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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 .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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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초·중·고 교사들이 학교 폭력을 평정하겠다고 나섰다. 교실에 평화의 꽃을 피우겠다는 것이다. 이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이선생의 학교 폭력 평정기>(양철북, 12,000원)라는 책을 썼다. 현직 교사들이 직접 겪은 학교 폭력의 실상을 소설로 형상화하고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것은 처음이다. 

2001년부터 '따사모(따돌림사회연구모임)'를 만들어서 8년 동안 고민을 나누며 토론하고 4년에 걸쳐 쓰고 고치기를 거듭했다. 그러다 만들어진 것이 소설의 모양새를 가다듬게 되었다.

소설이라는 날개옷을 입긴 했지만 6편의 이야기 모두 교사들이 학교에서 직접 체험한 학교폭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김경욱 교사를 제외한 집필에 참여한 나머지 3명 교사들의 이름은 필명이다. 혹여라도 있을 지 모르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제자들의 인권 침해를 염려해서다.

무엇보다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은 교사들이 겪은 다양한 학교폭력 사례를 재구성해 학교폭력의 현실을 꿰뚫는 여섯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이 여섯 가지 에피소드에는 우리 시대 학교 폭력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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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양철북, 12,000원) .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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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신은 없다'에는 학급 친구들에게 학교폭력을 휘두르던 아이를 결국 폭력으로 제압한 교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말한다. "힘과 권위로 아이들을 제압해서 얻은 평화가 과연 올바른 것이었을까? 우리 반은 진정 폭력으로부터 벗어났던 것일까?

무방비 상태의 전쟁터, 끝도 없고 휴식도 없는 고통의 사각지대, 카오스의 교실, 누가 적군인지 누가 아군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혼란스러운 전쟁터에서 나는 어떻게 교사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야 될 지 막막하기만 했다"라고.

이밖에 '어느 파시스트의 학창 시절'이나 '김경태의 생존수칙' 등의 작품에서도 학교폭력의 유형이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교사나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라고 무릎을 칠 만한 이야기들이다.

그만큼 학교폭력은 구조화 돼 있고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다른 의미에서 이 책이 그만큼 학교폭력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교 현장에서 충분히 교본으로 삼을 만한 내용들이다.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의 전교조 본부 사무실에서는 이 책의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필명으로 자신을 낮춘 교사들도 이날만큼은 얼굴을 드러냈다. 그들은 인사말을 하면서 이야기를 엮어 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눈물을 짓기도 했고, 아이처럼 맑게 웃기도 했다. 기타를 준비해 와 스스로는 물론 함께 한 이들에게까지 노래로 위로의 인사를 건네는 이도 있었다. 매우 평화로웠다.

출판기념회가 열리기 두어 시간 전 이번 일을 기획하고 연구와 창작을 지도한 따사모 회장 김경욱 교사(단대부고)를 미리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경욱 교사는 이 책과 관련해 유일하게 실명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교사들이 나서지 않으면 학교 폭력은 처벌 등의 통제 장치를 만들어도 변화시킬 수 없다. 이 작품이 성공하면 우리의 사례가 성공하는 것이다."
▲ 김경욱 교사 "그러나 교사들이 나서지 않으면 학교 폭력은 처벌 등의 통제 장치를 만들어도 변화시킬 수 없다. 이 작품이 성공하면 우리의 사례가 성공하는 것이다."
ⓒ <교육희망> 유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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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의 문제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시중 매스컴은 선정적이기만 하다. 학교폭력에서 교사들은 배제되고 있다. 그러나 교사들이 나서지 않으면 학교 폭력은 처벌 등의 통제 장치를 만들어도 변화시킬 수 없다. 이 작품이 성공하면 우리의 사례가 성공하는 것이다."

-학교 폭력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1998년 무렵 수능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교실붕괴론이 등장했다. 학교 폭력이 사건화 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당시에는 학급붕괴, 교실붕괴가 눈에 들어왔지 학교 폭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튀는 행동을 하는 학생과 상담을 하게 됐는데 그 이유가 '인정 받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게 귀에 박혔다.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동기가 바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이들한테 물어봐도 그렇다고 했다. 학교 폭력이 인정 욕구와 연결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소설이라는 형태로 연구 결과를 정리했는데?
"처음엔 막연히 학교폭력 사례를 분석해서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한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거에 해결하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문예물 형식을 생각하고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딱딱한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대중적이며 사례 분석이 담지 못하는 여러 가지를 전달할 수 있어서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이라는 형태를 발견한 것이 의미의 돌파구를 열었다. 우리만의 독자적인 연구의 틀을 만들었다는 의미도 있다."

-책 제목이 재미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데 어떻게 지었나?
"처음 제목은 '○선생의 폭력 투쟁기'였다. 제목에 '학교폭력'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투쟁기'가 너무 무거워서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제목으로 출판사에 맡긴 결과다. 출판사가 열심히 빠져들어서 하더라. 고맙게 생각한다."

-4년 여에 걸쳐 썼다고 하는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집필한 선생님들이 힘들었던 부분이 나와 다를 텐데….  소설이라고는 한 번도 안 써본 사람들이, 집단 창작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모델도 없이 해나가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 그냥 고치고 또 고치면서 현실을 소설화해야 했으니까.

처음엔 희곡으로도 써봤다가 콩트로 써보기도 했다. 교사와 학생의 모습이 드러나야 하는데 글 쓰는 선생님들의 고통이 컸을 것이다. 이러다가 포기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런 소통과정이 4년 걸렸다. 글 쓴 선생님들 정말 고생 많았다."

-누가 이 책을 봤으면 좋겠나?
이 책을 기획한 '학생생활연구회'는?

학생생활연구회는 '자주적 삶, 실천, 탐구의 공동체'를 기치로 1999년에 출범했다. 학교 교육에서 공동체, 만남, 자치를 주제로 하는 학급 운영, 생활지도, 상담, 학생 자치와 청소년 단체 활동, 청소년 문화에 관심 있는 교사들이 함게하는 실천 연구 모임이다.

단행본 <학교를 살리는 학급운영>을 출간했고, 따돌림사회연구모임, 교실사회학모임, 학생자치,청소년 문화모임, 학급운영모임이 함께 하고 있다.
"이 책은 독립된 여섯 개의 단편으로 읽어도 좋고 연작소설로 읽어도 좋다. 청소년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학생 ․ 학부모 ․ 교사가 함께 읽고 소통했으면 좋겠다. 학교폭력을 다룬 교과서로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초판 3천 부 찍었는데 학교폭력이 사라지지 않고 교육체계가 변하지 않는 한 교사라면 무조건 읽어야하고 고민하는 학부모라면 역시 읽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교육 현실에서 그런 교사와 학부모는 계속 있을 수밖에 없다. 개학 무렵이면 초판이 다 팔리지 않을까?(웃음)"

-앞으로도 이런 소설 작업 계속 하나?
"교육문제를 모두 소설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교육 현실을 재미있는 소설로 퍼뜨렸으면 좋겠다. 이런 방식의 접근이 교육운동의 대중성과 저변 확대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에 계속할 마음은 항상 있다. 2학기에 '학교폭력매뉴얼'을 기획 ․ 제작해 각 학교에 배포할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이와 유사한 기사가 <교육희망>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학교폭력, #따사모 ,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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