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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개미 한 마리에 8마리의 검정개미가 싸움을 벌인다.
▲ 개미전쟁 붉은개미 한 마리에 8마리의 검정개미가 싸움을 벌인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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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산사에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법당에서는 목탁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맡은 소임을 다하느라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소리 없는 전쟁이 터졌습니다. 총소리도 커다란 대포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전쟁터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비명 소리도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수 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다친 이들은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지켜야 하는 이들은 결사적으로 막고, 빼앗으려는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치열하게 밀고 들어갑니다. 또 한국전쟁으로 일본이 특수를 누렸듯이 잇속을 챙기는 이도 있습니다.

강릉 성산면 보광리의 한 사찰에 서로를 죽이고 약탈하는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붉은 개미가 검정개미집을 습격한 것입니다. 보현사 주지스님이 방문을 나서다 문 앞에서 벌어진 난리를 보시고는 사부대중을 불러 모았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이나 축생의 세계가 조금도 다르지 않고 한 가지라는 가르침을 주시기 위함인가 봅니다.

붉은개미와 검정개미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죽은 이들은 대부분 검정개미들이다.
▲ 개미전쟁터 붉은개미와 검정개미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죽은 이들은 대부분 검정개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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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의 전쟁은 치열했습니다. 붉은 개미 약탈자들은 검정개미 집에 들어가서 개미 유충들을 입에 물고 갑니다. 갑작스런 난리를 만난 검정 개미들은 유충을 입에 물고 피난을 갑니다. 미끄러운 유리를 타고 지붕밑까지 간 것도 있고, 집 근처를 떠나 사방으로 유충을 물고 흩어집니다. 그 피난길에 거미줄에 걸려서 목숨을 잃은 이도 있습니다. 거미도 자신의 알주머니를 배에 달고 피난을 갑니다. 날개가 달린 수개미는 붉은 개미에게 물려서 꼼짝을 하지 못합니다.

수개미가 붉은개미에게 끌려가고 있다.
 수개미가 붉은개미에게 끌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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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개미집 입구는 말 그대로 전쟁터입니다. 곳곳에서 무리를 이뤄 싸움을 벌입니다. 1대1의 싸움이 있는가 하면 붉은 개미 한 마리에 검정개미 7~8마리, 많게는 10마리가 넘게 달러 붙어 있습니다. 붉은개미의 다리 하나에 검정개미 한 마리씩입니다. 그렇게 해도 붉은개미를 막아내기가 힘든가 봅니다.

주변에 죽어 있는 것은 검정개미가 대부분입니다. 바닥에 고통스럽게 뒹굴고 있는 붉은 개미를 자세히 살펴보니 다리에 검은덩어리가 매달려 있습니다. 검정개미의 머리입니다. 붉은 개미와의 싸움에서 머리가 잘렸지만 꼭 깨문 다리를 놓지 않습니다. 붉은개미는 그 머리를 떨쳐내려고 몸부림치지만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때 나타난 것은 2~3㎜쯤되는 아주 작은 개미들입니다. 붉은 개미에 여러 마리가 들러붙어 자신들의 집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검정개미에 이기던 이들이 꼼짝을 못하고 먹잇감이돼 버립니다.

붉은개미들이 작은 개미들에게 끌려가고 있다.
▲ 작은개미집 입구 붉은개미들이 작은 개미들에게 끌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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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산사에서 벌어진 살육과 약탈의 전쟁은 몇 시간이나 계속됐습니다. 자연세계에서 벌어진 일에 사람은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그저 축생계에서 벌어진 일을 지켜보며 육도를 윤회하는 중생의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느낄 따름입니다.

검정개미가 새로운 세대가 될 유충을 충분히 키웠을 시기를 택해 약탈전을 벌인 붉은개미, 그들에 맞서 목숨을 걸고 자신들의 무리를 지켜야 하는 검정개미. 이들의 전쟁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자그마한 개미.

햇볕이 따가운 여름날 산골짜기 사찰에서 개미들의 세상살이에 우리네 인생을 비추어봅니다.

개미들이 곳곳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다.
▲ 싸움무리 개미들이 곳곳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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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유충을 끌고가는 붉은개미
▲ 전리품 개미유충을 끌고가는 붉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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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붉은개미 다리를 놓지 않는다.
▲ 검정개미 죽어서도 붉은개미 다리를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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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위에까지 유충을 물고 피난했다.
▲ 개미의 피난 유리창 위에까지 유충을 물고 피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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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개미, #보현사, #선자령,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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