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신문을 보다가 전면광고로 실린 영어학습기에 대한 제품정보를 꼼꼼히 살펴봤다. 유명세를 타는 제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광고처럼 학습효과가 있을지 반신반의 하면서

아내에게 살 것인지 물었더니, 믿을만한 제품이라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한다. 36만 원이라는 금액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영어학원비와 따져보면 비싼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6학년 아들이 방학하면서 받아온 성적통지표에 유난히 영어 과목만 뒤처져 있었다. 영어를 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했지만, 영어수업 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다는 담임선생님의

지적이 마음에 걸렸었다. 아내는 학원도 다니고 개인교습도 받는 애들도 많다는데 그냥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학원이라도 보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아들은 학원을 완강히

거부했고, 나도 학원까지 다니면서 하는 공부에는 반대했다.

 

 

방학 내내 컴퓨터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아들에게 영어학습기로 공부해보겠느냐고 물었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달라고 한다. 게임기처럼 생긴 학습기가 영어공부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겠다 싶어서 바로 주문을 했다. 학습기를 받아든 아들은 제품의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어가며 기능을 설정하고 익히는데 푹 빠진 듯, 바로 영어 단어 외우기에 들어갔다. 하루에 100개씩은 할 수 있겠다며 자신감을 보인다. 공부한 단어를 말해 보라고 하니 몇 개는 쉽게 나오더니 그 뒤로는 더듬거린다.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공부해보라며 며칠을 두고 보니 영어보다는 자격증까지 취득한 한자공부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학습기에는 영어 외에도 한자와 동영상, 음악기능 등이 부가기능으로 있었는데 날이 갈수록 영어는

관심이 없고 부가기능을 사용하는 것에 더 열중인 것을 보고는 중학교에 가면 쓰도록 하라며 상자에 잘 넣어두라고 하니 모기만한 소리로 '네' 하며 제품상자에 넣어둔다.

 

호불호(好不好)가 비교적 명확한 아들에게 영어는 아직 아닌 것 같았다.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들을 아직은 해줘야 할 것 같다. 영화 개봉작을 알아보며 볼 영화의 리스트를 만들고, 꼭 보고 싶은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가인데 아빠랑 같이 가면 볼 수 있겠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오늘은 과학영재캠프라는 것을 2박3일 일정으로 떠났다. 아침부터 설레는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출발시각을 재촉하듯이 촐랑된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아들은 꼭 가고 싶다며 신청서를 써 줄 것을 요구했고, 18만 원의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과학에 흥미를 많이 느끼는 것을 알았기에 신청을 해주었다. 방학 중에도 동네에서 아이들을 보기가 싶지가 않다. 누구는 외국으로 영어연수를 떠났다고 하고, 아침부터 학원버스에 오르는 아이들 어깨의 가방이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태그:#영어, #학원, #과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