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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소나기를 피해 숲속으로 들어섰다가 만난 영지버섯. 썩은 참나무 그루터기에서 자랐다.
▲ 시랑헌 숲속의 영지버섯 집사람이 소나기를 피해 숲속으로 들어섰다가 만난 영지버섯. 썩은 참나무 그루터기에서 자랐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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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터에서

올 장마는 길고 심한 폭우 때문에 그 피해도 크다. 수행 터로 향한 유실된 임도(林道)를 복구하기 위해 서툰 굴착기 운전실력으로 앞뒤로 코방아를 찧으면서 작업에 매달린다. 정해진 양의 일이라면 전문기사를 고용하는 편이 능률적이고 경제적이다. 그러나 산일은 보이는 것 모두가 일이기 때문에 어디부터 시작이고 어디까지가 끝인지 구분이 없다. 언젠가는 모두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수행 터를 마련한다고 산 중턱을 백여 평 파헤쳐 놨더니 이번 폭우에 흙이 많이 유실되고, 곧게 잘 자란 편백나무 한 구루도 뿌리를 들어내고 넘어져있다.  가을이나 이른 봄에 옮겨주려고 했는데 비상 상태가 발생한 것이다. 어떻게든 살리고 싶다.

남원에 나가 나무뿌리를 감쌀 녹소마대, 줄, 고무바, 철근말뚝 등 분을 뜨기 위한 재료를 구입하고, 톱과 삽을 들고 약 500고지 높이인 시랑헌 뒷산 9부 능선쯤에 위치하는 예정 수행 터에 올라 조심스럽게 뿌리흙이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분을 뜨는 일에 집사람과 같이 모든 정성을 다했다. 

뿌리를 동여 맸다고는 하나 한쪽은 땅에 붙어있다. 땅에 붙어있는 밑부분을 동여매기 위해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나무 밑둥치를 들어올렸다. 분의 모양이 둥글지만 무게 중심이 정 중앙에 있을 리 없다. 길게 누워있는 편백나무 밑둥치를 굴착기로 들어올리자 동여맨 뿌리의 무거운 부분이 밑으로 돌아가면서 바로 묶은 부분의 껍질이 벗겨져 버린다.

줄로 묶어 굴착기로 들어올리니 뿌리를 감싼 분의 무거운 부분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줄로 묶은 부분이 벗겨져버렸다.
▲ 껍질이 벗겨져 버린 편백나무 밑둥치 줄로 묶어 굴착기로 들어올리니 뿌리를 감싼 분의 무거운 부분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줄로 묶은 부분이 벗겨져버렸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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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절이 넘게 나와 집사람이 힘겹게 쌓은 공든탑이 무너졌다. 허탈하고 무력한  깊고 큰 상실감이 밀려온다. 전에 사랑하고 온갖 정을 주어 가족같이 길렀던 일오(세퍼트)를 잃어버렸을 때 느낌과 유사하다. 나무 한 구루를 얻고 잃은 문제가 아니다. 내가 과연 무슨 권한으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나무를 죽일 수 있었는지 깊은 회의감이 엄습한다.  요즈음 공부하고 있는 삶의 본질에 관한 규명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진화의 첨단에 선 인류

삶의 근원과 본질을 우주의 진화과정과 대비시킨 불교 TV 방송의 기획특집 프로그램인 <뇌 생각의 출연>을 28강까지 반복해서 듣고 정리하려 했지만 내용을 제대로 소화시킬 수 없어 아예 그 책을 사서 틈틈이 읽고 있으나 아직도 정리된 논리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 

천문학에서 신경세포학, 양자역학, 상대성물리학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연관시켜 추론할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 같다. 20여 권의 관련 서적을 구입하여 열심히 그리고 최대한 빨리 독파하려고 하나 그 중의 한 권인 <데카르트의 오류>를 집어 든 지 벌써 몇 주가 지났다. 지금의 나의 실력을 망각하고 마음만 너무 급했던 것 같다.

태양계를 포함하고 있는 나선형 형태의 밀키웨이 은하계(Milkey Way Galaxy)는 최소 2천억~4천억 개의 별로 구성된 소우주이다. 태양은 밀키웨이 은하의 중심으로부터 26000 광년 떨어진 변두리에 위치한다. 전 우주에는 밀키웨이 같은 은하가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수 천만 개가 되며 이들의 위치를 3차원 좌표계에 표시해보면 매우 고른 분포를 이루고 있다. 우주의 본질인 완벽한 대칭이다. 

