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부지> 포스터.

영화 <아부지> 포스터. ⓒ 주연이엔디

이른 아침, 눈보라가 몰아치는 신작로를 따라 소달구지를 타고 아버지와 아들이 말없이 걷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보다 아낀 소를 팔러 가고 아들은 중학교 시험을 보러 가는 길입니다. 소를 팔러 가는 아버지가 아들을 시험 보는 곳까지 태워다 줍니다. 이것이 아버지와 누렁이의 마지막 길이란 것을 아들은 모릅니다. 아버지가 자식들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소 누렁이를, 자신을 위해 팔러 간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들의 표정과 아버지의 표정은 같은 것 같으면서 사뭇 다르게 영화의 마지막 화면을 장식합니다.

소달구지가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고 화면이 멈출 때까지 아내와 난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냥 일어서기엔 허전함과 그리움,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눈보라 속을 걸어가는 누렁이의 걸음처럼 저벅저벅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내의 눈가에 이슬이 고여 있습니다. 그 커다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사람은 아내와 나, 단 두 사람이었습니다만 그 울림만은 에밀레종소리처럼 은은하게 오랫동안 울려 퍼졌습니다. 눈가의 이슬을 감추고 아내가 한 첫 마디는 "우리 아이들 데리고 와서 함께 볼 것인데 잘못했나봐"였습니다. 난 그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한 번 더 보지 뭐. 애들이랑."

아내가 나에게 아이들과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한 것은 단순한 감상 때문만이 아닙니다. 요즘 아이들은 영화가 재미없으면 절대 안 봅니다. 그런데 영화 <아부지>는 웃음 한 보따리의 재미도 있고, 감동의 눈물 한 줌도 있고, 아프디 아픈 마음 한 소쿠리도 있는 영화란 것이지요.

얼마 전에 화제가 됐던 영화 <워낭소리>가 소와 함께한 한 노인과 소의 삶을 다룬 다큐형식이었다면 영화 <아부지>는 70년대 우리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금의 농촌의 현실을 은연중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 활달한 웃음과 찐한 눈물, 쓰린 아픔 등을 버무려 놓았지요. 그리고 농촌에서 자랐을 사람들 앞에 추억을 한 보따리나 풀어놓고 코 훌쩍거리며 뛰놀던 친구놈들도 떠오르게 만듭니다.

우리 아버지와 똑닮은, <아부지> 속 아버지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아버지는 아들을 소달구지에 태우고 중학교 시험 장소에 데려다준다. 소와의 마지막 길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아버지는 아들을 소달구지에 태우고 중학교 시험 장소에 데려다준다. 소와의 마지막 길이기도 하다. ⓒ 주연이엔디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릿속에 오버랩 되는 건 내 아버지와 동생이었습니다. 팔순이 훌쩍 넘으신 아버지는 아직도 삽을 들고 물꼬를 보러 논에 가십니다. 동생은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10여 전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동생은 동네에서 가장 젊은 농사꾼입니다. 그 위로 젊은 층이 50대 후반과 60대 초반입니다. 그것도 몇 사람 안 남았습니다. 도시에선 70살이 넘으면 노인네 취급을 받지만 사람 없는 농촌에선 한창 일해야 할 일꾼입니다.

모내기철인 5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직도 농촌엔 품앗이 같은 게 남아 있는데 동생네 모판 작업을 할 때 올해 일흔이 넘은 노인(아니 일꾼들) 다섯이 일손을 도우러 왔습니다. 그때 기벵이 아저씨란 분과 다른 분들이 이런 말들을 주고받았습니다.

"한 5년 지나면 고샅이 휑 헐거여."
"먼 말인가?"

"먼 말은? 지금은 우리거튼 늙은이도 손깨락을 꼼지락대고 있지만 그때 쯤 되면 다 갈 거 아닌개벼. 북망산 안 가면 지팽이 집고 먼 산이나 바라보던가."
"허기사. 이젠 빈 집만 남아 거미줄 치겠지."

