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회 조사원’이 시누이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학교 선배인줄 알았는데 ‘아버지 밥을 안 해놓고 와서요··.’ 라는 대목에서 알았습니다.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대하기가 편했습니다.
 ‘사회 조사원’이 시누이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학교 선배인줄 알았는데 ‘아버지 밥을 안 해놓고 와서요··.’ 라는 대목에서 알았습니다.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대하기가 편했습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엊그제는 이른 저녁을 먹고 욕실에서 양치질하는데, 애교 넘치는 젊은 여성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를 찾아온 모양이었다. 도시 아파트도 아니고, 시골마을 단독주택 이 층, 그것도 전세를 살면서 가족 아니면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궁금했다. 

손을 씻으면서도, 교회와 하느님 얘기로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사람은 아닌지 우려가 되었다. 그래도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욕실을 나와 현관문을 열었더니,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왼손에는 서류가방을, 목에는 긴 줄로 된 '조사원증' 패를 걸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잠시나마 우려했던 게 기우로 변하면서 응답이라도 하려는 듯 웃음이 나왔는데, 그녀는 "안녕하세요. 몇 차례 못 뵙고 갔다가 오늘은 작심하고 왔는데 계셔서 다행이네요"라며 "여기가 박ㅇㅇ 댁이지요?"라고 물었다. 얼른 떠오르는 게 있어 "그분은 작년에 이사했어요"라고 하니까, 통계를 낼 자료이니까 대신 응해주셔도 된다고 했다. 

시청에서 시행하는 '사회조사'를 나왔다는 그녀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기도 전에 현관 바닥에 풀썩 앉았다. 보기와 달리 무척 소탈하게 보여,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스타일이어서 결혼하면 남편에게 사랑받겠어요!"라고 했더니 "어머, 애가 둘이고 서른다섯인데 미스로 보여요?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연거푸 숙이면서 활짝 웃었다.  

역겨웠던 '사회조사' 질의응답

민원서비스 만족도를 묻는 ‘사회조사’ 용지. 설문조사처럼 대표 가구를 선정해서 한다는데 정책에 얼마나 반영될지 의문이었습니다.
 민원서비스 만족도를 묻는 ‘사회조사’ 용지. 설문조사처럼 대표 가구를 선정해서 한다는데 정책에 얼마나 반영될지 의문이었습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국민의 생활수준 관련 정책 및 연구의 기초자료에 쓰려고 매년 실시한다는 '사회조사'는, 문화생활·여가, 사회참여도와 복지, 소득과 소비, 노동 등 국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 관심사를 객관식 문답으로 이어졌다.

생년월일, 가구주와의 관계에 이어 2008년 7월부터 2009년 6월까지 공공기관을 방문해서 받은 민원서비스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냐고 물었다. 그러나 듣는 순간 용산참사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대통령 얼굴이 떠올랐고, 역겨워서 대답하기가 싫었다.

1년 동안 정치후원금을 제외한 후원금 액수, 종교단체, 스포츠 및 레저단체, 환경단체, 봉사단체 등에 가입해서 활동하는지를 묻는 내용도 있었는데,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단체의 간부를 검찰에 고발하고 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던 경찰의 만행도 떠올랐다.  

하루에 TV를 시청하는 시간과 독서, 부부 여가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묻기에, "수입을 별로이지만, 어쩌다 한 번씩 가까운 관광지에 다녀옵니다"라고 했더니 "주거 환경도 참 좋고, 두 분이 행복하게 사시는 것 같아요"라며 덕담을 해주어 상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사회 경제적 지위(소득, 직업, 교육, 재산 등을 고려)는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는지 '상, 중, 하'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하기에 "2천만 원 전세에 사니까 당연히 '하'에 속하지요"라고 했더니 "이렇게 잘 사시는데요!"라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해서 서울에서 10억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서민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따졌더니 "5백만 원 월세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라며 겸연쩍어했다.  

