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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이라는 녀석이 있다.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달달 외웠던 주기율표 구석 너머 어딘가 있었던 녀석 같지만 일단 이 물질은 '라돈'이라고 불린다. 퀴리부인이 떠오르지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방사능을 띠는 기체다. 이 기체는 그냥 방사능을 띠는 기체가 아니라 담배 다음으로 폐암 발병원인의 2위를 달리는 1급 발암물질이다. 어디서 발생하는가 하면 자연적으로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건축용 자재에서도 발생한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본 듯도 하다. 지하철 공기 석면 라돈의 위협 노출, 이런 기사를 본 것 같지 않은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라돈은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환경청 등에서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물질이다. 인간이 피폭하는 연간 방사선량의 약 55%가 라돈이다. 주요 발생원은 화강암류 지대를 비롯해서 석고보드, 콘크리트, 황토 등이다. 무거워서 바닥에 가라앉는 성질이 있는데, 건물바닥이나 지하실벽 갈라진 틈을 통해 실내로 들어온다.

1급 발암물질 라돈

중요한 것은 매우 위험한 존재라는 것이다. 지하철 역사의 대기 중에도, 지하수 식수에도, 우리가 숨쉬는 공기 어딘가에도 퍼져 있다. WHO에 의하면 폐암 환자 중 6~15%가 라돈에 기인한다고 평가한다. 미국 EPA는 라돈에 의한 미국 내 사망자수는 연간 2만1000여 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연구에 의하면(김윤신, 1994) 폐암 사망자 중 4~15%가 라돈 노출로 추정된다. 잘은 모르지만 상당히 위험한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이 위험한 공기가 우리 주위에 있다면 조사도 하고 대책도 세워야 하는 것 아닐까. 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도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무언가 하고는 있다. 2001년도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전국의 주택과 공공건물을 대상으로 라돈 피폭량 실태조사를 했다. 환경부도 실내공기질 관련 대책을 내놓았다.

연구결과를 잠깐 살펴보자. 일단 전국의 주택에 관한 내용을 보면 지역별로는 강원도와 충북지역이 200Bq/m3을 상회하는 비율이 5~7%로 가장 높고, 서울 인근지역과 경북 지역이 1%로 가장 낮다. 사실 주거 공간에서 라돈 검출이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건축물의 구조나 양식에 따른 차이다. 한옥과 같은 경우 오래된 건물이 아파트 등에 비해 라돈이 높게 검출된다. 정리하면 건축연도가 오래된 건물일수록 라돈 함유 정도가 높다. 벽이나 기둥에 틈이 생기고 여기로 라돈 가스가 유입되는 것이다. 또한 오래된 건축자재(석고보드, 콘크리트, 황토) 등에서 비롯되는 라돈도 있다.

지하철보다 학교가 위험

문제는 학교다. 아래의 표는 라돈 농도를 계절별로 나타낸 것이다. 영어로 되어 있어 상당히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단순하다. 제일 높은 공공건물만 보면 된다. 학교가 압도적으로 높다. 종종 뉴스에 등장하는 지하철보다 훨씬 높다. 가을과 겨울로 갈수록 높다. (높은 이유는 실내 환기가 잘 안 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지하철 보다 학교가 월등히 높다.
▲ 공공건물 유형에 따른 계절별 라돈농도(산술평균) 분포 (2001, KINS) 지하철 보다 학교가 월등히 높다.
ⓒ 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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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타 공공건물에 비해 높은 이유는 백화점이나 종합병원 건물은 학교에 비해 출입구가 많고 지속적으로 사람의 출입이 빈번하여 실내공기의 순환이 잘 되는 반면, 학교 건물의 경우는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밀폐되어 있는데다 방학 동안은 계속적으로 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의심을 더하자면, 학교 건물의 노후화 정도다. 병원이나 시청 건물 등은 새로 잘 지어져 있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학교 건물이 으리으리한 것을 본 적이 있나? 공공 건물 중에 학교가 제일 후졌다.

