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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를 올리기 위해 빚는 술은 정성을 다한다. 나 역시 제주(祭酒)를 빚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아껴두었던 녀석이 있다. 바로 시코쿠 카가와현(香川県)의 지자케 킨료노사토(金陵の鄕)이다. 킨료는 술도가명이고 사토는 고향의 뜻, 그래서 이 술은 킨료의 고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킨료의 근본이자 뿌리라고 할 수 있겠다. 당연히 토우지(술 장인)가 쏟을 수 있는 모든 정성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길러낸 술이라는 짐작을 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마디로 역작이라고 평해도 과한 칭송은 되지 않으리라. 헌데, 킨료의 홈페이지 상품 리스트에서는 이 술이 발견되지 않는다. 왜일까? 혹, 상품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연유는 분명치 않으나 주조호적미, 등급, 타입, 정미율 등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서 한 병 추천해달라고 하자 선뜻 녀석을 지목한다. 그 때 느꼈다. '녀석은 술이 아니라 그들의 자존심일 것이라고.

 

녀석과의 인연은 올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3박4일간의 시코쿠 미주, 미식 투어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들렀던 술도가중의 한 곳이 킨료이다. 사케 마니아에게 술도가 방문은 어떤 관광지 방문보다 즐거움이 따르는 일이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벅찬 즐거움의 순간을 만끽했던 자리였다. 후에 기회를 만들어서 시코쿠 술도가 88개소(四国酒蔵88箇所) 순례도 한번 해보리라 맘도 먹었으니까.

 

220여년의 전통과 기술, 정성을 담아서 술을 빚는 킨료(金綾)

 

킨료를 방문하는 그날은 비바람이 불었다. 고토히라야마(琴平山)에 산다는 전설의 괴물 텐구가 우리를 마중하기 위해 하늘을 날고 있어 일어난 조화는 아녔을까. 킨료는 신사 고토히라구(金刀比羅宮)로 올라가는 진입로에 위치해 있었다. 거리에는 토산품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킨료의 역사는 멀리 에도시대부터 시작된다. 킨료에 인수되기 전 니시노가(西野家)의 창업연대는 만지 원년(1658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간다. 합하면 자그마치 350년의 역사가 흐르고 있는 셈이다.

 

킨료는 유구한 세월동안 전통과 기술이 내림되면서 "곤피라자케"로 불리며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술도가이다. 곤피라상은 일본에서 바다의 항해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기려지고 있다.

 

이 신을 모시는 신사는 고토히라궁으로 년간 수백만명의 참배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곤피라자케로 불리우게 된 까닭은 고토히라야마에 위치한 고토히라구(金刀比羅宮)의 제주(祭酒)로 올려 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사누키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드는 참배객들에게 애음되면서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이처럼 유서 깊은 술도가의 양조책임자는 사카이 시로우(酒井 史朗)씨다. 1996년에는 제21회 전국 키키자케(시음주)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경력을 지니고 있는 실력파이다. 그는 볼륨감이 있고 향기가 조화로운 술을 목표로 한다. 사카이 시로우씨가 누룩 만들기에 가장 주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킨료의 술에는 잡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때문에 섬세하고 은은한 사케의 풍미가 오롯이 느껴지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는 토우지의 정성과 기술에 더해 쌀과 물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고토히라구의 명수, 하치만신사의 신수, 그리고 사누키평야의 쌀

 

쌀은 니혼슈의 유일한 원료이다. 그런 만큼 쌀이 술의 품질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물이 니혼슈의 아버지라면 쌀은 니혼슈의 어머니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누키 평야는 전국에서 첫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가뭄이 심한 지역이다. 강우량이 적지만 기후가 온화 해 재해가 적고, 배수가 양호한 토질로 쌀의 재배에 적절한 편이다.

 

또, 시코쿠의 북쪽 한계는 시코쿠 산맥에 의해 가로막혀 있어 밤낮의 온도차가 커서 밀도가 진한 충실한 쌀이 수확된다. 킨료는 에도시대부터 이 양질의 쌀에서「사누키의 곤피라자케」를 계속 만들어 왔다. 일본 전역에는 야마다니시키로 대표되는 주조호적미가 있다. 하지만 킨료는 현지 쌀을 고집해왔다. 농업 시험장, 카가와 경제연합회의 협력을 얻고, 모두 연구를 거듭해 육종 한 것이 바로「오오세토 」라고 하는 품종이다.

 

카가와현에서는 적지를 한정해 재배 기준을 정해서 특성이 뛰어난 쌀의 생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킨료는 일찍부터 시험 양조를 거듭해 '오오세토'에 적절한 양조 기술을 확립했다.

 

여기에 고토히라구의 명수, 그리고 900년을 넘기는 역사가 있는 타도츠 카츠하라 하치만신사의 신수를 이용해 주조에 힘쓰고 있다. 이런 품질 외길 220년의 노하우가 킨료의 술 근원인 셈이다. 그리고 근원의 중심에 바로 킨료노사토가 있다.

 

이처럼 의미 있는 술을 개봉하게 된 곳은 민어모꼬지를 마치고 2차로 간 술집에서다. 업소측에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맛을 보게 되었다.

 

첫맛은 부드러웠지만 뒷맛은 짜릿했다. 아마구치에서 카라구치로 이어지는 변화가 간단치 않은 공력을 느끼게 해 주었다. 시음자 중 한 명은 고시노칸바이 초특선을 마실 때 느낌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또 다른 한 명은 말하기를, "적당히 좋은 술은 잘 모르지만 확 좋은 술은 나도 맛을 알아요"라고 평했다. 킨료노사토의 맛이 범상치 않다는 얘기이다. 일반적인 니혼슈보다 약 2도가량 높은 17~18도의 알콜도수지만 원체 가다듬은 술이어서 그런지, 날카롭다는 느낌보다는 차분함 속에 기운을 품고 있다는 인상이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개성적인 향은 없었지만 그래서인지 니혼슈의 깔끔하고 섬세한 풍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다행히도 녀석을 반년동안이나 데리고 있었던 보람은 있었다.

 

일본에는 '青は藍より出て藍より青し'라는 격언이 있다. 풀이하자면 '청색은 쪽에서 나오지만 쪽보다 파랗다'는 말이다. 킨료는 이 격언과 같이 청출어람의 영예를 목표로 해, 어제보다 나은 술을 빚기 위해 오늘도 정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킨료노사토 홈페이지: http://www.nishino-kinryo.co.jp/


태그:#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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