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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 전시장에 붙은 장 미요트전 홍보물
 성곡미술관 전시장에 붙은 장 미요트전 홍보물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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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서정추상의 거장 '장 미요트(Jean Miotte 1926~)의 내면의 몸짓展'이 8월 30일까지 성곡미술관(관장 김인숙)에서 열린다. 회화 50여 점과 판화, 타피스리(장식융단)도 소개된다. 미술관에서는 시대별로 전시장 제목을 '내면의 강화'(1960~1970년대) '역동적 제스처의 회귀'(1980년대) '검은 필체의 장악'(1990년대) '색의 건축'(2000년 이후)라고 붙였다.

그는 1980년에 중국에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한국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전시회를 여는 것 같다. 그는 이미 일본,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 아시아에서도 여러 번 전시회를 열었다. 이번 전을 위해서 그는 뉴욕첼시미술관장인 부인 도로시아와 함께 휠체어에 몸을 싣고 잠시 입국했다.

화폭에 웅비하는 기운생동 구사

'카루셀(Caroussel)'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97cm 1962
 '카루셀(Caroussel)'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97cm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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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는 다소 부담감과 두려움을 주는 것도 사실인데 그의 작품을 직접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고 자연스럽다. 추상화에 대한 불편함과 거부감을 말끔히 씻어준다.

그의 작품이 말 그대로 '춤추는 그림', '몸짓회화'다. 무용가의 몸짓, 발짓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 춤 동작이 바로 그림이 된다. 휘날리는 선의 기운이 용처럼 하늘로 치솟는다. 색채마저 율동감과 리듬이 넘친다. "움직임은 내 삶이다"라고 한 작가의 말을 이를 대변한다.

그는 13살에 2차 세계대전이 터져 마음에 상처가 컸다. 사춘기인 15살에 재즈에 심취하고 전쟁의 공포를 잊는다. 20살(1946년) 때 영국에 사는 친구의 동생을 만나러 갔다가 본 발레와 루오, 마티스, 피카소그림이 들어간 무대장치와 안무 등에 큰 영감을 얻는다. 그는 이렇게 발레, 재즈, 퍼포먼스 등이 그의 예술의 모태가 된다.

물론 그의 추상회화는 유럽에서 일어난 타시즘(tachisme 묵화처럼 글씨나 얼룩이 번지는 효과 내는 추상화)이나 앵포르멜(무형상) 그리고 미국에서는 싹튼 액션페인팅(뿌리기)과 추상표현주의와 연관성이 깊다. 다만 그의 추상회화는 심오한 음악성을 띤 것이 특징이다.

추상을 시와 선율과 음악의 내재율로 표현

'탄생(Naissance)'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97cm 1975
 '탄생(Naissance)'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97cm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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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탄생'에서 그의 추상은 흰 여백의 미와 함께 시적 감성과 물결치는 선율, 음악적 내재율로 넘친다. 명암, 농담(濃淡), 장단고저, 고요와 폭풍의 분위기가 교차한다. 소비사회를 대변하는 팝아트와는 달리 격한 붓질로 내적 긴장을 뜨거운 서정추상으로 그렸다.

70년대는 60년대보다 그의 몸짓회화는 한층 강화된다. 형태의 우연성과 색채의 떨림을 포착하고 다양한 구성 속에 자유로운 변주를 시도한다. 그래서 더 역동적 힘과 자유분방한 선을 낳는다. 그리고 15세기 르네상스에서 20세기미술까지 추상적 요소를 두루 혼합한다.

검은 필체의 우위 속 선불교적 분위기 연상

'배경(Background)'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95×260cm 1989
 '배경(Background)'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95×260cm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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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1980년에 이미 중국정부로부터 초대전을 받았다. 그의 화풍이 중국인에게도 친근감이 갔나보다. 위 '배경'은 선(禪)불교적 분위기도 연상되고 동양의 서예도 떠올리게 한다. 캔버스공간이 갑자기 요동치며 일체가 전복될 것은 스릴이 느껴진다.

미요트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나의 그림은 내면적 갈등의 결과에서 온 분출이다. 정신적 긴장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연속되는 첨예한 순간들이다. 정신이나 지성의 사색이 아니라 자기내면에 지닌 몸짓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그는 정신보다 몸을, 지성보다는 감성을 더 중시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동양화풍으로 표현

'감각의 빛(Eclats des Sensations)'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16×89cm 1998
 '감각의 빛(Eclats des Sensations)'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16×89cm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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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요트는 90년대 큰 붓 사용으로 효과를 본다. 그리고 검은 필체가 화면을 압도한다. 그렇지만 '감각의 빛'은 더 강해진다. 그는 새 세상을 만들려고 모든 대상을 다 검게 태우려한 것인가. 하여간 파격과 혼란 속에서 무질서해 보이나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는 빅뱅이 일어난다고 할까.

