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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
 
부산에서 송광사 가는 길은 너무 멀다. 몇 번이나 순천만 갈대밭까지 가서도, 가보지 못한 송광사로 향하는 지난 토요일은, 어제 내린 비로 하늘이 손을 넣으면 파란 물이 들듯 파랗다. 오랜만에 일가 친척들과 피서 여행을 떠나는 길이다.
 
우리 일가 친척들은 아직 어린 조카들이 있어 여름 방학이면 어디로든 길을 떠나야 하는데, 이번 여름 방학에는 계곡물이 좋다는 송광사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송광사 닿기도 전에 모두 차 안에서 시간을 날려버리고 나서야 한 마디씩 한다.
 
"아휴, 집에서 시원하게 선풍기 틀어놓고 독서 삼매에나 빠질 걸...", 혹은 "아이고, 인자 여행은 못하겠다. 나이가 들어서 움직이기 정말 힘들다", "그래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여행을 가야지 더 나이들면 여행도 못해" 등등 나이 지긋한 연장자들은 집에서 피서 보내는 게 제일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린 조카들은 밀리는 차 안에서도 즐기기만한 표정이다.
 

 
송광사 배롱나무꽃그늘 아래 수녀님 만나다
 
송광사 대웅전 절마당에 들어서니 늙은 배롱나무꽃이 환하게 반긴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들어오는 진입로에서 어린 조카들이 "저게 무슨 꽃이야 ?" 물어보던 그 배롱나무 꽃이다. 배롱나무는 부처과 식물이다. 나무 껍질이 없는 나무인 셈이다. 송광사 산문 입구 전화 부스 옆에 서 있던 배롱나무 꽃보다 더 화사한 진분홍빛깔을 뿜어내는 송광사 절마당 배롱나무 아래 수녀님 세 분이 지나가면서 대웅전 앞에 합장한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내 시선에 수녀님 세 분이 매우 신묘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거리며 절간을 돌아다니다 온, 한글을 제법 읽는 유치원에 다니는 조카 하나가 내 손을 묵묵히 잡아끌고 송광사 3대 명물의 하나 '비사리 구시' 앞에 세워 놓고는 "외숙모 ! 이렇게 큰 밥통은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밥통일 거야"라고 표현한다.
 
정말 아이의 표현처럼 송광사 '비사리 구시' 크기는 무슨 보트만하다. 이 '비사리 구시'는 국제를 모실 때 사찰에 모인 대중들을 위해 밥을 저장했던 목조용기. 이 정도의 밥통이 있었던 절이라면, 그 당시 송광사가 얼마나 큰 사찰이었던가 짐작이 어렵지 않겠다.
 

 
송광사가 명당인 이유는 ?
 
송광사 기록을 빌리면, 신라말 혜린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 이름은 송광산 길상사였고, 100여 칸쯤 되는 절로 30-40명의 스님들이 살 수 있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절이었다고 한다. 그뒤 고려 인종때 석조대사께서 절을 크게 확장하려고 원을 세우고 준비하던 중 입적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후 50여년 동안 버려지고 폐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 불교의 중심으로 각광 받게 된 것은, 불일 보조 국사 지눌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라고 전한다.
 
지눌 스님은 9년 동안의(명종 27년, 1197-희종 원년)중창 불사로 절의 면모를 일신하고, 정혜결사 운동에 동참하는 수많은 대중을 지도하여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다. 이후 송광사는 6. 25 전쟁 등 숱한 재난을 겪으면서, 계속되는 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 하겠다. 두리번 두리번 둘러보니 정말 산세가 아름답다. 한눈에도 명당 자리임을 알 수 있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대한민국 사찰이 있는 곳은 명당 아닌 데가 없다.'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어도
그의 영혼은 길가에 핀 풀꽃처럼 눈부시다
 
새는 세상을 날며
그 날개가 세상에 닿지 않는다
 
나비는 푸른 바다에서 일어나는 해처럼 맑은 얼굴로
아침 정원 산책하며
작은 날개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한다
 
모두가 잠든 밤중에
달피리는 혼자 숲 나무 위를 걸어간다
 
우리가 진정으로 산다는 것은
새처럼 가난하고
나비처럼 신성할 것
 
잎 떨어진 나무에 귀를 대는 조각달처럼
사랑으로 침묵할 것
그렇게 서로를 들을 것
<티베트의 어느 스님을 생각하며> - '이성선'
 

 
시원한 계곡 물소리에 무거운 삶을 내려 놓고...
 
