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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대단하다 할 밖에… 내가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이렇게 흘려본 적이 없다. 그것도 뜨거운 눈물을…."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도대체 무슨 영화기에 저렇게 극찬을 하는 걸까. 제목을 말해준다. '킹콩을 들다'라고. 제목만 봐선 외국영화 '킹콩'을 연상케 한다. 무슨 그렇게까지나 눈물을 흘리게 할까 싶었다. 지인의 과도한(?) 감정 표현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 영화 볼 때 손수건을 필히 지참해야 됩니다."

 

"얘들아 영화보러 가자"

 

지인의 이런 충고(?)에 왠지 그 영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좋은 것이 있으면 함께 나누는 걸 좋아하는 나로선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안성 일죽에 흩어져 사는 우리 '더아모의집(마을청소년 의사소통 공간)'아이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당장 '더아모의집' 홈페이지(http://cafe.daum.net/duamo)에 공지하고 연락을 취했다.

 

"얘들아, 영화 보러 가자. 누구의 소개에 의하면 정말 웃기고 정말 울리는 영화래. 영화 보러 갈 때 손수건도 준비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이런 연락을 받은 청소년들도  모두 '뭐 그렇게까지'라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우리 '더아모의집'의 장애우 친구 거울왕자 박완채(20·근이영양증)와 그의 엄마에게도 연락했다. 어쨌든 바깥바람을 쐰다는 것 때문에 두 사람은 정말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완채는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있고, 완채 엄마는 그를 간호해야 되니 말이다.

 

드디어 그날(지난 18일)이 되었다. '더아모 15인승'으로 일죽에 사는(더아모의집이 있는 금광면에서 일죽까지 20분 소요) 청소년들을 하나 둘 태웠다. 마지막으로 완채와 완채엄마를 태웠다. 완채를 한 번 외출시키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완채엄마는 미리 준비해야 될 것도 많다.

 

완채 집에 도착하니 완채가 입이 실룩실룩 거린다. 기분 좋다는 완채 특유의 표시다. 이런 때 완채가 더 기분 좋은 것은 오랜만에 여학생들을 보는 기쁨 때문이다. '더아모의집' 여학생뿐만 아니라 거리에 다니는 여학생까지도. 완채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좋은 청춘이 아니었던가.

 

'거울왕자'를 한 번 외출 시키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

 

먼저 트렁크를 열어 접이식 침대와 합판을 차에 싣는다. 다음엔 운전석 바로 뒤에 있는 의자에 두툼한 이불을 깐다. 최소 2명 이상이 두툼한 이불위에 누인 완채를 들어 나른다. 이 때 차문을 미리 열어 놓는 것은 기본이다. 완채를 차에 실을 때는 다리가 안쪽, 머리는 바깥쪽을 향하게 해야 한다. 힘을 써서 완채를 의자에 안착시키면 그제야 출발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서로가 재잘재잘 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평소 영화관람 같은 문화생활을 전혀 즐기지 못하는 문명주 아줌마(62·독거노인)도 좋아한다. 완채도 완채 엄마도 한껏 들떠있다. 차 안은 행복한 공기로 충만하다.

 

안성에는 마땅한 영화관이 없어서 20분을 달려 도착한 평택 CGV영화관. 영화 화면이 크다는 이유로 선택한 영화관이다. 작년 천안 야우리 영화관(대형화면)에서 '화려한 휴가'를 같이 보고 감명 받았던 그 느낌을 되살려 보고자 함이다.

 

며칠 전부터 완채의 침대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느냐, 침대로 이동할 수는 있느냐는 등의 문의를 영화관에 해온 터다. 제대로 이루어질지 염려되었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완채의 침대가 맨 앞자리에 안착했다. 완채는 좌석이 아닌 본인의 이동침대 위에 누워서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참으로 다행이다. 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했는데. 이 영화관이 입장이 안 되면 다른 영화관을 가려고 전화번호랑 영화상영 시간까지 미리 알아놓고, 영화관 사정도 알아 놓았는데.

 

"선배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 떡이 생기는 데..."

