀었다.

 

이는 수천만원의 횡령이나 배임에도 구속되는 일반 경제사범 등과 비춰볼 때 법적 형평성 논란뿐 아니라 재판부가 양형 기준을 삼성에게 편향되게 적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이번 판결을 두고,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또 다시 '사법부의 삼성 봐주기' 라는 반발이 거센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삼성특검 쪽에서 이번 선고에 대해 대법원에 '재상고'할 수도 있다. 법원이 이 전 회장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지만 회사 손해액 산정 과정에서의 논란이 여전한 만큼 대법원의 판단을 다시 받아볼수도 있다. 조준웅 특별검사도 "상고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팽팽한 긴장감 흘렀던 417호 대법정... 227억 배임 인정에 '아~'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고등법원 417호 대법정은 긴장감이 흘렀다. 법정 안팎은 삼성그룹 고위 임원과 직원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고, 많은 취재진으로 붐볐다. 국내 최대 재벌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건희 전 회장의 사실상 마지막으로 법정에 서는 장면을 지켜보기 위해서 였다.

 

서울고법 형사4부 김창석 부장판사가 이 전 회장을 비롯해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 등에 대해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자, 법정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이어 김 판사가 "피고인들은 삼성SDS의 신주인수권을 공정한 행사가격인 1만4230원보다 현저히 낮은 7150원에 이재용 등에게 인수토록 만들어 회사에 227억원의 손해를 가했다"고 밝히자, 삼성 임원들의 표정은 일순간 굳어졌다. 일부 인사들은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손해액이 50억원 이상으로 인정될 경우, 일반 형법이 아닌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특경가법)의 배임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럴경우 공소시효(10년)가 남아 있게 되고, 유죄뿐 아니라 법정 형량은 더 무거워지게 된다. 대체로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고, 이럴 경우 곧 이 전 회장의 법정구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전 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매각 부분은 무죄를 받았지만, 차명주식 거래를 통한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선 유죄를 인정받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 받았었다. 따라서 법원 주변에선 이날 파기환송심에서 50억이 넘는 배임액이 인정될 경우 실형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1000억원 넘는 조세포탈에 수백억 배임에도 집행유예?

 

하지만 김 판사가 "삼성SDS BW 발행당시 비상장법인의 공정한 신주인수권부 행사가격을 정하는 기준이 되는 법령이나 확립된 판례 등이 존재하지 않은 점, 또 행사가격을 적정가치보다 훨씬 낮게 정했다고 하더라도 위법성을 인식하기 어려웠다"고 말하면서, 재판정 분위기는 다시 반전됐다.

 

이어 재판부가 이 전 회장에 대해 최종적으로 기존 형량을 그대로 유지한 채 집행유예를 선고하자, 삼성 임원들에게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이 전 회장은 재판정에 들어올 때부터 선고가 이뤄지는 동안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선고 후, 그는 삼성 임직원에 둘러싸여 아무런 말 없이 법원을 빠져나갔다.

 

결국 법원은 이 전 회장 등이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불법적으로 물려주기 위해 삼성SDS BW를 헐값으로 발행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기존의 형량을 늘릴 만큼 죄가 중하지 않다고 판단한 셈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 SDS BW의 적정가격을 1만4230원으로 계산해, 배임액수를 정한 것은 지난 1심 재판부의 오류를 고쳐 일부나마 사법정의를 세운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하지만 재판부가 배임액수가 227억원으로 유죄를 인정해놓고도, 1심과 똑같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결국 재벌에 약한 사법부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 같아 심한 좌절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를 비롯해 참여연대와 민주주의법학연구연구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4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후 공동으로 논평을 내고 "사법부가 1000억원이 넘는 조세를 포탈하고, 227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회사와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 이 전 회장 등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등 이건희 전 회장 구하기에 여념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이어 "차라리 사법부를 상징하는 법의 여신에게서 저울을 빼앗고 돈을 쥐어주어라"면서 "삼성특검은 즉각 재상고해, 형량을 다시 선고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삼성SDS BW 헐값 발행사건은 1심에선 배임죄를 인정했지만 회사 손해액이 50억원에 미치지 못해, 공소시효가 지났다면서 면소 판결을 내렸다. 이어 작년 10월 항소심에선 무죄선고까지 내려졌지만, 대법원은 배임죄가 성립된다면서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또 이 전 회장과 함께 불구속 기소된 이학수(63) 전 부회장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 김인주(51) 전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태그:#삼성, #이건희, #이재용, #경영권 불법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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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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