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물은 생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당연하고 단순한 듯 들리는 말이지만 이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주는 표현이나 비유는 미처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잘은 몰라도, 외계나 우주의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있을까 연구하는 학자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대목도 그 행성에 물이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라고 하지요.

 

그만큼 물은 생명을 키워내는 바탕인 셈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물이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 무척 많습니다. 지구 표면의 71%가 물이고 그 양이 13억8500만㎦이라고 하니, 보통사람의 머리로는 상상으로도 가늠하기 힘들 만큼의 양입니다.

 

그 중 97%가 짠물, 그러니까 바닷물이고, 2%는 빙하나 빙산 형태로 있다고 하네요. 결국 1%만이 강과 호수 등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담수로 존재하고, 또 그 중 대부분도 지하수로 존재한다고 하니, 담수를 먹고 살아야 하는 인간으로서는 정말 귀하고 또 귀한 '물'인 셈입니다.

 

물이 담수를 먹고 살아가는 많은 생명들에게 다가가는 주된 방법은 '비'가 되어 떨어지는 것입니다. 도랑물도 계곡물도 강물도 지하수도 모두 '빗물' 아닌 것이 없으니, 풀도 나무도 산짐승도 물고기도 비가 내려야 살 수 있지요.

 

인간에게 이 '빗물'은 더욱 중요합니다. 농사도 지어야 하고 밥도 지어 먹어야 합니다. 목욕하고 빨래하고 공장도 돌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물이나 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안심하고 쓸 수 있을 만큼 수질이 깨끗해야 '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빗물'은 아주 양호한 편입니다.

 

그런데 비도 적당히 내려야 '생명수'라 부를 텐데, 요즘처럼 너무 많이 내릴 때는 오히려 공포로 다가옵니다. 산을 무너뜨려 집을 덮치고 성난 물길이 마을을 덮치기도 해 생명을 앗아가는 수가 많습니다.

 

때로는 비가 너무 내리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하지요. 빗물이 없으면 당장 마실 물을 구하기도 힘들지만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야말로 큰 난리가 나겠지요.

 

그래서 인간은 빗물을 가뒀다가 적당한 때에 쓰기로 하고 저수지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큰 효과를 봤지요. 비가 한참 내리지 않아도 저수지 아래 몇 개 마을이 넉넉히 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생활환경이 달라져 물 씀씀이가 헤퍼지니 저수지만으론 부족했습니다. 점점 더 큰 저수지를 만들었고, 결국 몇 개의 도시가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큰 '댐'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물을 더 헤프게 쓰고 더럽혔습니다. 또 그럴수록 더 물을 독점했습니다. 다른 많은 생명들의 사정은 무시됐지요.

 

맑은 물을 찾아 댐은 더 깊은 계곡으로 들어갔고 지하로 흐르던 물도 억지로 세상 구경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강과 하천은 죽어 갔습니다. 먹는 물에는 신경을 많이 쓴 반면 버린 물에는 신경을 덜 쓴 결과였지요.

 

경남 서부지역에서 최근 겪고 있는 '댐 논란'은 이런 맥락 속에 진행되는 일입니다. 낙동강이 주는 크나큰 축복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는 물을 두고 멀리 있는 지리산 계곡물을 먹겠다는 생각이 그 출발점입니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낙동강 상류에서 진행된 각종 개발과 그로 인해 수질이 나빠졌던 점이 배경으로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강을 포기하면 안 되겠다는 뼈저린 반성 아래 '낙동강 수질 개선 사업'이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과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MB정부가 '낙동강 살리기 사업'을 새롭게 꺼냈습니다. 이쯤 되면 '이번에야 말로 낙동강이 정말 살아날 수 있겠구나'하고 기대를 걸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낙동강을 포함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놓고 요즘 말들이 많지요. '진짜 강을 살리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가' 의심이 깔려 있는 탓이 큽니다. 아마도 대규모 보를 많이 만들고 강 주변을 개발하는 내용이 중심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산광역상수원사업'을 목표로 '남강용수증대사업'이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부산으로 물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남강댐 물이 부족했기에 '댐에 물을 더 가두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홍수위험에 대비해 사천만으로 물을 더 내려 보내겠다'는 계획이 이들 사업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남강댐 상류인 함양이나 산청에 댐을 하나 더 짓겠다는 계획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수 십 조 원의 예산을 들여 낙동강을 살리겠다고 하면서 정작 낙동강을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지리산 물을 먹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우스운 것은 낙동강 살리기는 4~5년 계획인 반면 부산광역상수원사업은 10년 가까이 걸린다는 점입니다.

 

이러니 누가 봐도 현 정부의 '낙동강 살리기'는 그저 '사업'일 뿐, 그 결과로 '진짜 낙동강이 살아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서부경남 주민들과 환경단체에서 이런 주장을 펴니까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예비타당성 연구용역조사를 진행하고 있던 '남강댐용수증대사업'은 쏙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 대신 '남강댐치수증대사업'이 불쑥 태어났습니다.

 

이를 '배 다른 형제'로 봐야 할지 아니면 '배아 복제품' 쯤으로 봐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기존의 사업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경 설명이 조금 다른데, '접시모양으로 생긴 남강댐이 갑작스런 폭우에 홍수조절기능이 취약하므로 사천만 쪽으로 비상방수로를 하나 더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또 한 번 웃깁니다. '1만 년 빈도'에 대비하겠다는 게 수자원공사와 국토해양부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1천 년도 아니고 1만 년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 비면 댐은 남아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아무도 안 남아 있을 것"이라며 혀를 찹니다.

 

흔히들 "수요가 공급을 낳는 시대를 지나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며 시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곤 합니다.

 

이것의 바탕에는 성장 중심, 경쟁 중심의 사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고가 국가경영철학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사회기반구축'이란 이름으로 얼마든지 공급이 수요를 부추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 비가 '많이' 또 '자주' 내리다 보니, 발걸음이 사천만으로 자주 향합니다. 사천만에는 국내 유일의 인공방수로가 뚫려 있어, 큰 비가 올 때면 침수피해와 어장피해가 잦은 곳입니다. 심지어 염도가 '0'에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문득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물고기들을 만났습니다. 붕어를 비롯한 담수성 어류가 짠물을 피해 민물이 흘러드는 좁은 어귀에 몰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남강댐물이 방류될 때 함께 떠내려 왔을 이들은, 작은 물줄기를 찾아 여기로 모였나 봅니다. 물줄기를 타고 오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힘을 쓰기에 물은 너무 얕고 세차 보입니다.

 

이들에겐 정말 물은, 더 정확히는 '민물은 곧 생명'입니다.

 

정말 물을 아껴 쓰고 싶습니다. 또 가까이 있는 물을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겉으론 물을 아껴라 하면서도 물을 많이 쓰라고, 더구나 멀리서 보내주는 물을 쓰라고 끊임없이 부추기지는 않는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뉴스사천, #물부족, #경남사천, #생명, #물정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은 언론, 작은 이야기... 큰 생각, 큰 여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