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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해 연안의 항구도시 코치. 일찍부터 향신료 무역의 중개지로 서구에 잘 알려진 코치는 최초로 인도양 항로를 발견했다고 역사책에 기록된 바스코 다 가마에 의하여 1502년에 공식적으로 포루투갈의 상업기지가 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서구 열강의 식민지 각축장이 되기도 했던 코치엔 이를 대변이라도 하듯 많은 이민족들의 삶의 자취가 남아 있기도 하다.

 

 

중국 광동성 양식의 중국식 어망은 원제국 시절 이곳 코치항에 전해졌다고 한다. 그 옛날 중국식 어망이 실제로 얼마만큼의 어획량을 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 어망으로 물고기를 잡는 어부는 거의 없다. 하지만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중국식 어망은 어느덧 코치의 명물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코치의 해변을 점령하고 있다.

 

매일 이른 아침이면 코치의 포구는 활기가 넘쳐 흐른다. 그 이유는 바로 물고기 위판장이 아침마다 열리기 때문이다. 어부들은 새벽에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중간상인들을 통해 시장에 내 놓는다.

 

 

인도의 시골마을답게 거의 모든 남자들은 룽기라는 남인도 전통의상을 입는다. 한장의 긴 천으로 이루어진 룽기. 평소에는 롱 스커트로 입지만, 덥거나 활동적일 필요가 있을 때에는 반을 접어 숏 스커트로 만들어 입는 룽기. 룽기를 입은 사내들이 포구 여기저기에서 흥겨운 삶의 노래를 부른다.

 

 

 
잡은 고기의 양도 많지 않고 그래서 위판장이라 할 수 없는 수준의 경매시장이지만 이곳에서도 인도사람 특유의 낙천적 생활방식을 느낄 수 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삶의 방식을 지키며 큰 욕심 부리지 않는 만족의 삶. 물론 그러한 생활방식에 불만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야 인도의 대도시에서 각자의 꿈을 펼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욕심 가지지 않고 소박한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오늘날 인도의 급격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인구 11억이 넘는 오늘의 인도가 별 문제 없이 국력을 신장 시키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시장이나 먹거리를 빼 놓을 수는 없다. 아침을 거른 것이 분명한 시장사람들은 짜이(설탕과 우유가 듬뿍 들어간 인도의 차)를 파는 행상 앞에서 피곤한 심신을 달랜다. 인도 사람들에게 있어서 짜이는 배고픔을 달래는 한 끼의 요긴한 식사요, 쌓인 피로를 회복시켜 주는 자양강장제이기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시골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씩 먹을 것을 권하는 할머니 장사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때마다 훈훈한 인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갑자기 짜이를 마시던 생선장수 할아버지가 내게 짜이를 권한다. 물론 자기 돈으로 짜이를 사 준다는 말은 아니었지만(인도 사람들은 확실한 경제관념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짜이 자랑을 늘어놓으며 몸에 좋으니 한 번 먹어보라는 할아버지의 관심어린 권유에 나는 전라도 오일장 할머니들의 따뜻했던 인정을 떠올리며 나름대로 달콤한 남인도의 짜이를 마셨다.

 

손님 중에 다른 사람의 입이 닿았던 컵을 다시 사용하지 않는 까다로운 인도 사람들을 위해 짜이장수는 일회용 컵을 준비하기도 한다. 짜이가 워낙 뜨거우니 입을 대지 않고 먹을 수는 없는 일. 까다로운 아저씨도 달콤한 짜이를 입으로 훅훅 불어가며 맛있게 마신다.

 

 
사정이 많이 바뀌었지만 원래 인도 사람들은 짜이를 1회용 도기잔으로 마셨다. 흙으로 빚은 1회용 도기로 짜이를 마신 다음, 길에다 사정없이 던져 도기잔을 깨는 것이 짜이를 마시는 다도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조금 더 편리한 것들을 찾으며 세상이 변하다보니, 이젠 인도에서도 도기잔에 짜이를 파는 장사꾼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침장이 파할 무렵 부지런한 어부들은 다음 출항을 위한 어구 손질에 정성을 다 한다. 특별한 횡재가 있을 수 없는, 오직 인력으로 근면과 성실만이 요구되는 노동이지만 어부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묵묵히 그리고 진실되게 살아간다. 본능에 충실한 삶. 어쩌면 그것은 가장 숭고한 인간의 삶이며 아름다운 삶일 수 있다.

 

 

 

 

한적한 시골의 어촌 마을 코치. 그 속에서 사람들은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거의 비슷한 형태의 인생을 살아간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그곳이 대한민국의 서울이건 인도의 코치 포구이건 그것은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릇 사람들이란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며 그 안에서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고 발견하기 때문이다.

 

 

 

 

진한 삶의 목소리들이 오가던 코치의 포구. 여행은 가끔씩 내 삶의 방향을 제시 해 준다.


태그:#남인도, #인도, #케랄라, #코치, #코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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