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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엄마 여기있다!' - 큰아들이 연병장 대열을 향해 걸어가다가 뒤돌아보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듭니다.
 '아들아, 엄마 여기있다!' - 큰아들이 연병장 대열을 향해 걸어가다가 뒤돌아보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듭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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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경남 진주로 향했습니다. 입대 영장을 받아든 큰아들(21)을 훈련소에 입소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7월의 녹음에 휩싸인 공군교육사령부는 휴양지처럼 보일 정도로 깔끔한 건물과 녹지로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덕분에 훈련소 특유의 긴장감 대신 안도감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입대 장병들이 집합하게 될 연병장에선 군악대의 힘찬 연주와 함께 의장대의 총검술 시범공연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입대 장병 가족들로 가득 찬 스탠드에선 간간이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관심사는 곧 헤어지게 될 아들입니다. 공연이 종료되면서 연병장 집합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아들을 국가에 바칠 시간입니다.

큰아들이 작디작은 엄마 품에 안겼습니다. 이어 동생과 포옹을 합니다. 아빠보다 더 커버린 아들을 안습니다. 가슴이 뭉클거렸지만 참았습니다. 이별의 세리머니를 마친 아들이 연병장으로 내려가면서 손을 흔들고 또 가다가 뒤돌아서서 손을 흔드는데 만면에는 웃음이 가득합니다. 아들은 '서울' 지역 행렬의 맨 좌측 중간쯤에 서 있어서 눈에 잘 띄었습니다.

아내는 연신 눈물을 훔칩니다. 산고 끝에 낳은 아들은 아니지만 가슴으로 수태한 아들을 훈련소로 떠나보내는 슬픔은 다른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눈시울 붉어진 아내가 아들이 서 있는 연병장을 향해 손을 흔들다가 앞사람 때문에 보이지 않자 까치발을 딛습니다. 저기! 저기! 지구본처럼 잘생긴 까까머리 내 아들이 늠름하게 서 있는데, 고기라도 몇 근 더 먹여서 보내지 않은 게 마음 걸려서 눈물 납니다.

홀어머니일까?

아내 옆에 홀로 서 있는 한 어머니가 울음소리를 속으로 삼키며 눈물 흘리는데 그 애처로움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 땅에서 아들을 낳은 모든 어머니들이 필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지만 홀로 감당하기에는 큰 아픔입니다. 자식을 홀로 키워본 자로서 그 어머니의 아픔이 얼마나 심할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왔던 길을 홀로 돌아가야 하는 그 슬픔과 쓸쓸함이란….

큰아들, 공군 697기로 훈련소 입소하다!

아들을 낳은 어머니들만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슴으로 아들을 수태한 아내가 아들을 훈련소에 입소시키며 흘린 눈물을 아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아들을 낳은 어머니들만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슴으로 아들을 수태한 아내가 아들을 훈련소에 입소시키며 흘린 눈물을 아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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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큰아들이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10월 정도였을 겁니다. 그리고 2006년 8월 19일 결혼식과 함께 새 가정을 꾸리면서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아들은 생모에게 두 번의 큰 상처를 받았지만 워낙 쾌활한 성격 탓인지 아내와 쉽게 친해졌는데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영락없는 '모자지간'입니다.

걱정이 없진 않았습니다. 산고로 낳은 자식과 어머니 간에도 불화가 발생하는데 하물며, 배 아프지 않고 낳은 아들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을 아들로 삼는 일은 매우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큰아들 또래인 딸과의 갈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첫 결혼의 실패와 첫 가족의 실패를 경험한 아내에게 재혼은 매우 위험한 결정이었습니다. 물론 주변의 반대도 많았고 고뇌의 시간도 짧진 않았습니다.

'다만 한 식구가 되어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사람의 노력과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일이 매우 많다는 것을 쓰라린 경험으로 깨달았기에 손 모아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벽을 깨워 간구의 기도를 하던 날이 40일 지났습니다. 기도 덕분인 듯 어미가 제 새끼 만났듯이, 새끼가 어미 품에 안기듯이 서로를 잘 보듬는 아내와 큰아들은 둥지 속의 어미새와 새끼새처럼 오순도순 잘 어울렸습니다.

아들의 소원대로 훈련소 인근의 중국집에서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인 뒤에 입소시킨 아내! 아들을 훈련소로 떠나보내며 눈물 흘리는 아내의 모습이 자꾸 '아들 낳는 모습'으로 비춰졌습니다. 잉태된 아들을 출산하면서 흘리는 아픔과 기쁨의 눈물, 눈물로 아들을 훈련소에 입소시키고 귀가한 아내는 기도합니다. 하늘이 정해준 내 아들을 잘 지켜달라고 간구의 기도를 드립니다.