"니미럴. 옛날이나 지금이나 농사꾼은 매번 죽는당께. 늘어나는 건 얼굴의 검버섯과 빚밖에 없당께."
"자자, 그만 허더라구. 모판에 싹 안 날라. 막걸리나 한 잔씩 허구."

그날 아버지는 막걸리를 얼큰하게 드셨습니다. 늘 소주만 드시던 아버지는 오랜만에 막걸리는 드시면서 '옛날엔 막걸리 뱃심으로 일혔는디 말이여'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습니다.

영화 속 아버지(전무송 분)와 내 아버지는 같은 면이 너무 많습니다. 평생 '흙'과 '농사' 밖에 몰랐던 점은 아주 똑 닮았습니다. 영화 속 아버지는 "농사꾼은 농사만 잘 지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한글만 깨쳤으면 됐지 공부는 무슨 얼어 죽을 공부냐"고 노발대발 합니다. 한 마디로 농사밖에 모르는 고집불통의 아버지입니다. 자식들 공부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내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지긋지긋한 농촌을 떠나자고 하면 아버진 "떠나긴 어디로 떠나. 떠날라면 니 에미 데리고 너그들이나 가라, 난 이곳에서 죽을랑게'하고 역정을 왈칵 내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뒤돌아서서 "으이구 저 고집불통, 누가 말릴 꺼냐 저 고집을…" 낮은말로 혀를 차곤 했습니다. 아버진 그 소릴 듣고도 못들은 척 하고요.

그 옛날, 아버지에게 소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영화 <아부지>의 한 장면.

영화 <아부지>의 한 장면. ⓒ 주연이엔디


영화 <아부지>의 배경은 1970년대 어느 평화로운 농촌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정지용의 시 '향수'에 나올법한 그런 동네입니다. 70년대면 나 또한 초등학교에 다닐 때입니다. 지금의 농촌과 비교하면 구정물이 줄줄 흐르도록 가난한 때입니다. 그렇지만 욕심 없이 한 뙈기밖엔 안 되는 논을 붙여먹으며 이웃끼리 정을 나누며 살 던 때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엔 그때 풍경이 짧지만 인상 깊게 나옵니다. 책벌레 기수가 소꼴을 먹이다 친구들과 놀러가거나 반딧불을 잡는 장면은 농촌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했던 일입니다.

옛날엔 지금처럼 소를 많이 키우지 않았습니다. 한 집에 한두 마리 키웠지요. 소는 집안의 일꾼입니다. 소는 장정 서너 몫은 거뜬히 해치운 일꾼입니다. 소가 없으면 봄 밭 갈기부터 가을 수확까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는 일꾼이면서 피붙이 같은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칫 자식의 학비가 모자라면 그것을 대주는 존재이기도 했으니, 소를 재산 목록 1호라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시골 들녘이나 제방에 메어있는 소들을 보면 소꼴을 베고, 소를 몰고 오다 냇가에서 소 등목도 시켜주고 쇠파리도 잡아주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정이 들었던 소를 돈이 급해 파는 날이면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평범하지만 내 아버지 얘기이기도 한 걸

사실 <아부지>라는 영화의 줄거리는 평범합니다. 무슨 거대하고 극적인 플롯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물론 농사밖에 모르는 아버지와 공부를 무지하게 하고 싶은 아들 사이에 작은 긴장감이 있기도 합니다. 또 농촌의 비참한 현실에 부딪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형의 죽음도 하나의 극적 요소라면 요소겠지요.

그렇지만 영화에서 형의 죽음은 아버지의 슬픔과 아픔을 드러내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사건의 핵심은 아니란 것이지요. 그렇지만 형을 땅에 묻은 후 세상의 모든 것을 잃은 듯 밭두렁에 멍하니 앉아 있는 아버지의 표정은 그 당시 가난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아들을 잃고 가슴을 쥐어뜯는 아버지 등 뒤로 흐르는 이 노랫소리가 왜 그리 아프게 들리는지요. 아들을 죽게 한 건 그놈의 가난인데, 그 가난을 아버지는 아들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고 아들은 그게 징글맞도록 싫어 결국 세상을 버린 것이지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는 현실이 원망스러워도 원망스럽단 말 한 마디 못하고 남몰래 눈물을 흘립니다.

