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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가 김남희는 부지런하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1>로 전남 땅끝마을부터 통일전망대까지의 우리 땅 도보여행을 보여주더니 몇 년 사이에 중국, 라오스, 네팔 등의 아시아와 산티아고와 유럽 곳곳의 길을 알려주었다. 단지 걷기만 해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그것을 '글'로 써 사람들에게 도보여행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 어찌 부지런하다고 말하지 않으랴.

 

그녀의 책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도보여행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슴이 설렐 수밖에 없다. 파울로 코엘료와 함께 '산티아고 가는 길'을 알리기도 했던 그녀는 매번 새로운 여행 명소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다시금 그녀의 부지런함을 칭찬했는데, 책이 에세이란 것에 약간 당황하게 됐다. <외로움이 외로움에게>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도보여행을 그린 여행 에세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남희의 책 치고는 제목이 낯설게 다가오는, <외로움이 외로움에게>는 어떤 내용인가. 책은 김남희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 등으로 구성됐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에 관한 것인 만큼 그 깊이가 가벼워 보일 수 있겠지만, 막상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그런 생각은 금세 사라져 버린다. 그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 여행을 하면서 겪은 그들의 어떤 생각들이 어느 수필집 못지않게 진지하고 또한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부모님 때문에 들어간 공대에서 고생하다가 '네이처'의 사진 한 장 보고 탄자니아로 봉사활동을 오기도 했다. 누군가는 차별받는 여자들을 위해 온 몸으로 투쟁하고 있다. 누군가는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외딴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마음 가는 대로 살기 위해서 현실을 버리고 여행에 몸을 던졌다.

 

<외로움이 외로움에게>를 이루는 그 '누군가'의 사연들은 어떤가. 하나같이 가슴을 파고드는 어떤 절실함을 동반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어느 부분을 펼쳐보더라도 가볍다는 생각 같은 건 들지 않는다. 극한의 순간에서 인생이라는 것을 만끽하는, 혹은 만끽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들 하나하나가 진지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김남희가 도보여행이 아닌, 에세이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다. 그 순간에 선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을 위한 작지만 소중한 응원인 셈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 그들과는 상황이 다를지언정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을 위한 응원이기도 하다. 외로움이 외로움을 위로해 주는 것이랄까. 이 책은 그런 힘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외롭지만 꿋꿋이 걸어가는 이들의 마음을 보여줘 힘을 내게 해주고 있다.

 

"한때는 꽃을 사모했으나 이제는 잎들이 더 가슴에 사무친다"라는 김남희, 그녀의 글에서는 더 이상 이국적인 것이나 명소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그것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에 흘러들어갔다가 조용히 떠나는 사람들의 '삶'이 있다.

 

이국적인 것보다 그런 것들이 더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일까. 사람들의 정이 담긴 것처럼 따뜻한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여행이든 살아가는 것이든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 어느 것보다 뜻 깊은 선물이 될 것 같다.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 지구 위를 혼자 여행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 개정증보판

김남희 글.사진, 웅진지식하우스(2010)


#김남희#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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