학교가 지하철 보다 높다.
▲ 공공건물 유형에 따른 계절별 라돈농도(산술평균) 분포 (2001, KINS) 학교가 지하철 보다 높다.
ⓒ 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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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면 2007년도에 교과부에서 학교 석면 실태 조사를 실시했는데 100개 학교 중에 88개가 석면을 쓰고 있다고 한다. 외국에 가보면 학교 건물만 보아도 '공부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우리나라의 학교는 보기만 해도 감옥 같다. 돌이켜보면 십 몇 년 전에 6.25 때 미군이 버리고 간 난로에 조개탄 때던 건물이 학교였다. 학생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임을 감안하면 1급 발암물질이 지하철보다 높은 공간에 무대책으로 애들을 방치하는 꼴이다.

재미있는 것은 조사대상 520개 공공 건물 중에 학교 건물이 34%이다. 그렇다면 약 177개 정도의 전국 학교에 대한 검사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이 각각의 건물에 대한 검사 결과를 연구수행기관에 문의했다. 대답은 '없다' 였다. 담당자가 IAEA로 파견을 가서 원 데이터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우리나라, 라돈에 대해 상당히 무지했다. 그래서 미국 주택기준을 그냥 가져와서 기준을 만들었다. 공공시설과 학교에 대해서는 권고기준치(4pCi/L)를 정했다('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 '학교 보건법'.)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라돈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있는데다. 기준 초과 시에 조치 의무에 대한 규정은 미미하다. 일부 지하철 역사에서 권고 기준치 이상이 나왔지만 뉴스에 몇 번 나왔을 뿐이다.

공공시설보다 더 높은 라돈 농도를 보이는 주거 시설에 대해서는 기준도 없다. 먹고 자고 생활하는 중심 공간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전국적인 실내, 토양, 지하수 등의 라돈 실태조사도 미흡한 실정이고 고위험 건축물 등에 대한 라돈 차폐시공 등 저감 매뉴얼 및 골재 등 건축자재에 대한 관리 기준도 미설정이다. 필자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환경부에서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MB 정부 들어 대폭 삭감된 관련 예산

상황이 이렇다면 정부가 무슨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은가. 그런 일 하라고 세금 꼬박꼬박 내는 거 아닌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물질이 공기중에 마구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면 실태조사부터 하고 규제 및 권고, 그다음에는 차폐 대책과 집행이다.

우리의 환경부도 당연히 그러한 계획을 내놓았다. 2007년 야심차게 '실내 라돈 관리 대책'이라는 두툼한 문서도 내놓았다. 환경부의 계획을 보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어야 마땅한 내용들이다. 2012년까지 3단계로 나누어 조사도 하고 대국민 홍보도 하고 TV광고도 하고 각종 건축물 차폐 매뉴얼도 만들고 등등 다종 다양한 계획들이 연차별로 적혀 있다.

일을 하려면 '돈' 즉, 예산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이를 집행할 예산이 없으면 무용지물 아니겠는가. 환경부는 관련한 예산을 책정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라돈 대책과 관련된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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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009년
2010년
2007.06 환경부 계획
11.5억 원
24.80억 원
28.8억 원
실제 예산
11.5억 원
7.78억 원
(예산요구안)
7.0억 원

08년까지는 연차별 계획에 의해 11.5억원이 집행되었다. 2009년에는 원래 계획보다 확 깍였다. 2010년에는 예산요구안이 원래 예산의 1/4 수준도 안 된다. 환경부 담당자 말로는 환경부의 예산 자체(환경개선특별회계)가 삭감되었다고 한다.

삽질을 위해 포기한 예산?

도대체 뭐하려고 정부는 관련 예산을 대폭 깎았나. 그것도 이명박 정부 들어서 실내공기질 관련 예산 자체가 줄었다. 유레카! 대통령께는 4대강 삽질 사업이 있다. 아니다. 지난 7월 23일 발표에 의하면 4대강뿐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국가하천을 정비하겠다고 하셨다. 온갖 예산을 깎고, 별로 국민적 관심이 없어서 각하 보시기에 중요하지 않은 사업들은 과감히 잘라내어 전 국토의 강을 뒤집어 놓으시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아닐까.

아, 오늘도 후진 건물에 갇혀서 국영수만 죽도록 공부하는, 대통령의 교육 정책으로 인해 고사되어 가는 청춘들이 1급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있다. 좋은 대학 가서 돈 많이 벌어서 부자 되면 질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서일까. 중요한 것은 그들의 건강이 아니다. 삽질이다.

묻고 싶다. '각하, 그 돈 아껴서 뭐에 쓸려고 그러십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레디앙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라돈,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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