30대 중반 주부와의 대화

살아온 얘기를 하는 중에 어머니가 나오니까 잠시 먼 산을 바라보는 ‘사회 조사원’.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살아온 얘기를 하는 중에 어머니가 나오니까 잠시 먼 산을 바라보는 ‘사회 조사원’.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인터뷰를 마치고 서류를 챙기기에 "다 끝났으면 이번에는 제가 조사를 합시다"라고 했더니, 자신 있게 "예, 뭐든지 하세요"라며 웃었다. 그러나 금방 표정이 바뀌면서 "무슨 조사인데요?"라고 물었다. 내용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어서 물어보려고요. 사실은 제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거든요. 요즘처럼 어려운 때 열심히 살아가는 댁 같은 분들 얘기를 독자에게 전하고 있어요. 그런데 조금 전 전화를 엿들으니까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도, 시누이와 다정하게 통화하는 모습이 제 마음을 끌었습니다. 미인이신데 가능하다면 사진도 찍어서 올리고 싶네요."

사진을 올리고 싶다고 하자, 놀란 토끼 눈을 하더니 "아유~ 안 돼요, 안 돼!"라며 적극적으로 사양했다. 그래도 친구에게 말하듯 억양이 살가워 부담이 없었다. 기사를 복사해두었다가 훗날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도 선물이 될 것이라며 옆모습도 안 되느냐고 했더니, 그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면서 기사를 확인하는 방법을 묻기에 명함을 한 장 건네주며 대화를 시작했다. 

- 결혼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요. 예술계통 전문직이나 교직에 근무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일 저런 일 안 해본 게 없어요.(한숨) 빵집 아르바이트에서 택시회사 경리과 직원, 그리고 정식 발령은 못 받았지만, 은행에도 다녔어요. 오래 다니면 정식 직원이 된다는 희망이 있었지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생활이 변하니까 생각지 못했던 고민이 생기더군요."

- 남편은 어디에 근무하고, 어떻게 결혼했는지도 궁금하네요.
"지금 직장에 다니는 남편에게 콩고물이 씌어서 시집을 갔어요. 친정어머니도 40대 초에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는데, 시어머니가 안 계시는 집으로 시집갔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어머니 복이 없는 모양이에요."

- 은행에 계속 다녔으면 좋았을 것을 왜 그만두셨어요?
"지금 11살, 10살 먹은 두 아들이 있는데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월급과 보육원 비용을 비교해보니까 그게 그거였고, 시아버지도 모셔야 했기 때문에 그만뒀지요. 친정어머니든 시어머니든 한 분만 있었어도 계속 다니면서 지금쯤은 정식 직원으로 발령받아 남보란 듯이 근무하고 있을 텐데···."

- 형제는 몇이나 되나요?
"아까 말했지만,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위로 오빠가 둘인데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지만 제가 힘들 때 많이 도와줘서 좋은데, 여자 형제가 없어서 서운해요. 그래도 올케언니가 무척 잘해주세요. 조림도 해놓고 김치도 담가놓았으니까 가져가라는 전화가 시시때때로 오거든요. 그렇게 올케 언니들이 잘해주어서 만족합니다. 주변 분들에게 힘을 얻어 아무리 발버둥치고 해도 안 되는 걸 보면 저는 운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노력하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머니 복이 없는 모양이라고 했을 때는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회갑잔치를 했던 아버지가 급우들에게는 할아버지뻘이었던 게 평생 한으로 남는데, 일찍 돌아가셨으니 오죽했겠는가, 엄마와 정답게 걸어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회한의 눈물을 삼켰을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류가방에서 예쁜 봉투를 하나 꺼내주었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재래시장에서 사용하는 5천 원짜리 상품권이에요. 행복하고 건강하고 재미있게 사세요!"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너무 늦은 것 같다며 계단을 바삐 내려갔다. 이름도 모르는 30대 중반 주부의 꿈과 소망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와 한겨레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어머니, #사회조사, #30대주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