 

영화 시작이다. 확실히 대형화면으로 보니까 감동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긴 하나보다. 처음엔 우리 모두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신들의 학교에서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이야기들이 다뤄지니 우리 청소년들도 공감하는 웃음이 터질 수밖에.

 

주인공 이지봉(이범수 분)이 시골 여중학교 역도부 감독으로 부임했고, 역도부원을 모으는 교감선생이 역도부원이 모이지 않자 학교 방송을 통해 뚱뚱한 여학생들의 몸무게를 공개하며 역도실로 오게 하는 장면에선 웃음폭탄이 제대로 터졌다. 이어서 역도연습 광경을 시찰하러온 교육장을 상대로 역도부원과 함께 가상 시뮬레이션을 만드는 장면에 가서는 완전 웃음바다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킥킥거리거나 아예 대놓고 웃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영화 제목에 왜 '킹콩'이 들어가는지 알게 되는 부분부터는 눈물의 서곡이 시작되었다. 역도선수였던 주인공이 심장병으로 인해 통증이 올 때면 가슴을 쿵쿵거렸기에 역도부 제자들이 붙여 준 별명이었다. 갈 곳이 없는 한명의 제자를 위해 학교에 기숙사를 짓도록 요구하는 주인공의 마음 씀은 참으로 따스했다. 제자들의 장단점을 너무나도 잘 알아서 그 부족한 부분을 일일이 신경 써 주는 주인공 교사의 세심함이 참으로 고마웠다. 가난해서 꿈조차 꿀 수 없는 여중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힘을 불어 넣어주는 '이지봉'의 열정이 참으로 눈물겨웠다.

 

제자들이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결국 심장병으로 죽게 되는 '이지봉'. 그의 주검을 담은 꽃상여를 그의 제자들이 메고 갈 때는 가슴이 메어지는 듯 했다. 특히 그의 제자들이 그의 상여를 메고 가다가, 갑자기 상여를 역기 들어 올리듯 번쩍 들어 올릴 땐 압권이었다. 극장 여기저기서 '꺽꺽'하는 소리가 들렸다. 울음을 참느라, 눈물이 복받쳐 오르느라.

 

"누구나 금메달을 따는 것은 아니다. 비록 금메달을 따지 못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 사람이 바로 '금메달 인생'이다"라는 주인공의 메시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명대사였다.

 

'더아모의집' 상황과 맞물려 감동은 두 배로.

 

이 영화가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우리 '더아모의집' 청소년들 때문이리라. 편부 가정, 맞벌이 가정, 장애인 가정 등 가난한 형편이 대부분인 '더아모 아이들'.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고자 올해 말에는 '필리핀체험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에선 '킹콩' 들었지만, 우리 '더아모의집'은 가끔 '거울왕자'를 들곤 한다. 어쨌든 '더아모의집' 상황과 맞물린 듯하다. 

 

영화가 끝나자 모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울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얼굴을 서로 마주치려 하지 않은 모습도 우스웠다. 완채엄마는 완채를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인생 살면서 이토록 울리는 영화는 처음이었다는 명주아줌마. 모두는 무슨 크나큰 일을 이루어낸 얼굴들이다. 사실 웃다가 울다가 하면 어디에 털 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영화관람 선배'의 말을 들을 걸. 손수건 필히 지참해서 보라던 말. 손으로 눈물 훔쳐내느라 꽤나 힘들었는데. 역시 선배 말을 들으면 자다가 떡이 생긴다는 명언(?)을 무시한 대가인 듯. 그래서 그 말을 그대로 '영화관람 후배'님들에게 돌려준다.

 

"이 영화 보러 갈 때 손수건 꼭 지참하세요."

덧붙이는 글 | '더아모의집'이란 '더불어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임의 집'의 준말이다. '문명패러독스'와 '모든 종교의 구라다'의 저자인 송상호가 안성 시골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마을 청소년들의 의사소통과 휴식과 체험 등 더불어 사는 연습을 하는 마당이기도 하다. 


태그:#킹콩을 들다, #더아모의집, #거울왕자,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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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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