나선형 형태로 된 밀키웨이 은하계의 중심부분의 적외선 사진(출처 인터넷).
▲ 밀키웨이 은하계 나선형 형태로 된 밀키웨이 은하계의 중심부분의 적외선 사진(출처 인터넷).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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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어느 방향으로든 바늘 하나 꽂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 꽉 차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나 텅 비어 있다. 이것이 우주이다. 꽉 차 있으나 텅 비어있는 인간의 개념으로 모순된 상태의 우주를 우리의 관념으로 생각할 수 없으며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대폭발 이전의 우주는 모르니 제쳐두고 대폭발 이 후 137억년의 우주의 역사 중 현대의 과학으로 밝힌 사실만이라도 알고 싶다. 천문대의 대형반사 망원경에 보이는 거시적인 세계만이 우주가 아닐 것이다. 한 주먹의 흙 속에는 온 인류의 수만큼의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이들 미생물 세계 역시 우주일 것이다. 또, 미생물의 미생물은 없는 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더 큰 우주의 미시세계는 될 수 없는 것인가? 

우리의 조상은 35억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난 원핵세포이며 이 원핵세포는 10억 년의 세월을 거쳐 진핵세포가 되고 또 이들은 유전인자(DNA)를 갖는 다중세포로 형성되는 생명체로 진화한다. 신경세포가 생겨나고 이 신경다발들이 척추로 통해 뇌와 연결되고 이러한 진화 과정을 통해 인류는 의식과 사고능력을 갖게 되었다. 광대한 우주 속의 물리적인 나의 체적과 나의 수명은 티끌의 티끌보다 작고 찰라의 찰라보다 짧을지 모르지만 내 안에 우주가 들어있다. 어찌 작고 미미하다고만 하겠는가. 흥미롭고 재미있다.

지난 35억 년 동안에 우리 인류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한참 정신 없이 일을 하던 집사람이 갑자기 허리를 펴고 일어서며 말을 걸어온다. "여보! 이 많은 새들이 갑자기 어디서 몰려왔지?" 하면서 고개를 기웃거린다. 나도 주위에 신경을 기울이니 새들이 모내기 철에 논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보다 더 요란하게 울어댄다.

이렇게 많은 새들이 우리 시랑헌 숲 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왜 지금에야 갑자기 세상이 떠내려 갈듯이 울어대지? 이상하다 싶지만 나와 집사람은 새소리를 무시하고 다시 일로 돌아갔다. 몇 분이 지났을까, 전후좌우를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장대비가 쏟아진다. 이제야 새의 울음 소리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급히 집사람을 시랑헌으로 내려 보내고 나는 다시 굴착기로 올라가 도로로 범람하는 물줄기를 잡아주는 작업을 하였다. 쏟아지는 물과 한판 전투이다. 물줄기를 정리한 후, 굴착기와 트럭을 그대로 두고 밀집모자에 떨어지는 장대 같은 빗소리를 들으며 시랑헌으로 내려간다. 참으로 시원하다.  살 속까지 파고들듯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터덜터덜 걷다 보니 방하착(放下着) 후에나 맛 볼 수 있는 큰 자유를 만났다. 우리가 진즉 잃어 버린 것 중 하나이리라.

여보! 집사람의 급한 외침이다. 서둘러 소리 난 곳으로 가보니 집사람이 자연의 큰 선물을 앞에 두고 놀람과 경이에 차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시랑헌 숲 속에서 만난 영지버섯이다.  사진이나 책에서 본 것과는 아주 달랐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우선 영지버섯은 아름다웠다. 아주 신비로웠다.

총 4개의 영지버섯 중 참나무 우측에 자란 영지버섯 2개
▲ 시랑헌 숲속의 영지버섯 총 4개의 영지버섯 중 참나무 우측에 자란 영지버섯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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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따야되는냐 아니면 다음에 다시 시랑헌에 올때까지 보류하느냐는  문제로 망설임을  준 제일 큰 버섯
▲ 4개 중 가장크고 아름다운 영지버섯 지금 따야되는냐 아니면 다음에 다시 시랑헌에 올때까지 보류하느냐는 문제로 망설임을 준 제일 큰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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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시랑헌으로 내려와 인터넷으로 '영지버섯'을 검색해본다. 영지버섯의 설명은 불로초를 풀어 쓴 것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온 갓 좋은 말이 가득하다. 순간 나는 사흘 뒤 외할아버지 보러 온다는 외손자가 떠올랐고, 집사람은 중풍을 앓은 나를 생각한 모양이다. 검색 내용에 의하면 우리가 본 영지버섯은 일년생이고 넓이가 20cm까지 자란단다.

다른 3개의 버섯이 조금 서운하여 다음으로 미뤘지만 못 미더워 잔 나무가지로 노출되지 않게 잘 위장한 영지버섯
▲ 나무 잔가지로 위장한 영지버섯 다른 3개의 버섯이 조금 서운하여 다음으로 미뤘지만 못 미더워 잔 나무가지로 노출되지 않게 잘 위장한 영지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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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버섯은 모두 4개이다. 모두 20 cm이상 자랄 때까지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영지버섯이 자라고 있는 곳으로 올라가 나무 잔가지로 은폐시키고 내려온다. 두 개는 내가 먹고, 한 개는 집사람 그리고 한 개는 외손자의 몫이다.

돌아서 내려오는 길에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 콧노래로 불러본다. 발걸음이 가볍다. 영지버섯을 영약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에 차라리 연민에 정을 느낀다.


태그:#영지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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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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