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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자를 위해 영원히 광채를 뿜어낼 수 있다는 감격
'야간비행'의 선택은 그래서 결코 후회스럽지 않다.

그들이 날아가는 길에는 별들이 깔려 있다.
-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중에서

#1. 세 번째 프로포즈

남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낡은 지도를 꺼내 콕, 찍은 곳은 검은땅 아프리카였다.
▲ 아프리카 남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낡은 지도를 꺼내 콕, 찍은 곳은 검은땅 아프리카였다.
ⓒ 김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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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사직서는 여행에게 보내는 나의 세 번째 러브레터다. 첫 번째 동남아시아를 향한 지독한 사랑 때문에 던졌던 사직서는 돌아와 다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주었고,
두 번째 남아메리카를 위해 던졌던 사직서는 돌아와 다시 어떤 글이든 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돌아와 남아메리카 여행 책을 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흩뿌렸던 여행기획안은 빛을 발하진 못했지만 일할 회사를 내게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또 다시 쓰기 위해 세 번째 사직서, 그 아름다운 러브레터를 써냈다. 정규직임에도 2년마다 한 번씩 자발적 비정규직 행세를 하는 내가 이번에 가는 곳은 아프리카. 남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낡은 세계지도에 매직을 콕 찍었던 역삼각형의 검은 대륙.

#2. 나만 즐거운 여행은 이제 그만

이 아이들이 먼저 내게 손 내밀어준다면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 텐데.
▲ 아이들 이 아이들이 먼저 내게 손 내밀어준다면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 텐데.
ⓒ 김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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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에 점을 콕 찍은 지 2년 2개월 만에, 오랫동안 그리던 아프리카로 떠나게 되었다. 나의 세 번째 여행은 왠지 이기적인 마음은 내려놓고 싶었다. 나만 즐거운 여행 말고, 남도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잘 하는 것은 무엇인가. 놀기! 그중에서도 어른보다는 좀 더 수준이 맞는 애들하고 놀기! 그래서 신기하게도 같은 날 출국하는 또 다른 '애들하고 노는 것 좋아하는' 세 명의 여자와 함께 아프리카로 떠나게 되었다.

결혼보다 아프리카 가는 것이 더 쉬웠던, 애인도 없는 30대 여자 넷은 과연 처음 밟는 땅, 케냐와 탄자니아와 말라위에서 어떻게 놀 것인가!

여기서 잠깐, 그녀들을 간략히 소개한다. 나이 순이 이제는 서러운 그녀들을 위해 가나다순으로 소개한다.

강명신.
까만 땅콩. 초등학교 영어 교사. 쉽지 않은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으로 인해 에너자이저라고 불린다. 각종 타악기를 짊어지고 가 검은 땅의 아이들에게 공연과 즐길 수 있는 음악거리를 제공해줄 예정.

박진희.
니콜키드박. 출판사 기획편집자. 3일 전 부모님께 아프리카 행을 통보. 다음 여행엔 '찌질'하게 혼자 안 가겠다는 약속을 한 뒤 극적 협상타결. 귀국해서는 아무나와 결혼을 해야 할 지경. 아프리카에서의 역할은 착한 이모 역할. 폴라로이드 사진 찍어주기, 알사탕 주기, 축구공 나눠주기, 월드비전에서 후원하고 있는 말라위 아이 보러가기.

조정아.
두부. 오르프 음악교육 전문 교사. 검은 땅 아이들에게 차분하고 괜찮은 음악 선생님이 되어줄 예정. 프리랜서로 4년간의 노력끝에 얻는 돈줄들을 내려놓기 힘들어 매우 짧은 일정으로 가지만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악기까지 구입한 열정의 소유자.

조희경.
조흭. 의류 VMD. 현재는 백수. 아프리카 오기 전 굴욕의 영어 면접을 보고 더욱 낯두꺼워진 엄청난 유머의 재능을 몸에 지니고 있는 여자. 검은 땅 아프리카에서 그녀가 하는 일은 아이들의 얼굴에 그림 그려주기, 고불고불 머리에 머리핀 꽂아주기, 매니큐어 발라주기

#3. 우리는 네 명이지만 백 명이다


이 표정만 봐도 우린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가기 전부터 느낄 수 있다.
▲ 천국의 사람들 이 표정만 봐도 우린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가기 전부터 느낄 수 있다.
ⓒ 김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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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남미 여행과 같은 두 달 일정이지만 짐은 몇 배가 더 무겁다. 짐이 나를 들고 갈지, 내가 짐을 들고 갈지 모를 정도이긴 하나 내 짐은 많이 줄이고 그곳 아이들을 위한 선물들이 든 짐을 보니 마치 내가 산타클로스가 된 기분이다. 알사탕, 크레파스, 그곳 아이들이 환장한다는 축구공, 매니큐어, 풍선, 비타민. 네 명이 가는 거지만, 알음알음 주위에 후원들을 통해 꽤 많은 선물이 모였다. 우리는 아이들이 손을 내밀면 쥐여주기만 하면 된다.

# 4. 결과는 상관없다

내가 아프리카를 가겠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딱 두 가지 반응이었다.

1. 그곳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좋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
2. 그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요소를 생각하는 사람

물론 2번 유형의 사람이 98%이긴 하지만 2번 유형의 사람들은 일단 "너, 왜, 근데, 아프리카니?"라는 대답하기 참 곤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나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가고싶은 건데. 뭔가 거창한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떠듬떠듬 뭔가 변명처럼 아프리카에 가는 이유를 설명하면 그들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본격적인 걱정을 안겨주기 시작한다.

- 거기엔 온갖 종류의 벌레가 있을 거야.
- 냄새도 엄청나대.
- 너도 막 코걸이 같은 거 해야 되는 거 아니야?
- 사자가 너 잡아먹으면 어떡할거니.
- 모기는 또 어떻고.
- 우가우가 추장 세 번째 마누라 되는 거 아니야?

현실적인 면부터 시작해서 무식해보이지만 창의적인 비현실적 걱정까지. 각양각색의 걱정거리를 풀어놓는다. 내 입에서 "아, 그렇다면 가지 말아야겠어"라는 말이 나와야만 끝날 것처럼. 물론 나도 처음 가보는 곳인데 어찌 무섭지 않겠느냐마는, 그렇다고 그 사소한 걱정들이, 나의 사랑스러운 세 번째 대륙을 포기하게끔 만들진 않는다.

친구 되기. 그 목적 하나 가지고  21일 오늘, 밤 9시 케냐 나이로비에 나를 떨어줄 비행기를 타러 간다. 그리고 나이로비에 남자 꼬맹이만 스무 명이 있다는 고아원을 방문한다.

투비 컨티뉴

글.  니콜키드박
사진. 동안교회 암미아프리카 12기 김나래 외


태그:#여행, #아프리카, #검은 땅, #사랑,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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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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