작가는 삶의 희로애락을 동양식 일필휘지의 기법으로 그린 것인가. 그는 분명 인터뷰에서 서예를 배워본 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추상에는 동양미의 핵심인 '기운생동'이 넘친다. 하긴 진정한 예술이라면 동서는 뛰어넘어 필연적으로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

재즈 같은 즉흥적이고 예측불허의 감정 포착

'억압(Embargo)'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97cm 1994
 '억압(Embargo)'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97cm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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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선 재즈연주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즈마니아였다. 이 음악이 그를 구원하나보다. 즉흥적으로 발화하는 재즈음악의 흥겨움이 이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선율과 리듬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몰라 어떤 '억압(엠바고)'도 소용없어 보인다.

이런 작품은 무용, 연극, 음악, 건축, 회화의 요소가 씨줄이나 날줄처럼 뒤섞여있다고 할 수 있다. 깊은 명상과 오랜 수행을 통해 신령한 영감을 받고 크게 깨달은 자의 고양된 지성과 놀라운 직관 그리고 예리한 미적 감각이 여기에 다 용해되고 농축되어 있는 것 같다.

그만의 독특한 무의식세계가 잠재

'둘러싸임(Encercle)'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95×130cm 1998
 '둘러싸임(Encercle)'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95×130cm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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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을 보니 작가가 화려한 삼원색에 둘러싸여 자유의 영가를 노래한다는 착각이 든다. 20세기 악몽 같은 전쟁을 경험한 탓인가. 그는 서구적 주류의식에서 벗어난 제3의 시각을 가진 작가로 인간화와 인류문명과 세계평화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의 작품은 실제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에서 호응이 더 좋다니 흥미롭다. 

암튼 그는 미국에선 프랑스작가로 프랑스에선 미국작가로 통할 정도로 국적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활력 넘치는 뉴욕에서 여러 외국작가를 만나 예술적 해방을 맛봤나보다.

그의 친구 중 초현실주의 칠레작가 마타(Roberto Matta 1911~2002)가 있다. 그는 미요트작품을 꿈꾸는 투사의 그림이라 말하며 추상보다 초현실주의에 가깝다고 평했다. 이런 점을 보면 장 미요트는 추상미술 중에서 무의식적 환상이 담긴 특별한 요소가 있어 보인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정신

'해방(Liberation)'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95×260cm 1999
 '해방(Liberation)'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95×260cm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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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키워드는 무엇보다 '자유와 해방'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틀이나 이념, 형식이나 구속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남을 뜻한다. 그의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붓질은 큰 해방감을 준다. 절대적 자유 속에서 맛보는 인간존재의 충만함과 삶의 풍요를 맛보게 한다.

칸딘스키가 현대미술에 음악적 은유를 도입하여 추상회화를 열었다면 장 미요트는 그런 추상에 자유로운 춤의 선율을 도입하여 새 영역을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술만이 인생을 제대로 음미하며 살게 해

'요정들의 춤(La danse des elfes)'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95×390cm 2006
 '요정들의 춤(La danse des elfes)'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95×390cm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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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들의 춤' 그림의 몸짓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미술교육프로그램에도 활용된다
 '요정들의 춤' 그림의 몸짓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미술교육프로그램에도 활용된다
ⓒ 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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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그는 인간존재와 예술의 본질, 보편적 인류가치 등에 관심이 많다. 20세기 눈부신 문명에도 그는 예술만이 이 세상을 제대로 음미하고 이해하게 해 준다고 봤다. 바로 그런 철학은 "나는 믿는다. 나는 보았다. 나는 살아가려 애쓴다"라고 말에 농축되어 있다.

미요트는 2천 년대에 와서 100도까지 끓어오르는 작업을 뛰어넘어 이젠 아예 0도 아니 무(無)로 돌아갔나. 작업에서 군더더기가 없어 보인다. 그가 평생 한 길만 간 건 예술이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주고 이 세상을 진정 아름답게 하는 유일한 발전소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 뉴욕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작가 장 미요트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온몸을 던져 작업하는 작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의 추상적 세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작가의 오랜 연륜이 쌓여서 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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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장 미요트 공식홈페이지 http://jeanmiotte.com 덧붙이기-'장 미요트-내면의 몸짓'전은 오전 10시에서 6시까지 진행되며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4000-5000원. 7세-12세 대상(30여명) 매주 화·토·일(10시/14시)에 전시장에서 춤추는 그림 극단<사다리>와 함께 어린이미술프로그램이 있다. 02)737-7650



태그:#장 미요트, #추상회화, #성곡미술관, #칸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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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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