아내가 눈물을 흘렸던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어떤 이들은 영화 <아부지>가 감성을 자극하여 눈물샘을 솟게 한다고 말하더군요.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당시 우리 아버지들은 자식들을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안 했습니다. 늘 뭐라고 혼내고 잔소리만 해댔지요. 그러면서도 아버지들은 뒤로 돌아서서 아무도 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영화 속 아버지처럼 말이지요.

"농사 안 짓고 살려면, 열심히 공부혀라"

 영화 <아부지>의 한 장면.

영화 <아부지>의 한 장면. ⓒ 주연이엔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화 장면 중 하나인 아이들의 연극 속에 다 있습니다. 바쁜 농사철에 일손은 돕지 않고 기수 담임 선생님(박철민 분)과 아이들이 연극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기수 아버지(전무송 분)와 동네 사람들은 "별지랄 다하고 있네, 쳐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뭔노무 광대 짓이여!"하며 학교로 들어 닥쳐 연극 연습 중인 아이들을 데리고 갑니다. 그렇지만 선생님과 아이들은 연극을 무대에 올립니다.

젊은이들은 희망이 없다며 모두 떠납니다. 농촌엔 늙은 것들만 남습니다. 그런데 조합에선 대출빚을 갚으라고 성화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절망적인 농촌 현실을 감독은 절묘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농사 지을 젊은 사람이 없는 농촌은 더 이상 '살아있는' 곳도 아니고 희망도 없습니다. 남은 노인은 절망감에 농약을 마십니다.

"누군 좋아서 농사짓는 줄 아나. 할 수 있는 게 농사밖에 없응게 그러지."
"담 세상에선 우리 쇠죽 같은 건 끓이지 마세."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난 자식들이 늘 들었던 소리가 있습니다.

'너그들은 애비 애미처럼 농사 같은 건 짓고 살더렁 말아라. 농사 안 짓고 살려면 열심히 공부혀라. 알것냐.'

이 소리입니다. 이 소린 농사란 것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농사 말고 다른 일을 하라는 소리였습니다. 오랫동안 천대만 받는 농사꾼의 푸념도 들어있었을 것입니다. 영화는 아이들의 연극을 통해 이런 농촌의 비참한 현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 옛날 우리들의 '아부지'를 만나고 싶다면

 "누렁아 니가 우리집 농사 다 지어불었는디"

"누렁아 니가 우리집 농사 다 지어불었는디" ⓒ 주연이엔디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아내가 뭘 그리 오랫동안 쓰나, 하고 기웃거립니다. 딸아이도 덩달아 기웃거립니다. 그런 딸아이를 보고 아내는 "너도 이 영화 꼭 봐야 해"라고 합니다. 아내는 아직도 우리 둘만이 본 것이 못내 아쉬운가 봅니다.

다시 영화이야기로 돌아가면, 영화의 시작과 끝은 소입니다. 기수가 책을 보면서 소를 보는 장면이 처음이라면 아들(기수)을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소달구지를 타고 아들과 아버지가 눈보라 속을 가는 장면이 마지막입니다. 전날 늦도록 술만 마시던 아버지는 새벽에 일어나 소와 작별 인사를 나눕니다.

"농사 중에 가장 어려운 농사가 자식농사라더니… 누렁아 니가 우리집 농사 다 지어불었는디… 넌 내 맘 알제?"

결국 아버진 자식의 공부를 위해 누렁일 내다 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순박한 전라도 시골사람들의 꾸밈없는 사투리입니다. 그 속에서 실컷 웃을 수도 있고, 가슴을 여미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농사밖에 모르는, 오래되지 않은 그 옛날의 우리들의 아부지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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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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