송광사는 1969년 조계 총림이 되었다. 총림은 승려들의 참선수행전문 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 강원, 계율전문교육기관 율원을 갖춘 사찰을 뜻한다. 송광사는 16국사를 배출한 수행 정진의 도량으로 승보종찰의 명성이 대단한 절이다.
 
경내에는 국사전(국보 제 56호)와 관음전, 응진당(유형문화재 제 254호), 약사전(보물 제 302호), 영산전(보물 제 303호), 하사당(보물제 263호) 등 총 51채의 크고 작은 불당이 존재하고 있다. 이외 볼만한 것은 송광사 3대 명물, 능견난사(전남 유형문화재 제 19호; 불가에서 법당의 부처님전에 공양물을 올릴 때 사용하던 용기), 쌍향수(천연기념물 제 88호;수령은 800년 정도이며 천자암에 있음) , 그리고 송광사 대웅전 옆에 자리하고 있는 '비사리 구시'이다.
 

우리 일행은 하루 일정의 여행이라 시간을 아껴 경내를 주마간산처럼 둘러보고 일주문을 나와 송광사 시원한 계곡 물소리에 무려 7시간 푹푹 찌는 차 안에서 시달렸던 무더위를 무거운 짐처럼 내려 놓았다.
 

 
시원한 물 목탁소리에 마음이 깨끗해지다
 
아이들은 계곡물을 보자마자 풍덩 뛰어들었다. 송광사 계곡 말만 들었는데 그 명성처럼 넓고 큰 계곡 물소리가 우렁차다. 콸콸 탁탁 바윗돌에 부딪혀서 쏟아지는 시원한 물목탁 소리…마음이 일순 깨끗해지는 듯하다. 계곡의 바위에는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의 산꾼들이며 피서 원정을 온 각지의 여행객이며, 왁자한 초등학교 학생들의 물장난 치는 소리에 편백나무 숲이 많은 계곡은 야답법석이다.
 

 
한 가마솥에 밥을 나누어 먹는 식구들의 첫 여행은 행복하였네
 
시간 중에 휴가의 시간만큼 잘 가는 시간이 있을까. 새벽 4시에 나선 여행길을 재촉하는 해가 늬엿늬엿지고 있어, 송광사 3대 명물의 하나, 비사리 구시만 보고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음에 올 때 송광사 절구경만 하러 오자고 일행은 약속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일가 친척들이 다 함께 모여 이렇게 먼 거리 여행을 온 것은 그러고 보면 처음이다. 그래서 어쩌면 다음은 올 수 없는 송광사 여행 약속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음 여행 약속에 벌써 설레이며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며 하산했다.
 

 

너무나 넓고 너무나 볼 것이 많은 송광사 ! 그래서 본 것보다 보지 못한 것이 많은 송광사지만, 어린 조카들에게도 나에게도 또 일행에게도 '비사리 구시'의 인상은 정말 강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일가 친척, 한 비사리 구시(한 가마솥)에 밥을 나누어 먹는 가족임을 다시 단합하며 서로 번갈아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멀어지는 '송광사 여름'을 벌써부터 추억하면서, 뒤로 뒤로 멀어지는 전라도 땅을 비추는 백밀러 속에 하늘하늘 코스모스 길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 송광사 가는 길,1)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송광사행 직행버스 이용, 하루 9회 운행,1시간 30분소요 2)순천시내에서 송광사행 좌석버스 이용/ 16회 운행/ 1시간 10분 소요 3) 순천공용정류장→송광사 시외버스/ 2회 운행 4) 곡 천→송광사 택시 이용 / 10분 소요(5,000원) 
도로안내, 광주→호남고속도로→송광사나들목(주암)우회전→보성방면 27번 국도→주암호반도로→송광사 

2009년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글


태그:#송광사, #비사리 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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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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