가족 파산의 시대에 남남이 '한 식구'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따로 살던 두 식구와 세 식구가 합쳐지니 밥상위엔 숟가락이 다섯 개요 젓가락이 다섯 개입니다. 그리고 현관엔 다섯 켤레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세 개의 방엔 다섯 개의 베개와 안온한 잠이 행복한 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귀한 식구를 군대에 보내면서 그 빈자리의 허전함이 없진 않으나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행복한 성장을 위한 조율일 뿐입니다.

[그 여자의 재혼일기 6] 배 아프지 않고 아들 얻어서 좋겠다!

"엄마, 후회하지 않으려면 꼭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고 입대해야 한대요!" 아내는 아들의 소원대로 훈련소 인근 중국집에서 그 음식들을 먹였습니다.
 "엄마, 후회하지 않으려면 꼭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고 입대해야 한대요!" 아내는 아들의 소원대로 훈련소 인근 중국집에서 그 음식들을 먹였습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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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내의 재혼일기입니다. 큰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은 글이어서 아내의 동의를 얻어 전재합니다.

결혼은 하나 같이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한결 같이 하는 얘기는 "배 아프지 않고 아들 얻어서 좋겠다!"였습니다. 결혼하기로 결정하고, 그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안양에 계시는 엄마에게 갔습니다. 온다는 말을 듣고 고모와 동생 가족들도 모두 와 있더군요.

엄마는 속이 상해하시면서도 음식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여동생이 "싫다더니 음식은 왜 준비해?"라고 하자 "나중에 서운하다고 우리 딸 구박하면 어떡하니!"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런 우리 엄마, 아들들을 보시더니 다소 기분이 풀리시는지 그이를 보고 "자네보다는 애들이 훨씬 낫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너 배 아프지 않고 아들 얻어서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고모에게서도 똑같이 들었고 후에 친구에게서도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아들들이 키도 훤칠하고 좀 생겼습니다.^^ 큰 아들은 약간 느끼하게 잘 생겼고(안경 끼면 범생이, 벗으면 눈빛이 묘하게 느끼합니다), 작은 아들은 모습이나 행동 모두가 아빠의 붕어빵입니다. 그래서 그이는 작은 아들을 편애합니다. 제가 보기엔 큰 아들이 더 잘 생겼습니다. 저랑 말도 더 잘 통하고요. 특히 아빠 흉볼 땐 큰아들하고 합니다. 무조건 제 편이니까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제게로 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소스라치게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 유난히 파 냄새를 좋아하는 남편이 대파 3단을 사가지고 들어와 둘이서 파를 까고 있었습니다. 썰어서 냉동실에 넣어 얼려 놓으면 오랜 동안 싱싱하게 사용할 수 있어 게으른 제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문득 몇 년 전 딸과 둘이서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난 것입니다. 전 아이들을 입양하고 싶었습니다만, 딸 하나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제가 아이들을 입양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어린 아이부터는 어렵고,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면 키울 수 있겠는데…' 해서 딸이 웃었던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남편에게 "참, 말이 씨가 된다더니…"라고 말하며 예전에 딸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말을 들으시고, 아이들을 내게 맡긴 것 같다고요. 아마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베티 이디'가 쓴 <그 빛에 감싸여>(김영사)란 책을 읽었을 때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죽음준비 공부를 했는데, 그때 필독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책 내용은 죽음 후 천국을 방문하고 되살아난 경험을 쓴 책인데, 그 가운데 자신에게 입양된 아이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아이가 태어날 때 부모를 정하는데 저자가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자 다른 부모를 통해 자신에게로 입양되어 왔다는 내용입니다.

전 이 아이들이 저의 아들이 되도록 정해졌다고 믿었습니다. 잠시 아픔을 겪고 결국은 내게로 왔다고 말입니다. 교회에서 큰아들과 단둘이 돌아올 때 차 안에서 이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너희들은 엄마의 아들이 되기로 결정되었기에 만나게 된 것일 거라고. 며칠 후 어버이날 큰 아들의 편지에 이렇게 씌어져 있었습니다.

"엄마의 그 말이 정말 그럴 듯했어요. 정말 그럴 거라고 믿어요. 엄마, 사랑해요."

입대 하루 전인 26일 외식하던 아내와 딸, 작은아들과 큰아들. 가족의 사랑과 행복한 배웅으로 입소한 큰아들이 우수한 성적으로 훈련소를 마친 뒤 수도권에 배치받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입대 하루 전인 26일 외식하던 아내와 딸, 작은아들과 큰아들. 가족의 사랑과 행복한 배웅으로 입소한 큰아들이 우수한 성적으로 훈련소를 마친 뒤 수도권에 배치받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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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들, #엄마, #재혼, #훈련소, #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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